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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철 Sep 02. 2024

디데이 1일 전

< 정의의 슈킹 1 > 에서 이어집니다. 

12월 26일 (수요일)     


드디어 디데이 전날이 다가왔다. 오전 8시에 출근한 세 사람은 각자의 일에 착수했다.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사무실은 숨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이제부터 동인은 진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체크하기로 했다.     

사무실에서 의뢰한 3개의 봉투는 오전 10시에 마무리되었다. 개인 손님으로 보낸 3개의 봉투는 동수가 밖에서 처리한 후 돌아왔다.     

서류에 적힌 의뢰인의 6대 선불폰은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었지만, 누가 먼저 식사하자고 제안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의 시선과 귀는 오로지 휴대폰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 폰들이 벨이 울리지 않아야 한다. 만약 벨이 울린다면 서류에 하자가 있거나 낌새를 챘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벨이 조용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감이 더해갔다. 마침내 오후 1시를 넘겼고, 경험상 문제 없이 통과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었다. 그제야 이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바지는 이틀 연속 사무실에 와서 현우와 본격적인 작전에 돌입했다.     

“사업자등록증은 꼭 원본을 가져가야 해요.”     

“알겠어요.”     

“잔고증명 용도를 물어볼 거예요. 이때 대답이 중요해요.”     

“뭐라고 하죠?”     

“관공서 철근 골조 공사용으로 하세요.”     

그가 철공소를 운영했기에 사업자등록증의 종목과 연관이 있었다. 현우는 이미 세무서와 건축사 사무소에 문의해 보았다. 두 사람은 수능 시험을 준비하듯 예상 질문과 모범 답안을 주고받았다. 리허설은 완벽했다. 역시 그는 이해가 빠르고, 아군이라 대화도 수월했다. 마지막으로 잔고증명 10억의 수수료로 450만 원을 주었다.  현우는 어느 순간부터 그에게 끈끈한 동지애를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바지의 구속은 그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자기가 그를 사주한 사기 교사범이 아닌가! 오히려 바지보다 자신의 처벌 수위가 더 무겁다는 점이 작용했을 것이다.     


J은행 건물 3층에 있는 수일금융 문 앞에 새 양복과 코트를 걸친 바지가 섰다. 깔끔하게 이발한 그는 키가 훤칠해 정장이 잘 어울렸다. 바지는 깊게 심호흡을 한 후 노크를 했다.     

복 사장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위아래로 살폈다. 바지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며, 현우의 조언대로 청심환을 먹고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잔고증명의 용도가 뭡니까?”     

“관공서의 철근 골조 공사용입니다.”     

복 사장은 사업자등록증을 면밀히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우의 예측이 맞아떨어진 순간이었다.     

“관공서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곳인가요?”     

“여주에 세워질 공무원 교육 연수원입니다.”     

이 대답은 예상했던 질문에 포함되어 있어 자연스럽게 나왔다. 현우가 매스컴을 통해 정부가 그곳에 연수원을 짓는다는 정보를 입수했기에 가능했다.     

“구 사장님, 사업 번창하시고 자주 이용해 주십시요!”     

복 사장은 수수료를 금고에 넣으며 우렁차게 외쳤다.     


“동인아, 수일 직원은 먼저 가고 지금 바지가 J은행을 나왔어.”     

은행 밖에서 바지를 감시하던 동수에게서 연락이 온 시간은 오후 1시 30분이었다. 동인은 급히 J은행 사이트를 열고, 바지가 오전에 개설한 인터넷 뱅킹 계좌로 로그인했다. 그러자 방금 전 수일금융에서 만든 통장의 계좌번호가 나타났다. 곧 현우가 바지에게 전화해 그 통장의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다. 바지는 서둘러 근처의 다른 J은행으로 이동했다.     

“조금 전에 발급받은 통장을 잃어버려서 재발급을 요청하려고요. 계좌번호는 ***-****-****-**입니다.”     

조금 전의 통장은 수일금융에서 만든 통장이다.     

“신분증을 보여주시겠어요?”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 뱅킹도 신청할게요.”     

바지는 운전면허증을 내밀었다.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세요.”     

2970을 꾹꾹 눌렀다. 새 통장을 쥔 그의 손바닥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이는 그만큼 긴장했다는 증거였다. 바지는 통장과 신청서, 보안카드를 밖에서 대기하던 동수에게 건넸다.

