< 정의의 배심원 1 > 에서 이어집니다
이 시각, 수진은 CCTV 가게를 방문하여 영상의 진위 여부와 증언을 부탁하고 있었다.
“한 사람의 생사가 걸린 사건입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경찰서와 법원에는 안 갈수록 좋은 거야.”
“남의 일에 끼어들지 않는 게 상책이지.”
“배운 당신들끼리 알아서 하세요.”
다들 이런저런 핑계로 협조를 거절했다. 사실 그런데는 속사정이 있었다.
“우리의 요구를 따르지 않으면 도원 제품의 공급이 중단될 것입니다.”
이미 도원그룹 계열사인 도원전자가 월등한 판매량을 무기로 업체들에 압력을 행사한 것이다.
배심원들은 손을 들어 성원이 대표로 선출되어 평의를 주재했다.
“2번 배심원부터 의견을 말씀해 주세요.”
“피고인이 범인인 게 확실하니 평의는 하나 마나가 아닐까요?”
“3번 배심원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CCTV 영상을 보니 피고인이 운전한 게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저도요.”
“피고인의 유죄는 명백합니다. 반드시 중형을 받아야 합니다.”
판기는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동생에 대한 복수심으로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피고인은 유죄이므로 논의는 시간 낭비예요. 빨리 형량을 정하고 끝냅시다.”
규한은 서둘렀다.
보통 평의는 다양한 의견이 오가지만, 이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오직 도원그룹의 제안이 성사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순간 연우는 모두가 매수되었다고 느꼈다.
“잠깐만요. 저는 취업 준비생인데 어젯밤 도원그룹에서 찾아왔어요. 만약 피고인에게 유죄 평결을 내리면 도원 중공업에 취직시켜 주겠다고 하더군요. 다른 분들도 저와 비슷한 제의를 받으셨죠?”
연우는 기정사실인 것처럼 꾸며서 말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요?”
형일이 벌컥 화를 냈다.
“그런 일이 있었나요?”
해자는 모르는 척했다.
“생사람 잡지 마세요.”
진숙이 쏘아붙였다.
“증거라도 있어? 있으면 내놓아 봐!”
규환은 덤빌 듯한 몸짓을 취했다.
그들은 합세하여 연우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평의실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험악해졌다.
“자, 모두 진정하세요. 이제 표결을 진행하겠습니다.”
각자의 의견서가 성원에게 제출되었다.
“배심원들의 평결은 유죄 8명, 무죄 1명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만장일치가 아니므로 재판부의 견해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연우만 무죄로, 나머지는 유죄 평결을 내렸다.
조금 후, 재판부가 평의실에 들어왔다. 심 판사는 유사한 판례를 언급하며 말했다.
“피고인은 범행을 인정했다가 부인하는 등 진술의 신뢰성에 의문이 듭니다. 그리고 유죄로 판단할 증거가 있을 경우 이를 우선시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따라서 재판장은 유죄 의견을 제시합니다. 만약 이번에도 만장일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수결에 따르겠습니다.”
재판부는 평의실을 나갔다.
“평의를 생략하고 바로 평결해요.”
인순이 재촉했다.
“그렇죠.”
성원의 동의에 그들은 얼굴이 밝아졌다. 이때 연우가 다시 제동을 걸었다.
“잠시만요. 아침에 법원을 오던 차현오 씨가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 의심스럽지 않나요?”
“예기치 않게 발생하는게 교통사고잖아요."
민지가 단호하게 반박했다.
“근데 어떻게 5번 배심원의 이름을 알아요? 어디 말해 보세요?”
진숙이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연우는 당황하며 둘러댔다.
“화장실에 갔을 때 통성명했어요.”
“당신, 꽤 수상해.”
판기가 의심의 눈초리로 노려봤다.
“당신은 아까처럼 무죄로 평결하면 되잖아. 왜 자꾸 시비를 걸어? 빨리 끝내고 하우스장에 가야 하는데 말이야!”
규한이 삿대질을 해댔다.
