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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철 Sep 04. 2024

디데이 - 2

< 정의의 슈킹 1 > 에서 이어집니다. 

12월 27일 ()     


지난 토요일, 희현을 만났다. 그녀는 현우가 금융 분야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전에 술집에서 동수가 술에 취해 그녀에게 대출을 해줄 수 있다고 허세를 부렸고, 그때 현우는 그렇게 둘러댔다. 그리고 토요일에 데이트를 하면서 회사 일이라며 핑계를 대고 오늘 이체 작업을 부탁했다.     

“제가 오빠 일을 도와드릴 수 있어서 정말 기뻐요.”     

희현은 의심 없이 흔쾌히 승낙했다. 사실 현우는 자기를 좋아하는 그녀의 마음을 이용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PC방에서 예행연습을 했다. 그녀는 생각보다 똑똑했고, 자판을 치는 속도도 빨랐다. 그는 동인이 작성한 이체 경로 용지를 복사해 두었기에 희현을 교육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동인이 8시에 마지막으로 통장 조회를 마치자, 그는 슬쩍 밖으로 나가 그들에게 남긴 5억을 제외한 35억을 이체하라는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서울금융의 돈이 입금된 C은행 이체는 10시에 하라고 덧붙였다. 

희현은 10개 통장에 각각 3억 5천만 원씩 이체했다. 이미 동인이 여러 번 이체를 했기에 그녀는 10번만 하면 되었다. 

현우는 동인의 철저한 성격을 고려할 때, 그가 자주 돈을 확인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이체를 빨리 할 수도 있었지만, 최대한 늦추며 기다렸다. 역시 그의 예상이 맞았다. 동인은 오전 6시, 7시, 8시에 세 번 조회했다.     

처음에 그는 이체 작업을 시영에게 맡기려는 계획이었다. 그녀는 현우의 직업을 알고 있었기에 은행 실적을 쌓는 것이라면 자연스럽게 설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친구인 선영을 통해 동수의 귀에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이 일을 함구하라고 하겠지만, 현우와 이별한 후 술에 취해 감정이 흔들리면 발설할 수도 있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 또한, 희박한 경우지만 디데이 전날 그녀가 결근하면 그들에게 의심의 빌미를 줄 수 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희현을 선택했다.     

“희현 씨, 수요일 하루 가게를 쉴 수 있어요?”     

“그럼요. 아프다고 둘러대면 되죠.”

현우는 헤어지면서 그녀의 손에 20만 원이 든 봉투를 쥐어주고 급히 자리를 떠났다. 수고비를 주어야 떳떳하고, 희현은 부담감으로 확실히 일을 해낼 것이다.

‘이제 너희들은 내 역공작으로 알거지가 될 거야!’     


네 명이 5억 원을 찾는 데는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여자들을 돌려보낸 동수가 차 안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은 동인의 눈치를 보느라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처음보다 감정이 가라앉은 그는 무언가를 기억해내려 애쓰는 듯했다. 잠시 후, 동인이 입을 열었다.     

“돈이 빠져나간 시간은 8시 이후야. 

방금 통장 명의자들에게 전화해서 통장의 돈을 확인한 적이 있는지 물어봤지. 그랬더니 그쪽에서 자기 통장을 가지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펄쩍 뛰더라고. 그건 맞는 말이지. 그들은 비밀번호를 모르니까. 내가 전날 인터넷으로 다 바꿨거든. 게다가 이체에 필요한 보안카드도 없어서 절대 불가능해. 만약 잔고업체가 했더라도 은행 영업시간 이후에나 조치를 취할 수 있어. 또한 4곳에서 동시에 이체가 이루어졌다는 건 성립할 수 없어. 그리고 은행에서 알았다면 지급 정지를 했겠지, 이체할 리가 없어. 가장 답답한 건 어떤 경우에도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거야.”     

동인은 온몸을 떨었다. 현우는 그의 마지막 말에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진짜 불가사의한 일이야. 마치 누군가 우리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아. 현수 형은 어떻게 생각해요?”  

“…”     

현우는 뜨끔했지만,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침묵이 최선이다.     

그때 현우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지금 돈을 찾고 있는 여자들 중 한 명에게서 온 전화였다. 그는 재빨리 선수를 쳤다.     

“응, 누나. 할 말이 있다고? 잠깐만.”     

이 작업을 하면서 어느새 할리우드 연기가 몸에 배어 있었다. 상대방 여자는 순간 당황했을 것이다.     

“나 좀 전화받고 올게.”

현우는 손바닥으로 휴대폰 스피커를 막고 급히 차에서 내렸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전화를 받았다.     

“과장님, 큰일이에요! 은행 직원이 저를 쫓아오고 있어요. 어떻게 해야 하죠?”     

여자는 마치 맹수에게 쫓기는 듯 숨을 헐떡였다. 그가 여자에게 준 명함의 직함은 과장이었다.

