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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박범의 최후

by 이인철

두식은 양팔에 아가씨를 안고 목구멍에 양주를 쏟아부었다. 여종업원들이 룸으로 몰려들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5만 원권 다발을 공중에 뿌렸다. 순간, 서로 돈을 줍기 위해 밀치고 당기며 아수라장이 되었다. 매일 그는 이런 광란의 밤을 보냈다.

경마장에서 두식은 마권을 사려고 창구를 바쁘게 돌아다녔다. 경주가 끝날 때마다 그는 한 움큼의 미적중 마권을 패대기쳤다.

하우스에서 두식이 카드를 쪼고는 테이블 위의 모든 돈을 베팅했다. 이어 상대방이 패를 보이며 자기 앞으로 쓸어갔다. 그는 족보에서 한 끗 차이로 밀렸다.

“에이, 씨. 왜 이렇게 안 뜨냐? 누가 손장난 친 거 아니야?”

“개털이 됐으면 찌그러져 있어라. 담보로 손모가지도 받는다.”

빈털터리가 된 그는 도박꾼들에게 조롱당했다.

여기서는 돈이 있으면 황제처럼 대접받고, 없으면 양아치가 된다. 쫓겨난 두식은 통장을 펼쳤다. 억대의 돈이 어느새 바닥을 드러내고 잔액은 겨우 몇십만 원이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무언가 작정한 듯 가느다란 눈매가 더욱 찢어졌다.


도원그룹 비서실에 전화가 울렸다. 치수는 안색이 변하더니 회장실로 뛰어갔다.

“난은 정말 좋은 식물이지. 물만 주면 쑥쑥 자라니까. 게다가 사람처럼 속을 썩이지도 않잖아.”

“회장님, 말씀드릴 것이….”

난을 손질하던 성국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복사본을 가지고 있다는 거지? 이번을 끝으로 10억을 달라는 거고.”

“네.”

“자네는 일을 그렇게밖에 처리할 수 없나!”

“저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능력으로 계열사 사장을 맡을 수 있겠어?”

“죄송합니다.”

“할 수 없지. 자식이 돈보다 소중하니까. 더 이상 실망하면 사장단 승진은 없던 걸로 하겠네. 그리고 지금의 자리도… 나는 두 번 실망하면 다시는 안 써. 사람이건 물건이건."

비서실로 돌아온 치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지방대를 나온 내가 명문대생들이 즐비한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데.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며 임원의 이삿짐까지 날랐는데… 이번에 마무리하지 못하면 내 꿈인 임원은 언감생심이야. 아니, 이 자리에서도 잘려서 실업급여를 받을 수도 있어. 근데 더 큰 문제는 돈을 줘도 마지막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거야. 복사본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으니까. 흔적 없이 끝내야 해.’

두메산골의 부모님은 자식 6남매 중 유일하게 대학을 졸업하고 도원그룹에서 근무하는 막내를 자랑하는 낙으로 살고 있다.

치수는 사장직을 마친 후 고향에서 군수로 출마하려는 야망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명절마다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을 정성껏 대접했다. 문중에서 군수가 나오는 것은 가문의 큰 경사였고, 평생 고생한 부모님께 효도하는 길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임원 승진이 절실했고, 이 난관을 반드시 극복해야 했다. 그의 얼굴에는 결단의 기색이 감돌았다. 이윽고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흥신소입니다. 아니, 실장님께서 어쩐 일이십니까?”

“조용한 곳에서 나 좀 봐.”

전화를 끊은 치수는 중얼거렸다.

“하기야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 새끼는….”


지상은 법원 복도에서 석낙과 마주쳤다.

“이게 누구야? 고 검사님 아니신가?”

“강 변, 요즘 요즘 쪽박을 차게 생겼다며?”

“내 소문이 검찰까지 퍼졌나 보네.”

“물론이지. 우리 조우 기념으로 커피를 한 잔 하자.”

둘은 옥상으로 올라갔다.

