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을 창조하다
"형수님! 이제는 모든 것은 형님에게 맡기고 건강에만 전념하세요."
"안 그래도 그렇게 하고 있어."
사실 말이지, 형수님은 오로지 형님만을 위한 인생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라, 동네에 열녀문 기념비를 세워도 무방할 것으로 생각된다.
고생과 힘든 과거를 떠나서 오로지 남편과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다 해내는 사람이었다.
그러기에 동네에서도 모두들 칭송이 자자했다.
"그건 그렇고, 언니는 건강하셔?"
"예~ 단지, 거동이 불편해서 그렇지 건강합니다."
형수가 장모님을 언니라고 한 것은 정공이 결혼하기 전, 이 동네에서 그렇게 부르는 절친한 사이였다.
동네에서 수십 년간 같이 살다 보니~ 장모님과 형수는 남이 아니라 친언니, 자매처럼 지냈었다.
그리고 형수가 정공을 장모님께 소개했고, 장인어른께서 확인하러 맞선 자리에 나왔던 것이다.
어쨌든 형수가 중매한 우리 부부는 지금 잘살고 있고 남부럽지 않게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우리가 잘 살고 있는 것이 그래도 우리 부부의 인연을 맺어준 형수에게 보답이라고 평소 생각한다.
잘살고 못살고는 순전히 우리 몫이지만, 인연의 은혜는 영원하다.
정공은 형수와 헤어져 집으로 오면서, 형수가 정말 고맙고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형수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문득 관세음보살이나 문수보살을 친견하며 대화하는 느낌이었다.
물론 항상 감사하고 은혜로운 분이지만, 대화를 하면 마음부터 편안해져 오기 때문이다.
불교대학을 다니며 경전공부를 하면서 늘 듣는 이야기가 인연과 연분인데,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남들을 대할 때나 대화할 때에도 항상 미소와 정겨운 말을 건넨다.
상담하듯 정답고 서로 뜻이 잘 통하고, 타인과의 의사소통이 잘되어 모두 다 즐겁고 행복해진다.
형수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은 은혜를 입거나 은혜를 갚아야 할 인간관계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으로 판단된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인연의 이름값을 하며 살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연이 까닭 없이 왔을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언제부터인가 정해진 길을 멋모르고 왔지만, 이제야 어렴풋이 그 인연에 대하여 알 것 같다.
마치 연어들처럼 거스르지 않고 가고 있는 것이다. 그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따라서.......
요즘 형수와 만남에서 항상 하는 주된 이야기가 건강관리이다.
건강은 어떠냐, 아픈 데는 없느냐, 운동은 하느냐 등 등이다.
건강한 삶이란 도전이란 말이 있다. 도전에는 나이가 없다. 건강하게 장수하는 비결이라고 한다.
텃밭도 훌륭한 건강비결이고, 인생을 새롭게 창조하는 것도 멋진 도전이란다.
늙는다는 것도 일종의 인생에서의 성장이고 변화이며, 자연에서의 사계절처럼 똑같은 변화이다.
며칠 전에 형수가 물었다.
"요즘, 잘 안보이던데....... 어디에 다니고 있어?"
"네~에! 불교대학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래, 무엇이든지 부지런히 배워야 해!"
정공은 형수 말씀처럼 불교대학에서 열심히 배우고 있다.
열심히 하다 보니, 생활습관도 많이 달라졌다.
우선 마음이 평온해지며 여유와 안정이 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품격이 왠지 높아져 가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전에 없었던 종교나 철학적 사고력과 사상이 자신에게 늘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스스로의 마음 안정을 구하는 것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지금도 생각해 보니 기묘하다.
물론 불도의 영향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되었다는 것은 부인을 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마도 어머님의 지극한 불도의 길이 지금, 자신까지도 그 영향에 받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의 나는 어머님의 깊은 불심에 무탈하고 행복한 나날이 계속되어 왔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어떠한 인연이, 생각도 못했던 새로운 인연으로 다가온 것이다.
현재 이어받는 것은 과거에 만든 것이며, 미래에 이어받은 것은 지금 만들고 있다고 하지만.........
어쨌든 여태까지 부모나 스승 등 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즐겁고 행복했었다.
이제는 창조된 새로운 자신을 깨닫고 수행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증득하고 있다.
실제로 정공 자신은 인생을 새롭게 창조해나가고 있다.
지나간 과거는 아주 아득한 고고학으로 여기며 새롭게 자신이 생각하는 것으로 태어나게 만들어 간다.
옛 인연에서 새 인연으로 창조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연은 내가 만들고 내가 변화를 주도하며, 내가 가능성을 찾는다.
지난 과거는 마치 앨범 속에 빛바랜 사진처럼 생각하고, 옛 인연은 그렇게 간직한다.
그리고 신선한 바람처럼 불어온 생각은 연상되는 그림을 떠올리며 새 인연을 스케치하는 것이다.
인연은 창조하는 것이다.
자식도 훌륭하게 키우는 것도, 남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이 모든 것들이 자신이 결정한다.
이러한 성공적인 삶은 바로 인연을 잘 관찰하고 순응하며 창조해 온 결괴이다.
그림을 그릴 때, 내가 경험하지 못한 장소나 사람 등 상상 속에나 가능한 것을 실제로 표현한다.
이렇게 그림은 항상 새롭게 창조되어, 그림을 본 사람은 나와의 인연이 연결된다.
어떠한 관계나 인연으로 창조되는 것이다.
꿈속과 같은 일을 현실 속에서 실제로 나타내며, 상상과 현실의 세계를 혼합한다.
자연과 사람, 인생 등 모든 면에서 가능하고 무량하며 원대하다.
자연의 사계절과 같은 것이다.
눈이 와서 온통 세상이 순백일 때, 강아지처럼 신나고 좋아하며 뒹굴기도 한다.
경이로움과 신비스러운 것이 계속 반복되며 일어난다.
마치 물이 얼음이 되고 얼음이 물이 되듯이...........
불교에서 업도 중요하고 인연도 중요하지만, 업 타령만 계속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하기에, 강인한 원력을 갖고 인연을 창조하는 삶이야 말로 바람직한 불교적 삶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