동수가 헉헉거리며 사무실로 돌아와서는 허리를 숙이고 숨을 골랐다. 즉시 동인은 신청서에 적힌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J은행에 접속했다. 이 아이디와 비밀번호는 바지가 임의로 생성한 것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모니터에 집중되었고, 현우는 조마조마한 마음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설마 10억이 입금되었을까?’     

몇 번의 클릭 후, 동인의 손끝이 마지막으로 엔터 키를 눌렀다. 그 순간, 상상이 현실로 바뀌는 놀라운 장면이 펼쳐졌다. 화면에는 분명히 0이 9개가 찍혀 있었다.     

10억이다! 현우는 믿을 수가 없어 연신 눈꺼풀을 깜빡거렸다.     

“와~!”     

모두가 동시에 감탄의 소리를 질렀다. 동수는 흥분한 나머지 현우를 와락 껴안았다.     

동인은 두 사람에게 윙크를 날렸다. 이때 시간은 3시 10분이었다..     

오후 4시에 현우와 동수는 밖에서 각각 한 사람을 만난다. 그들은 오늘 오전 사무실에서 개인적으로 대양금융에 5억 원의 잔고증명을 의뢰한 작업 손님들이다. 두 사람은 자신이 이 작업에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물론 이들은 운전면허증을 소지한 사람들이다. 대양의 작업은 시간과의 싸움이며 그것도 초 단위로 이루어진다. 대양의 주 거래 은행은 W은행이다. 이 은행을 파악하려고 가장 고생했다. 동인이 포기하려는 걸 그가 설득하여 겨우 알아 냈다.

“W은행 통장을 실수로 잃어버렸어요. 빨리 재발급을 받아야 실적을 쌓을 수 있고, 말일 내로 대출이 나오거든요.”     

이 말은 어제 은행 업무가 종료된 시간에 두 사람과 나눈 통화였다. 그 전에 연락하면 급한 마음에 즉시 재발급을 해버려 작업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대양금융은 돈을 입금하기 전에 인터넷 뱅킹이 된 다른 계좌가 있는지를 확인할 확률은 100%라고 봐야 한다. 이는 그들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양은 W은행의 VVIP 고객이므로 그 정도 편의는 제공할 것이다. 또한, 대양의 본업을 잘 알고 있기에 사고가 발생할 경우 서로에게 좋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동인은 예전에 의뢰인이 거래하는 은행과 동일한 통장을 만들어 보낸 적이 있었다. 그때 인터넷 뱅킹이 안 되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그랬다면 서류의 반환과 함께 의심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요주의 업자로 낙인찍혀 거래가 중단되었거나, 변동성이 큰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내려왔을 가능성이 있다.     

동인은 W은행이 주거래 은행으로 확실해지자, 수일금융 작업처럼 돈이 입금되기 전에 인터넷 뱅킹 통장을 만들어 놓자고 했지만, 현우는 강력히 반대했다.  

“현수 형의 이론도 일리가 있지만, 그 방법은 시간이 촉박해서 불가능해요.”     

“위험성을 따지자면 내 방식은 수류탄이라면, 네 방식은 핵폭탄 같은 거야.”     

동인이 완강히 머리를 내젖자, 현우는 강하게 밀어붙였다. 처음으로 불꽃 튀는 격돌이 일었다.

“만일 입금하기 전에 인터넷 뱅킹 통장이 발견되면 어떻게 할 거야?”     

“우리가 입금 은행과 비밀번호를 모른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건 우리의 관점이고, 너라면 입금하겠어?”     

“….”     

그의 철칙 중 하나인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에 기반한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형의 말대로 하기로 하죠.”     

현우의 힘겨운 승리로 끝났다. 동인의 방법대로라면 여유롭게 작업할 수 있지만, 지금은 신속하게 움직여야 한다.     

처음에 그는 동인의 판단에 모든 것을 맡길 수는 없었다. 그도 신이 아닌 이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동인이 시샘하는 것 같아 생각를 바꿨다. 물론 선의의 질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다가 다시 마음을 고쳐먹었다. 동인의 실패는 곧 나의 실패가 아닌가!     