석낙이 문을 잠그고 씹던 껌을 퉤 뱉었다.

“날씨가 더럽게 화창하구먼.”

“내가 반가워서 커피를 하자고 했겠어? 용건이 뭐야?”

“네가 맡은 사건에 내가 공판 검사라는 거 모르지? 그런 나쁜 놈을 변호하느라 똥줄깨나 타겠네. 무슨 배짱으로 나서는 거야?”

“검사는 기소가 가능한 사건만 다루지만, 변호사는 때로 승산 없는 소송도 맡는 법이야. 좋으시겠어? 영감님은 늘 이기는 싸움만 하시고.”

“야! 꼴찌가 감히 수석에게 대적이 된다고 보냐? 아마 나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무리수를 두는 거라면 빨리 접는 게 좋을 거야.”

석낙은 한쪽 다리를 난간에 걸쳤다.

“고리타분하게 케케묵은 얘기는 그만하지? 예전에는 목검이었다면 이번에는 진검승부를 해보면 되잖아. 내가 무죄를 밝혀서 네 승진에 방해가 될까 봐 두려운 거냐?”

검사는 영장 기각률과 재판에서 무죄율이 높으면 승진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꼴좋다! 검찰에서 잘리고 로펌에서 쫓겨나서 이 꼴로 살아가다니.”

순간 지상이 가방을 그의 가랑이 사이에 끼우고 힘껏 들어 올렸다.

퍽, 소리와 함께 석낙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말을 제대로 해. 내가 스스로 그만둔 거야. 아! 여기 CCTV를 설치해야겠어. 완전히 사각지대네.”

“자식, 기질은 여전하군.”

석낙은 푸시시 일어나 옷을 털었다. 그는 지상이 태권도 선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싸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렇지? 그대로지? 검사씩이면 말의 품격을 갖춰야지. 언제 어른이 될래? 글구 억울하면 너도 태권도를 배워.”

지상은 문을 열다가 획 돌아서며 말했다.

“너 아까 문 잠갔지? 그거 감금죄인데, 옛정을 생각해서 봐주는 거야.”


공판 기일이 이틀 남았다. 그들은 세호를 배제하려고 커피숍에서 모였다.

“40여 명의 후보자 명부와 질문지를 이제야 주고는 배심원 선정에 참고하라니, 정말.”

수진이 투덜거렸다. 지상이 연우에게 당부했다.

“배심원 선정 시 나와 검사가 후보자들에게 번갈아 질문할 거야. 그런데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은 배심원에서 제외될 수 있어. 되도록 튀는 발언과 행동은 자제해.”

“네. 근데 배심원에 선정되더라도 문 변이 법정에 오면 날 알아볼 텐데요?”

“그 걱정은 하지 마. 내게 묘안이 있으니까.”

“강 선배, 그게 무슨 말이야? 나랑 상아 씨 모르게 뭔가 있지?”

“아, 아무것도 아니야.”

“상아 씨, 우리 왕따 당했다. 그렇죠?”

상아는 빙긋 웃었다. 세찬 바람에 흔들리는 앙상한 나뭇가지가 창밖에 보였다. 그녀의 눈에는 그 가지가 눈보라가 몰아치는 허허벌판에서 떨고 있는 오빠처럼 느껴졌다.


자정이 넘은 시간, 만취한 두식이 룸살롱에서 나왔다.

“내일 10억이 들어오니까 술값과 팁은 달아 놔.”

“두식이 오빠, 조심해서 가세용~”

“조심은 무슨. 30년을 다닌 길인데.”

시골 도로는 가로등이 드문드문 있어 주변은 깜깜했다. 인적도 끊겼다. 그는 신나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로또는 한 번 당첨되면 끝이지만, 나는 도원그룹이라는 화수분을 가지고 있어. 지구가 멸망하기 전에 도원이 망할 일은 없잖아. 야호!”

그 순간, 두식을 향해 차가 전속력으로 돌진했다.

‘쾅!’

차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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