“이걸 들으면 제 행동이 이해될 거예요.”
연우는 탁자 위에 휴대폰을 놓고 버튼을 눌렀다.
“도원그룹 비서실장이 찾아와서 거액을 제시하며 회유했지만, 저는 거절했어요. 그리고 법원에 가려고 집을 나섰는데 갑자기 차가 돌진해왔어요. 그 순간 피하려다가 다리에 골절상을 입었죠.”
“만일 우리가 도원의 제안을 거절했다면 차현오 씨처럼 이런 사고를 당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스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이들은 동요하는가 싶더니 휙 등을 돌렸다. 도원그룹이 제시한 유혹과 현실의 절실함이 더 컸던 것이다.
그때 판기가 소리쳤다.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는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든 범죄자입니다!”
뜻밖의 지원 공세였다. 그동안 복수심에 불타 유죄를 주장하던 그가 아닌가! 연우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 든든했다.
‘이제 반전 카드를 꺼낼 때야!’
그는 점퍼 속에서 두식에 관한 뺑소니 사고가 보도된 신문을 꺼내 펼쳤다.
“보세요! 피고인의 사고 지역과 엄두식 씨가 사망한 장소가 동일한 것이 과연 우연일까요?”
이어 그는 휴대폰 버튼을 눌렀다.
“두식이 자식 말이야. 땡전 한 푼 없어 빌빌거리던 망나니가 요즘 사방팔방 돈을 뿌리고 다닌다며?”
“근데 엄두식 씨가 누구죠?”
판기가 물었다.
“신풍리 주민입니다. 이 엄두식 씨가 블랙박스를 주워 도원그룹과 모종의 거래를 했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런데 언젠가 진실이 드러날까 두려워서 그를 살해한 거죠. 지금 도원이 주는 달콤한 먹이가 이처럼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경고가 먹혔는지 그들은 불안한 기색으로 서성거렸다. 연우는 자신의 설득이 통한 듯해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리고 곧 평결이 바뀔 것이라고 확신했다.
“당신이 배심원으로 선정되기 전에 사건을 조사한 이유가 뭔가요? 검찰도 변호인도 아닌데, 사실대로 말해보세요?”
성원이 캐물었다.
“당신, 피고인과 아는 사이지?”
“맞아. 한편이 분명해.”
“그렇다면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잖아요.”
“말할 필요 없이 배심원에서 탈락이야!”
동시 다발적으로 추궁이 들어왔다. 그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마지막 평결이 내려졌다.
“유죄 7, 무죄 2로 평결이 났습니다. 이제 형량을 정하겠습니다. 무죄 평결을 한 두 분은 제외하고, 2번 배심원부터 양형을 제시해 주세요.”
이 과정에서 연우와 판기는 더 이상 참여할 권리가 없게 되었다.
“징역 2년 6개월이 적절하다고 봅니다.”
“저도 2년 6개월입니다.”
“세 명이나 죽었으니 징역 5년이 딱이라 보네요.”
규한이 오두방정을 떨었다.
“저는 징역 3년을 제안합니다.”
“징역 3년이요.”
“저도 3년으로 하겠습니다.”
대부분은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은 지키려는 듯, 지나치게 무거운 형량을 제시하지 않았다. 사실 그들은 형량보다 유죄 평결을 내리는 것이 더 중요했다. 끝으로 성원이 의견을 내놓았다.
“저는 징역 3년입니다. 그래서 2년 6개월이 두 분, 3년이 네 분, 한 분이 5년을 제안하셨습니다. 그러면 다수결 원칙에 따라 징역 3년으로 평결을 마치겠습니다. 이의가 있으신가요?”
“없습니다.”
그들은 마치 상관의 명령을 따르는 군인처럼 일시에 대답했다.
성원이 평결서를 작성하는 동안 이들은 각자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이제 연우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상아의 연락뿐이다. 그의 머릿속은 하얘졌고, 심장마비가 올 것 같았다. 청심환을 먹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평의실을 나갈 시간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