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필(Black Feel)

시즌 1 - 각성(Awakening)

by 이용주

10화: 작전 전날


[D-1]

내일이면 모든 것이...


지오는 새벽 5시에 깨어났다. 아니, 정확히는 잠들지 못했다.

은신처의 차가운 바닥. 천장의 금이 간 콘크리트.

멀리서 들리는 물 떨어지는 소리.

지오는 일어나 복도로 나왔다.

어둠고 긴 복도. 끝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회의실이었다.

문을 열자, 은별이 여전히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다.


[새벽 대화]

“또 안 잤어요?”

지오가 다가가자 은별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못자요. 내일 작전이 자꾸 머릿속에...”

“저도요.”

지오가 그녀 옆에 앉았다.

“두려워요?”

은별이 물었다.

“네. 많이.”

지오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동시에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저도 그래요.”

은별이 작게 미소 지었다.

“8년 만에 처음이죠? 진짜 감정을 느끼는 게.”

“그래요. 두려움도, 긴장감도, 기대감도... 모두 제 거예요.

구매한 게 아니라.”

“그게 바로 우리가 지키려는 거예요.”

은별이 화면을 가리켰다.

“사람들이 자기 감정을 느낄 권리. 아프더라도, 힘들더라도, 그게

진짜 자신이라는 걸 아는 것.”

지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은별 씨는... 부모님을 용서했어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은별이 멈칫했다.

“무슨 뜻이예요?”

“부모님이 감정 중독으로... 은별 씨를 남겨두고 가셨잖아요.

화나지 않았어요?”

은별은 잠시 침묵했다.

“처음엔 화났어요. 엄청나게.‘왜 나를 버렸지?

왜 나보다 감정이 더 중요했지?’라고.”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지금은... 이해해요. 부모님도 피해자였다는 걸.”

“피해자?”

“네. 감정은행이 만든 시스템의 피해자.

중독되도록 설계된 감정들.

끝없이 더 사고 싶게 만드는 마케팅.

벗어날 수 없는 빚...”

은별이 화면을 닫았다.

“부모님은 약했던 게 아니에요. 시스템이 너무 강했던 거예요.”

“그래서 이 시스템을 무너뜨리려고요?”

“네. 그래야 부모님이 편히 쉬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지오는 은별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차가웠다.

“우리가 꼭 성공할 거예요.”

“약속해요?”

“약속해요.”

두 사람은 잠시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오전 9시. 작전 최종 점검]

모든 팀원이 회의실에 모였다.

레오가 홀로그램 지도를 펼쳤다.


[최종 브리핑]

“마지막 점검이다. 내일 밤 11시, 작전 개시.”


1팀: 노감의 자연감정주의자들이 건물 앞에서 대규모 시위.

보안의 주의를 분산시킨다.

2팀: 진수가 위조 출입증으로 먼저 들어가서 보안시스템을 교란한다.

3팀: 영희가 의료진 신분으로 대기. 비상사태 시 응급처치.

4팀: 지오, 은별, 나, 그리고 노인. 핵심 침투조.

150층까지 진입해서 중앙제어실을 점령한다.

지원팀: 수진. 외부에서 언론 폭로 준비.


노감이 고개를 끄덕였다.

“200명을 동원할 수 있어요. 평화 시위지만,

충분히 주목을 끌 겁니다.”

진수가 손에든 카드를 보여주었다.

“완벽하게 위조했어요. 박민수 이사 신분증.”

영희가 의료가방을 두드렸다.

“준비됐어요.”

수진이 노트북을 들어올렸다.

“전 세계 300개 언론사에 동시 발송 준비 완료.

버튼만 누르면 돼요.”

레오가 모두를 둘러봤다.

“한 가지 명심해라. 들키면 죽는다.

강윤서는 우리를 절대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침묵이 흘렀다.

“그래도... 후회는 없겠죠?”

지오가 물었다.

모든 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없어요.”

은별이 먼저 대답했다.

“나는 아들을 위해서라도.”

진수가 덧붙였다.

“이 썩은 시스템을 만드는 데 참여한 죄책감...

이제 갚을 때가 됐어요.”

영희가 조용히 말했다.

“제가 치료한 환자들... 모두 이 시스템의 피해자였어요.

더 이상은 못봐요.”

수진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저는 그냥... 친구를 돕고 싶어요.

지오. 넌 좋은 사람이야.”

지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모두... 고마워요.”

노인 김중석이 천천히 일어섰다.

“나는 75살이네. 살 만큼 살았어.

하지만 자네들은 아직 젊어.”

노인이 모두를 바라봤다.

“내일, 내가 먼저 들어갈테니, 자네들은 뒤에서 안전하게...”

“안돼요.”

지오가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는 함께 들어가요. 함께 싸우고, 함께 이겨요.”

“하지만...”

“할아버지 혼자 희생하게 둘 수 없어요. 우리는 팀이예요.”

모든 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오후 3시. 개인 시간]

작전 전 마지막 휴식 시간.

지오는 은신처 옥상으로 올라갔다. 서울의 스카이라인이 멀리 보였다.

Emotion Bank Tower도 보였다.

150층 높이의 거대한 빌딩.

내일 밤 그곳에 들어간다.


[레오와의 대화]

“여기 있었구나.”

레오의 목소리. 그가 옆에 섰다.

“생각이 많아?”

“네.”

“두렵나?”

“솔직히...네.”

지오가 인정했다.

“죽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 죽을 수도 있지.”

레오가 담배를 꺼냈다가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금연 중이야. 딸한테 약속했거든.”

