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의 슈킹 1 > 에서 이어집니다.
12월 20일 (목)
“현수 형, 방문할 손님이 더 있나요?”
그가 고개를 흔들자, 동인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통화를 마친 그의 목소리는 심각하게 변했다.
“조금 후 바지가 올 거예요. 작업할 자신 있죠?”
“네가 도와줄 거잖아. 근데 바지와의 거래 조건은 어떻게 되지?”
“1억을 주기로 했어요. 그 외의 사항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직도 현우의 바지 작업에 불만이 있는지 동인은 쌀쌀하게 나왔다.
‘교활한 놈! 네가 아무리 그러더라도 너의 사망 선고는 내 손에 달려 있어.’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온 사내는 낡은 세무 잠바를 입은 중년의 남자로, 키가 크고 나이는 대략 50세 정도로 보였다. 날카로운 인상을 주는 뾰족한 턱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주위를 살피며 긴장한 듯 입술에 마른침을 묻혔다. 현우는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사내는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등본 등을 테이블 위에 놓고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정말 이 일을 하면 1억을 주시는 건가요?”
“네, 약속합니다.”
“어떤 일인지 잘 모르겠지만, 너무 큰 금액이라 믿기지 않아서요. 제가 해야 할 일을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사내는 초췌한 모습과는 달리 또박또박한 말투였다. 그의 눈빛은 총명함을 띠고 있었다.
“혹시 전과가 있거나 신용 상태는 어떤가요?”
“전과는 10여 년 전 음주 운전으로 벌금을 낸 것 외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신용은 은행 연대보증 때문에 곧 신용불량자가 될 것 같아요.”
“급히 돈이 필요한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현우가 의도적으로 물었다. 상대방의 상황을 파악해야 대화를 원활하게 할 수 있어서였다.
사내의 고단한 인생 역정이 펼쳐졌다.
“저는 얼마 전까지 철공소를 운영했었습니다. 그럭저럭 잘 되어서 생계는 유지했죠. 근처에 있는 친척도 같은 업종에 종사했는데, 그 친척의 부탁으로 보증을 서게 된 것이 큰 화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은행 보증을, 다음에는 납품 대금이 나온다기에 사채 보증까지 서게 되었죠. 나중에 알고 보니 도박으로 전부 날려버린 후였어요. 결국 철공소와 집은 은행과 사채업자에게 넘어갔고, 지금은 아내와 아이들과 컨테이너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에게 피해를 준 그 친척은 연락이 닿지 않고요. 사람을 너무 믿었던 저 자신을 탓해야지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사내는 현실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듯 담담한 표정이었다.
“사업자등록증은 있으신가요?”
“네, 아직 폐업 신고를 하지 않아서 가지고 있습니다.”
현우는 은근슬쩍 속내를 떠봤다.
“만약 이 일이 위험해도 할 수 있겠어요? 최악의 경우 감옥에 갈 수도 있는데…”
그 순간 사내의 얼굴에 혼란이 스쳤고, 곧 창백하게 굳어졌다. 짧은 침묵이 흐른 후, 사내는 입술을 꽉 물었다.
“그런 상황도 예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큰아이가 대학생인데 다음 학기 등록금이 없어요. 둘째도 대학에 합격했지만, 입학금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죠. 그나마 막내가 중학생이라 다행입니다. 능력이 부족한 부모로서 자식들을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커피숍에서 1억을 수고비로 준다는 말을 듣고 위험한 일이라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에 1억을 벌 수는 없겠죠.”
사내는 낮게 신음을 토하더니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비록 제가 감옥에 가더라도 아이들이 공부를 마칠 수만 있다면 절대 후회하지 않습니다. 자식들이 학비 때문에 꿈을 포기한다면, 부모로서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저는 각오하고 왔습니다. 그러니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사내의 신념은 확고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희생하겠다고 결심한 그에게 현우는 깊은 연민이 느껴졌다.
‘자발적으로 감옥을 선택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혹시 잔고증명서에 대해 아시나요?”
“들어본 적은 있습니다. 공사 입찰 등을 할 때 자금 여부를 확인하는 정도로…”
“맞습니다. 저희는 잔고 업체에 사장님 명의로 잔고증명을 의뢰할 거예요. 그러면 잔고 업자가 사장님 통장으로 돈을 입금할 것이고, 우리는 그 돈을 빼낼 계획입니다. 구체적인 작업 내용은 사장님께서 참여를 결심하시면 그때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잔고증명 금액이 얼마인가요?”