“아주머니, 지금 택시를 타고 보관함으로 가다가 계속 미행당하면 집으로 가세요. 10분 후에 상황을 문자로 꼭 보내주세요.”     

현우의 떨리는 팔에 닭살이 돋았다. 저 멀리 산등성이에 걸쳐 있는 구름 목도리가 자신의 몸을 조여오는 듯한 오싹함을 느꼈다. 


여자는 차도로 나와서 걷기 시작했다. 그때 빈 택시가 보이자 빠르게 탔다. 은행 직원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마치 사냥꾼이 다 잡은 사냥감을 놓친 듯한 허탈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콩닥거리는 가슴으로 택시에서 내렸다. 기본요금도 안 되는 짧은 거리였다. 여자는 돈 가방에서 자신의 수당을 제하고 사물 보관함에 넣었다. 희망에 가득 찬 얼굴로 돌아서는 그녀의 손에는 천만 원이 쥐어져 있었다.     

원래 현우가 약속한 수고비는 200만 원이었지만, 여자들의 형편이 안타까워 금액을 올렸다. 앞으로도 일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는 그녀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한몫했다. 이 작업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기 때문이다.     

현우는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초조함에 목이 타들어갔다. 마치 자신이 도망자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20여 분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분명 무슨 일이 생겼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등골이 오싹해지고, 소름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퍼져나갔다. 그들이 곁에 있어 어찌할 바를 모르니 미칠 지경이었다.     

“나, 화장실에 갔다 올게.”     

그는 태연하게 차에서 나왔지만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화장실을 찾는 척하며 통화할 장소를 두리번거렸다.     

‘띵동’

그 순간, 여자가 깜빡했던 늦은 문자가 왔다. 그만큼 긴장되고 무서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일이 끝났어요. 잘 쓸게요. 정말 고맙습니다.’     

그는 메세지를 확인하자마자 즉시 삭제했다. 비로서 자욱한 미세먼지가 사라지며 시야와 숨통이 트였다.     


현우는 겁에 질린 채 은행 문을 나서는 여자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녀는 출금 청구서에 현금 1억 9백만 원, 수표로 1억 원권 2장과 천만 원권 4장을 적어 통장과 함께 창구에 내밀었다. 여직원은 거액의 인출에 의아해했지만, 그녀의 외모와 옷차림이 복부인처럼 보여서 그냥 넘어갔다. 그러나 여자는 대기하는 동안 무의식적으로 안절부절못하며 주변을 자주 힐끔거렸다.     

이 여자의 행동을 남자 차장이 의심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차장은 여직원의 자리로 가서 그녀의 인출 내역을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거래가 거의 없던 통장에 3억 5천만 원이 입금되었는데, 한꺼번에 찾는 게 좀 이상하네. 근데 보이스 피싱이라면 전부 현금으로 인출할 텐데… 수표도 있고 잔고도 100만 원이나 남겼고. 이거 정말 헷갈리네.”     

아마 은행 경력 20여 년의 촉인지도 모른다. 이제 차장의 눈빛은 관찰 대상에서 감시의 눈초리로 바뀌었다. 하지만 돈 지급을 정지할 만한 정당한 사유가 없으니 내줄 수밖에 없었다. 차장은 본능적으로 그녀를 따라붙기 시작했다. 수사권이 없는 그로서는 단지 직감에 의존한 추적이었을 것이다.     


현우가 돌아왔을 때, 차 안에는 여전히 무거운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동수가 담배를 끄며 정적을 깨뜨렸다.    “동인아, 지금 이 상황에서 바지에게 2억을 다 줄 거야?”     

“나도 고민 중이야. 현수 형?”     

“왜?”     

“이따가 바지 만나면 작업이 절반만 성공했다고 말해요. 그래서 1억밖에 줄 수 없다고요.”     

“그래도 약속은 지켜야 하지 않겠어?”     

“야! 우리가 개털이 됐는데 그 정도 주는 것도 고마워해야 해. 동인아, 내 말이 틀렸냐?”     

“형 말이 백 번 옳아.”

역시나 형제는 쿵짝이었다. 현우는 이 문제로 왈가불가하여 다 된 밥에 재를 뿌릴 필요는 없었다.

“얼마를 주든 상관없지만 나는 할 수 없어.”     

“그럼 동수 형이 말해. 바지는 자기 것만 한 줄 아니까 다른 건은 입 다물고 있어. 알겠지?”

“응.”     

현우가 이들에게 5억을 남긴 데는 이유가 있었다. 처음에는 배신감에 상거지로 만들려다 마음을 바꾸었다. 바지에게 2억을 주고 작업비 등을 제하고도 어느 정도는 주려는 배려였다. 한마디로 은혜를 베푼 셈이었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하지 않은가! 어쨌든 그들 덕분에 이 작업이 시작되었고, 자신이 큰 돈을 얻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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