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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철 Jul 27. 2024

정의의 배심원

블랙박스의 행방

 다방 구석진 자리에서 두식은 아가씨의 허벅지를 더듬으며 장난쳤다. 그때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오늘 새벽 속초 신풍리에서 음주 운전으로 2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이 사고로 도원그룹 후계자 백모 씨와 일행이 부상당해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그런데 가해 차량 운전자 설모 씨는 사고 직전, 백모 씨와 운전을 교대했다며 주장하는 가운데 결정적 증거인 블랙박스가 사라져….”

 “두식 씨, 우리 마을에서 교통사고가 나 사람이 죽었나 봐. 근데 사상자 중에 도원그룹 후계자도 있대. 저걸 어쩌나.”

 아가씨가 측은한 음성으로 말했다. 

 “야! 사람 가는데 순서 있냐?”

 자신의 처지와 비교하자 불쾌한 두식이 TV를 확 꺼 버렸다. 

 다방에서 나와 터벅터벅 걷던 그의 신발에 무언가가 툭 차였다. 바로 블랙박스다. 그는 잽싸게 주웠다. 

 집으로 내달린 두식은 고꾸라지듯 자기 방으로 몸을 날렸다. 마당에서 나물을 다듬던 모친이 이 광경을 보고 혀를 찼다.

 “썩을 놈.”

 그는 블랙박스에서 메모리 카드를 빼내 컴퓨터에 꽂았다. 동영상 폴더를 누르는 손이 마구 떨렸다. 긴장된 표정이 경악에서 회심의 미소로 변해갔다.

 ‘그래! 드디어 인생 역전의 기회가 왔어!’ 

 “거기 속초 경찰서지요? 교통조사계 김민규 경장님 부탁드립니다. 형님, 저 두식이에요. 새벽에 우리 마을에서 교통사고가 났잖아요. 혹시 운전자가 도원그룹 회장 아들이에요? 아니, 그의 친구라고요?”

 돌연 두식이 자신만만하게 나왔다.

 “형님, 제가 조만간에 양주를 3차까지 쏠게요.”

 “인마, 너 대낮부터 낮술 했냐? 군말 말고 어머니 속이나 썩이지 말아. 또 사고 치면 고향 선배고 나발이고 없다.” 

 “진짜예요. 저 로또를 맞았다니까요.” 

 “미친놈.”

 탁, 전화가 끊겼다. 

 “내가 양치기 소년인가? 도무지 내 말은 믿지를 않네.” 

 이어 모친에게 소리쳤다.

 “이제 외국인 며느리 얘기는 꺼내지도 마! 곧 서울 가서 쭉쭉 빵빵한 아가씨를 데려올 테니까.”

 “정신 나간 놈.”

 “엄마, 가게 외상값이 얼마지?” 

 “갚으려고?”

 모친 얼굴에 모처럼 화색이 돌았다.

 “금방 줄 거라 하고, 소주랑 라면 좀 사 와.”

 “어이구, 저 화상! 내가 저런 놈을 낳고 미역국을 두 그릇이나 먹었으니 나도 한심한 년이지.”

 그녀는 가슴을 내리쳤다.     

 

 도원그룹 비서실의 전화가 울렸다. 

 “실장님, 회장님을 찾는 전화인데 어떡할까요?” 

 “누군데?”

 “신분은 밝히지 않고 다짜고짜 중요한 일이래요.” 

 “사전 약속이 없으면 안 된다고 해.”

 “그랬는데도 막무가내예요. 회장님 자제분의 교통사고와 관련이 있다면서요.” 

 “뭐? 얼른 돌려…!”

 치수는 헐떡이며 회장실에 들어와서는 문을 잠갔다. 

 “평소 자네답지 않게 무슨 짓이야? 문은 왜 잠그고?”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의 속삭임에 성국은 낯빛이 굳어졌다.

 “그쪽에서 요구하는 게 뭔가?”

 “블랙박스를 건네는 조건으로 5억을 달라는 겁니다.” 

 “그게 가짜일 수도 있잖아?” 

 “돈을 주기 전에 확인하면 됩니다.” 

 잠시 적막이 흘렀다.

 “일단 내일까지 미뤄 봐.”

 “네.”     

 

 제일병원 현관에 고급차가 정차했다. 상념에서 깬 성국이 차에서 내렸다.

 “아무도 들이지 말아.” 

 그는 수행비서에게 지시하고는 병실 문을 열었다. 팔에 링거 꽂은 도진이 현정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회장님, 안녕하세요?”

 “이거 박 의장님 따님이 아니신가. 도진이 문병을 왔나 본데 내가 방해를 놓는구먼.”

 “아니에요. 도진 씨가 이만하길 천만다행이죠?” 

 “그럼. 음, 음….”

 현정의 아양에 그는 감정을 억눌렀다. 

 “저의 아빠도 병문안 오실 거예요.” 

 “정말? 박 의장님께서?”

 도진은 감격했다.

 “저는 이만 가 볼게요. 도진 씨, 빨리 완쾌하세요.” 

 “박 의장님께 고맙다고 전해드려요.” 

 성국은 억지 미소로 인사치레를 건넸다.