“10억 원입니다.”
“네?”
사내는 화들짝 놀랐다.
“제가 잔고 업체에 직접 가야 하나요?”
목소리 떨림의 강도가 더욱 세졌다.
“그래요.”
사내는 잠시 고민한 후 의외의 조건을 내세웠다.
“그럼, 저에게 1억 원을 더 주십시요.”
“네?”
이번에는 오히려 현우가 당황했다.
‘이 사람 보기보다 승부사 기질이 있네.’
그는 즉시 동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는 자신이 결정할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인도 황당한 듯 머뭇거렸다. 순간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 정적을 깬 것은 사내였다.
“감옥에서 몇 년을 살아야 할지 모르니 2억 원은 받아야겠습니다.”
타협의 여지가 없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사내는 이 작업에 자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미 눈치챘다. 그래서 위험수당을 추가로 요구하고 있다.
동인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좋습니다. 2억 원을 드리겠습니다.”
“일은 언제 시작하나요?”
“다음 주 수요일, 26일입니다. 그 전에 저와 미팅이 있을 거예요. 작업에 대한 전략을 세워야 하니까요.”
“그렇겠네요.”
“약소하지만 50만 원이니 양복 한 벌을 준비하세요. 잔고 업체 사무실에 가려면 아무래도….”
“감사합니다. 사실 저도 옷차림에 신경이 쓰였거든요.”
사내는 돈봉투를 주머니에 넣고 무표정으로 사무실을 나갔다.
“저 바지에게 정말 2억을 주려고?”
“어쩔 수 없잖아. 그럼, 형은 다른 뾰족한 수가 있어?”
동수의 볼멘소리에 동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동수야, 그 돈 주는 걸 너무 아까워하지 마. 작은 것을 탐내다가 큰 것을 잃는다는 사자성어, 알아?”
“당근 모르지.”
“소탐대실이야. 만약 저 사람의 요구를 무시한다면, 자신의 역할에 비해 보수가 적다고 느껴 10억을 다 챙길 수도 있어. 저 사람은 이미 우리의 약점을 파악한 것 같아. 그래서 우리가 신고하지 않고 오히려 잠수를 탈 거라고 생각할 거야. 내가 보기엔 영리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야. 그 돈을 주고 안전하게 가는 게 낫지.”
그래도 동수는 억울하다는 듯 입술을 삐죽였다.
“동수야, 10에서 2를 빼면 얼마야?”
“지금 장난하냐? 8이지.”
“그래, 10억에서 2억을 줘도 8억이나 남는 장사잖아.”
“그러고 보니 그렇네. 현수야, 저 바지 약삭빠른 것 같은데 괜찮겠어?”
“겁쟁이나 답답한 사람보다는 훨씬 나아. 그런 사람을 잔고 업체에 보내면 주눅이 들어 작업을 못 할 수도 있어. 지금 저 바지의 형편과 사회 경험으로 보아 우리가 시킨 대로 잘할 거야.”
“근데 전과와 사업자등록증은 왜 물어봤어요?”
잠자코 있던 동인이 말했다.
“수일금융에서 잔고증명이 고액이면 사업자등록증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더라고. 그리고 전과자보다 깨끗한 사람이 그곳에 가는 걸 두려워할 거야. 즉, 흑심을 품을 확률이 적다고 봐야지. 처음에는 감옥이 무서울지 몰라도, 적응되면 곧 안방처럼 느껴질 거야. 또 작업이 끝나면 저 사람은 경찰 조사를 받을 텐데 사기 전과가 없으니, 그의 진술을 더욱 신뢰할 거야. 우리는 미리 바지를 교육하여 수사에 혼선을 주는 거지.”
“와! 강현수 범죄 심리학 박사님이 탄생하셨네!”
동수가 탄성을 질렀다. 그 순간 동인은 그의 날카로운 논리에 당황한 표정을 띠었다. 그러나 속마음을 숨기고 질투 어린 말투로 한마디 던졌다.
“저 바지가 별 하나 달았다고 우리와 무슨 상관이야.”
현우는 이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그때까지 두 사람은 그 사내가 2억 원의 배당금에 상응하는 징역형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단, 그의 파트너인 현우만 제외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