현우는 사무실 부근의 W은행 앞에서 작업 손님을 만났다. 당연히 CCTV가 없는 사각지대였다. 그가 속삭이자 손님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현우는 은행으로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불안한 눈빛으로 지켜보았다. 

어느새 발 아래에는 피다 만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였다. 시계를 보니 4시 5분이다. 이제부터 상황을 분 단위로 체크해야 한다. 1분이 이렇게 길고 고통스러운지 난생처음 느꼈다. 은행은 4시 30분에 영업이 종료되면 정문의 샷다를 내린다. 그러나 그 전에 들어온 고객들의 용무는 늦어도 모두 처리해 준다.

작업 손님은 운전면허증을 이용해 인터넷 뱅킹 계좌를 개설했다. 그는 얼른 나와 현우에게 통장과 신청서를 전달한 후 다시 은행으로 들어갔다. 그 시각은 4시 23분이었다.     

손님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현재 통장 수가 적어 실적이 부족하니, 통장이 더 필요합니다."     

재발급 사유는 다음과 같았다.     

"거래 은행으로 가던 중 통장이 들어 있는 가방을 택시에 두고 내렸습니다. 빨리 통장을 만들어야 실적을 쌓고 대출을 받을 수 있는데 큰일입니다. 제 불찰로 번거롭게 해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그래서 이 작업 손님은 단순하고 온순하여 다루기 쉬운 사람으로 선택했다.     

그는 총알처럼 사무실로 달려갔다. 동인이 신청서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W은행에 접속하자, 방금 대양금융에서 개설한 통장에 5억 원이 입금되어 있었다. 지금은 놀라거나 감격할 겨를이 없었다. 현우는 그 통장의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를 은행에 있는 손님에게 전화로 알려 주었다. 시간은 4시 32분을 막 지나고 있었다.     

작업 손님은 조금 전 만든 통장을 분실 신고하고, 그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로 새 통장을 개설하며 인터넷 뱅킹을 신청했다. 이어 후문에서 기다리던 현우에게 건네준 시간은 4시 55분이었다.     

동인의 휴대폰이 울렸다. 다른 W은행에서 작업 중인 동수의 전화였다.     

“그러니까 빨리 요점만 말해! 아이디는? 비밀번호는?”     

동인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묻어났다. 그쪽의 일처리가 현우보다 몇 분 늦었다. 그의 몸은 불안과 뜀박질로 녹초가 될 지경이었다. 이로써 대양의 1차 작업은 마무리되었다. 이제는 급할 것이 없었다. 

밖에서 돌아온 동수는 긴박했던 상황을 이야기하며 흥분했다. 

현우는 담배를 피우려고 와이셔츠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흥건히 젖은 물기로 라이터 돌만 번쩍였다.

“형들, 정말 수고 많았어요. 다행히 예상보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네요. 현재 서울금융에서 5억 원씩 수표로 입금되었고, 수일에서 10억 원, 대양에서도 각각 5억 원이 입금되었어요. 총 30억 원이죠. 고려에서는 아마 밤 10시에서 11시 사이에 5억 원씩 인터넷 뱅킹이나 모바일 뱅킹으로 들어올 거예요.”     

서울금융에서는 오후 2시에 C은행 통장을 개설하며 자기앞수표로 입금했다. 두 명의 작업 손님 명의로 C은행인터넷 뱅킹 통장은 이미 만들어져 있었다.     

“지금 고려에서 입금되었어.”     

모니터를 집중해서 바라보던 동인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두 개의 계좌번호에 5억 원이 선명히 찍혔다. 이로써 무려 40억 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이 입금된 것이다. 이때 시각은 밤 10시 45분이었다.     

동인은 먼저 수일금융 이체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J은행에 접속하여 신청서 정보를 바탕으로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았다. 이어 비밀번호 2970과 복사한 보안카드 번호를 입력하여 10억 원 중 5억 원을 이체 통장으로 옮겼다. J은행은 하루 최대 이체 금액이 5억 원이므로, 오늘 안에 5억 원을 이체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나머지 5억 원은 내일 오전에 처리하면 된다.

동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앞으로 약 2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다. 은행마다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자정부터 오전 1시 30분까지는 시스템 점검이 진행되어 업무가 중단된다. 그래서 이체 작업은 그 시간 이후에 시작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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