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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빠이 사건의 진실

by 이인철

다음 날, 언론은 지상에 대한 사건을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 특히 도원그룹의 계열사인 도원 일보는 이 사건을 대서특필로 다뤘다.

“얼마 전 속초 신풍리에서 발생한 교통사고의 진범이 밝혀졌습니다. 도원그룹 후계자인 백도진 씨와 설 모 씨 간의 진실 공방이 이어졌으나, 공판 준비 기일에 설 모 씨가 자신의 운전을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설 모 씨의 변호인인 강지상 변호사가 피고인에게 거짓 진술을 하도록 유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큰 파장이 일고 있습니다. 이에 검찰은 즉각 진상 조사에 착수했으며, 대한변협에서도 사실로 확인될 경우 변호사 자격 박탈 등의 징계를 내릴 것으로...”

지상은 예상치 못한 위기에 기겁했다. 순식간에 그를 비난하는 보도가 쏟아졌다.

이런 여론의 배경에는 도원그룹 홍보실의 개입이 있었다. 그들은 거액의 광고를 게재하는 조건으로 매스컴을 동원한 것이다. 이 계획은 눈엣가시 같은 지상을 매장하려는 기탁의 음모였다.

이제 지상은 절체절명의 고비에 처했다.

순간 그는 과거에 심장병 어린이 재단을 설립하고 자신의 사비로 봉사했던 유명 연예인 사건을 떠올렸다.


오래전 한 방송에서 그가 심장병 어린이 수술을 빙자해 성금을 가로챘다는 폭로가 있었다.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공분을 일으켰고, 당시 그는 '뽀빠이'라는 애칭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던 인물이었다.

“지상아, 나 좀 도와줘. 언론이 나를 죽이려 해.”

“무슨 일이야?”

“지난달 여당 핵심부에서 국회의원 출마를 권유했는데, 거절하자 심장병 어린이 성금을 횡령했다는 누명을 씌우려 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봐.”

“〈우정의 무대〉 녹화 중에 경찰이 들이닥쳐 심장병 어린이 기금을 수사한다는 거야.”

“혐의는 뭐야?”

“내가 심장병 어린이 수기집 〈가슴속의 작은 소망〉등을 내면서 판매 수익금을 기부하기로 했거든. 그런데 출판사에서 매출액 40억 중 초상권 명목으로 3억을 줬는데, 그 중 2천만 원만 치료비로 썼다고 하더라고.” “거참 이상하네. 형의 수기집이 그 정도 인기가 있었나? 아는 사람들도 별로 없던데.”

우선 경찰의 주장은 신뢰할 수 없다. 매출이 40억 원이면 50만 부 이상이 팔려야 한다. 그렇다면 그는 유명 연예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명성을 얻었을 것이다. 또한, 고료가 아닌 초상권 명목이라는 것도 의문이다. “돈을 떼먹은 사실이 있는 거야?”

“인마, 너도 잘 알잖아. 지난 10년 동안 500명 이상의 심장병 어린이 수술에 수십억 원을 쏟아부었는데, 그 몇천만 원을 착복했다고? 정말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다. 만약 그랬다면 나는 천벌을 받을 거다.”

“법적 대응이나 잘해, 형.”

“너는 변호사니까 사건 경험이 많잖아. 제발 도와줘. 지금 아무도 믿을 수가 없어.”

그 후 지상은 방송의 부당성을 반박하는 문서를 작성하며 그가 언론에 의해 매도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의 봉사 활동은 사회 전반에 걸쳐 매우 많았다. 소년 소녀 가장들, 달동네 아이들, 무의탁 노인들 등을 위한 선행이 이어졌다.

그런 그들 정치권력은 가만두지 않았다. 여당 고위층은 그에게 고향에서 국회의원 출마를 강요했다. 집권당으로 확실히 당선될 국회의원을 확보하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그가 이를 거부하고 협박에도 굴하지 않자, 괘씸죄로 죽여 버렸다.

선량한 휴머니스트는 하루아침에 사기꾼으로 전락했다. 그의 사무실에는 항의 전화가 빗발쳤고, 이웃들의 손가락질로 외출조차 할 수 없었다. 수십 년간 몸담았던 연예계는 물론 친구들도 등을 돌렸다. 마지막까지 곁에 남은 것은 가족뿐이었다.

사건 3개월 후, 검찰은 무혐의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이미 여론은 그를 매도해 버린 후였다. 비겁한 언론은 단 한 줄의 무혐의 사실도 보도하지 않았다.

얼마 후 형은 한국을 떠났다. 어느 날 그와 연락이 닿았다.

“모든 방송에서 강제로 하차했고, 그곳에 있으면 목숨을 끊을 것 같아 미국으로 왔어. 돈 한 푼 없이.”

“요즘 어떻게 지내?”

“죽을 맛이야. 하루에 몇십 달러 받고 한국 관광객 가이드를 하고 있어.”

“형이 뭘 알아서 가이드를 해?”

“10시간 이상 건조한 버스에서 이동하는 동안 내 특기인 만담은 인기 만점이야. 글구 여행객 몇 명을 붙잡고라도 내 억울함을 전해야 하지 않겠어? 돈이 없어 죽어가는 심장병 어린이들의 수술에 내 혼신을 바쳤다는 것을.”

“형, 시간이 지나면 다 알게 될 거야.”

“아니, 내 무혐의가 언론에 전혀 보도되지 않았잖아. 나는 여전히 계속 죽어가고 있어.”

그는 마치 바닷속에서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하는 물고기처럼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몇 년 후, 한국에서 형을 만났다.

“그동안 무지 힘들었지?”

“말도 마. 몇 번이나 죽고 싶었어. 생사의 기로에서 ‘여보, 당신이 죽으면 모든 걸 인정하는 거예요. 어떻게든 살아야 진실을 밝힐 수 있어요.’라는 아내의 말이 나를 지탱해줬어.”

“그래도 형은 참 행복한 사람이야. 사랑하는 형수님이 계시니까.”

“맞아. 지상아, 너에게 보여줄 게 있어.”

그는 주머니에서 한 장의 용지를 꺼냈다. 그것은 ‘무혐의 불기소 증명원’이었다.

“내가 누명을 썼다고 아무리 말해도 믿어주지 않아서 부적처럼 가지고 다녀.”

“아예 이마에 붙이고 다니면 어때?”

“그럴까?”

우리는 씁쓸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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