 “저, 현정 씨와 잘될 거 같아요. 아버지, 박 의장님이 몇 선이지요?”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도진과 달리 그는 싸늘했다. 

 “너 솔직히 말해야 한다. 사고 날 네가 운전했니?” 

 “아니요. 상태가 했어요. 목격자들도 있잖아요.” 

 도진은 극렬히 손사래를 쳤다.

 “블랙박스가 발견됐는데도?”

 “네? 그럴 리 없어요! 아주 멀리 던져 버렸다고요. 경찰이 갖고 있대요?” 

 도진이 얼떨결에 내뱉었다. 성국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우리가 먼저 찾아야 해요!”

 “상태가 아니고 바로 너였구나.”

 도진은 침통한 그의 팔을 붙들고 애걸하기 시작했다.

 “아버지, 저 어떡해요. 현정 씨와 결혼 얘기도 오갔단 말이에요. 근데 이게 들통나 감옥 가면 혼사가 깨진다고요. 제가 박 의장님 사위가 되면 우리는 재력과 권력을 다 소유할 수 있어요. 막말로 상태는 잃을 게 없지만 저는 아니죠. 제발 살려 주세요. 아버지는 그럴 힘이 충분하잖아요.”

 사실 도진은 입원 후에 블랙박스가 발견될까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기자들이 취재차 병원에 포진해서 나갈 수 없었다. 이틀이 지나 변복하고 밤에 병원을 빠져나왔다. 그는 사고 일대를 손전등으로 비추며 중얼댔다.

 “이 부근인 거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실수야, 그때 옷 속에 숨겼어야 했는데.”

 결국 수거에 실패했으나, 다른 사람들도 똑같을 거라고 단정지었다. 도진이 블랙박스를 못 찾는 건 당연했다. 그것은 이미 두식의 손에 넘어간 후였으니.     


 회장실 분위기는 한없이 무거웠다. 치수는 눈치를 보느라 안절부절못했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이 일은 무조건 감춰야 합니다. 만약 사건의 진실이 터지면 국회의장 집안과의 혼사는 힘들어집니다. 물론 회장님의 평판에도 치명적인 흠이 됩니다. 한 번 눈을 질끈 감으시면 정치권력을 쥘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사실을 덮어야 합니다. 회장님.”

 성국의 얼굴에 번민하는 고통이 역력했다. 하지만 이 호기의 포기를, 명성의 전락도 용납이 안 되었다. 무엇보다 아들을 차디찬 감옥에 보낼 수 없었다. 마침내 그는 진실과 부정(父情) 사이에서 자식을 보호하기로 결심했다.

 “그놈이 요구하는 금액을 주고 블랙박스를 회수해 와.”

 “네.”

 “곧 인사이동이 있지? 이번 일을 잘 해결하면 계열사 사장단에 포함될 거야.”

 “정말입니까?”

 “이 실장, 애들이 몇이라 했나?” 

 “셋입니다.”

 “지금 도원 건설이 송도에 아파트를 분양하고 있잖아. 전망 좋은 곳에 아이들 앞으로 한 채씩 명의 이전해.” 

 “감, 감사합니다.”

 치수의 목소리는 감읍으로 넘쳤다.

 “회장님. 심려 놓으십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해서만은 안 돼!”

 “네? 무슨 말씀인지?”

 “누구나 최선은 다할 수 있어. 결실이 있어야지.” 

 “어떡해서라도 완벽히 처리하겠습니다.” 

 “자네를 믿겠네. 이 일은 무덤까지 갖고 가는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그날 밤 성국은 서재에서 상심에 잠겼다. 결론을 내면 거침없이 돌입하는 성격이다. 그 덕에 맨몸으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으며 도원을 굴지의 대기업으로 키웠다. 그는 단번에 술잔을 비우고는 수화기를 들었다.

 “윤 대표. 내일 저녁에 좀 봐.” 

 ‘그래. 상태에게는 몇천 배로 보상해 주면 되지.’

 그는 점차 괴물로 변해갔다.     

 

 야구 모자를 쓴 두식이 공원에서 그네를 타고 있었다. 멀리서 치수가 다가왔다.

 “꽤 한가하네.”

 “저야, 아쉬울 게 없죠.” 

 “근데 왜 이런 곳에서 만나자고 했어? 사람들이 많은데.” 

 “혹시 압니까? 저를 납치라도 해서 야산에 파묻을지. 다행히 여기는 보는 눈이 많아서 그럴 걱정이 없잖아요.”

 그는 여러 곳에 설치된 CCTV를 손으로 가리켰다. 

 “줘 봐. 확인할 테니.”

 “돈을 먼저 주는 게 순서가 아닐까요?” 

 “확실히 원본이겠지?”

 “당연하죠.”

 “돈은 그 계좌로 보냈어. 인출은 30분 후에 될 거야.”

 치수는 넘겨받은 메모리 카드를 노트북에 끼웠다. 동영상을 보는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5억이다! 휴대폰으로 입금을 조회한 두식은 심장이 쫄깃했다. 상상이 현실로, 이론이 실제가 되었다. 그는 벼락같이 줄행랑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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