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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역공사

by 이인철

첫 공판 날 아침, 지상은 사무실에서 세호를 호출했다.

“CCTV 복원 실패에 대해 알고 있지?”

“네.”

“그래서 다른 업체에 맡겼는데, 어젯밤 복구에 성공했다는 연락을 받았어. 알다시피 나는 법정에 가야 하니까, 수고스럽지만 문 수석이 대신 다녀왔으면 하는데.”

“물론 제가 가야죠.”

‘구미호 같은 놈.’

지상은 주소가 적힌 메모지를 건넸다.

“지방이라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재판이 끝나기 전에 와야 해.”

“알겠어요.”

“차를 줘야 하는데, 똥차가 고장이 나 버렸어. 아, 공부하느라 운전 면허증을 취득할 시간이 없었다고 했지?"

“괜찮아요.”

세호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사무실을 나섰다.

지상은 TF팀이 CCTV를 찾기 위해 전자상가를 샅샅이 뒤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다 며칠 전, 그는 세호에게 복원 실패 소식을 흘렸고, 이 정보는 곧 기탁에게 전달되었다. 기탁은 지친 요원들을 복귀시켰다.

기탁의 핸드폰이 울렸다.

“뭐라고? 강 변이 CCTV를 다시 복구했다고? 그래서 지금 찾으러 간다고요? CCTV 영상을 확보하면 연락해요.”

‘강지상, 이 새끼. 끝까지 꿈틀거리네.’


지상은 재판 시간보다 일찍 법원에 도착했다. 건너편에는 검찰청이 보였다. 어느 사무실에서는 검사와 직원들이 분주히 일하고 있었다.

그는 검사 시절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사법고시에 합격하자 모교에 플래카드가 걸렸고, 이웃에게 떡을 돌리던 엄마는 칭찬에 기뻐 날아다녔다.

사법연수원 시절, 고시원에서 야간 총무를 하며 열심히 공부했다. 마침내 꿈꾸던 검사가 되었다.

학창 시절에 시청했던 TV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박상원이 연기한 검사 강우석은 나의 롤모델이었다. 우연히도 같은 성씨여서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외부의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소신을 지켜낸 강직한 검사. 그러나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현실에는 멋진 슈트를 입은 몸매 좋은 검사는 드물다. 검사라는 직업은 기대만큼 녹록지 않다. 검사 한 사람이 하루에 10건 이상의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 대부분의 검사는 주말도 없이 일에 치여 사는 샐러리맨과 다를 바 없다.

어느 날, 초임 후배 검사가 이렇게 말했다.

“선배님, 검사의 일이 생각보다 노가다네요. 완전 박봉에 3D 직종이에요.”

“그래도 우리가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니까 교도소를 계속 짓지는 않잖아.”

“그건 맞네요.”

조사가 시작되면 새벽의 별을 보며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다. 중요한 참고인이나 피의자를 소환하면 기본적으로 12시간 이상 걸린다. 오전에 일찍 불러도 자정 녘에 신문이 끝난다. 그들은 조사가 끝나면 돌아가지만, 검사는 그 조서를 다시 검토한다.

책상 위에 쌓여가는 서류 더미를 살펴볼 시간조차 부족하다. 운동할 시간도 없고, 스트레스를 술로 풀다 보니 생전 없던 똥배가 나온다. 초임 검사 월급은 286만 원. 첫 봉급을 받았을 때는 많다고 느꼈다. 내가 청빈한 삶에 너무 익숙했던 모양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검사직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이다. 지청에서 근무할 적에 피해자의 편지를 서랍에서 꺼내 보곤 했다.

‘정말 억울해 목숨을 끊으려던 때, 검사님을 만나 제2의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라는 감사의 편지였다.

검사의 임무는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이다. 그들은 나를 비난하지만, 피해를 당한 사람이나 누명을 쓴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한다. 나쁜 놈들에게 죗값을 치르게 하다 보면 내 아이, 내 가족, 내 이웃이 안전한 세상에서 살 수 있을 것이다. 이 믿음으로 오늘도 검사는 밤을 새운다.

“강지상 변호사님이시죠?”

“누구시더라…?”

“태양로펌의 조수찬 변호사입니다. 강 변호사님의 명성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지상이 태양을 나온 후 그가 입사했기에 모르는 사이였다.

“요즘 고생이 많으시죠?"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백도진 씨가 제 의뢰인입니다. 그러니 패소하여 그 명성에 먹칠하지 않았으면 해서요."

‘어? 이놈, 초면에 싸가지가 왕재수네.'

“워낙 패소 변호사로 소문이 나서, 더 이상 잃을 명예도 없어요.”

은연중 서로의 기 싸움이 시작되었다.

“강 변호사님, 사람이 언제 비굴해지는지 아세요?”

“네?”

“가진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궁지에 몰린 경우죠."

“일리는 있지만, 헛다리를 짚으신 것 같네요. 뭐를 가진 게 있어야 잃을 게 있지요. 또 희망이 없으니, 욕망도 없고 더 떨어질 바닥이 없으니, 궁지에 처할 리도 없어요. 근데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강 변호사님이 더 이상 추해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오히려 그건 제가 해야 할 말인데요? 가서 오기탁에게 전해주세요. 증거를 조작하거나 증인과 배심원을 매수하지 말라고요. 그것은 분명한 범죄니까요. 그리고 조 변도 명심하세요. 이 경고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네. 겁박까지 받았다고 전할게요.”

“겁박이 아니라 보약이죠. 보약을 먹고 태양에서 기생충처럼 살아야지요. 그럼, 이만.”

“저놈, 기탁이 말한 대로 또라이네.”

수찬은 화가 나서 땅바닥에 있는 깡통을 힘껏 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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