“딸... 민서 양 이야기 더 들려주실 수 있어요?”

레오는 잠시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민서는... 햇빛같은 아이였어. 항상 웃고, 노래하고, 춤추고.”

그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여섯 살 때, 나한테 물었어.‘아빠, 슬프면 왜 눈물이 나와?’

나는 대답했지.‘마음이 너무 아파서 밖으로 나오는 거야.’

그랬더니 민서가 말했어.

‘그럼 행복하면 눈물이 나와야 하는 거 아니야?”

레오가 웃었다. 슬픈 웃음이었다.

“그때 민서는 이미 알고 있었어.

모든 감정이 소중하다는 것을.”

“하지만 윤서는...”

“윤서는 딸을 너무 사랑했어. 그게 문제였어.

사랑이 너무 커서, 딸의 고통을 견딜 수 없었던 거야.”

“그래서 실험을...”

“그래. 딸을 구하려다가 딸을 잃었지.

그리고 그 죄책감이 윤서를 미치게 만든거야.”

레오가 지오를 바라봤다.

“지오, 넌 여동생을 구하지 못했다고 자책하지?”

“...네.”

“하지만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시스템의 잘못이야.”

“하지만 제가 더 주의 깊게 봤다면...”

“아니야.”

레오가 단호하게 말했다.

“지유는 용감하게 싸우다 죽은 거야.

그녀는 옳은 일을 하려고 했어.

그걸 자랑스러워해야 해.”

지오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저는... 8년 동안 그녀를 그리워할 수도 없었어요.

슬퍼할 수도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할 수 있잖아.”

레오가 지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지금 느끼는 이 슬픔, 이 그리움, 그게 진짜야.

그게 지유를 사랑했다는 증거야.”

지오는 울었다. 8년 만에 처음으로 여동생을 위해 우는 진짜 눈물.

레오는 조용히 그의 옆에 서 있었다.


[저녁 7시. 마지막 만찬]

작전 전 마지막 식사.

영희가 준비한 저녁 식사. 간단한 음식이었지만, 모두 감사하게 먹었다.

“내일이면...”

수진이 중얼거렸다.

“모든 게 끝나겠죠?”

“끝날 수도 있고, 시작될 수도 있지.”

노감이 말했다.

“우리가 이기면, 새로운 세상이 시작돼. 우리가 지면...

글쎄, 모든 게 끝나겠지.”

“긍정적이네요.”

“내일 성공하면 뭐하고 싶어요?”

“글쎄요... 생각해본 적 없어요.”

“저는 바다에 가고 싶어요.”

“바다?”

“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매년 여름 바다에 갔거든요.

그때가 가장 행복했어요.”

진수가 와인잔을 들었다.

은별이 미소 지었다.

모든 이가 이 잔을 높이 들어요.

지오가 말했다.

“그럼 건배하자. 내일 성공을 위해서.”

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려 퍼졌다.

식사 후, 지오는 은별과 함께 복도를 걸었다.

은별이 물었다.

“다시 가고 싶어요. 이번엔... 부모님은 없어시지만.”

“함께 가요.”

“내일... 성공하면, 우리 함께 바다에 가요.”

“약속이예요?”

“약속이예요.”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손을 잡았다.

“지오...”

“네?”

“...아니예요. 내일 말할께요.”

은별이 살짝 웃었다.

“내일 살아남으면요.”


[밤 11시. 잠들기 전]

모두각자의 자라로 돌아갔다. 지오는

침낭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내일이면 모든 것이 결정된다.

성공하면, 프로젝트 제로가 무너진다.

수백만 명이 구원받는다.

여동생의 복수를 한다.

실패하면... 모두 죽는다.

지오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8년 전 사진. 지오와 지유가 함께 찍은 마지막 사진.

“지유야...”

지오가 사진에 속삭였다.

“내일, 오빠가 약속 지킬게. 네가 시작한 일을 끝낼게.”

사진 속 지유는 밝게 웃고 있었다.

지오는 사진을 가슴에 품었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같은 시각. Emotion Bank Tower]

강윤서는 150층 사무실에 서 있었다.

거대한 창문 너머로 서울의 야경이 펼쳐졌다.

수 백만 개의 불빛.

“내일이면...”

그녀가 중얼거렸다.

“모든 것이 완성된다.”

책상 위의 홀로그램에는 프로젝트 제로 3단계 가동 카운트다운이

표시되어 있었다.


23:47:32

24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민서야...”

강윤서가 서랍에서 딸의 사진을 꺼냈다.

“엄마가 약속 지킬게.

네가 아팠던 이 세상을, 엄마가 고쳐줄게.”

그녀는 사진에 입맞추었다.

그리고 나서 서랍에 넣었다.

책상 위의 또 다른 화면에는 감시 카메라 영상이 떠 있었다.

폐공장 주변을 비추는 영상.

강윤서는 미소 지었다. 차갑고 계산된 미소.

“한지오. 네가 어디 숨었는지 알고 있어.”

그녀는 통신기를 눌렀다.

“보안팀장.”

“예, 이사님.”

“내일 밤, 폐공장을 포위하라.

단 한 명도 놓치지 마라.”

“알겠습니다.”

통신이 끊겼다.

강윤서는 창밖을 바라봤다.

“내일, 모든 것이 끝난다.”

“내 방식대로.”


[화요일 새벽 5시. D-Day.]

지오는 알람 없이 깼다.

오늘이다. 모든 것이 결정되는 날.

그는 일어나 창밖을 바라봤다. 동이 트고 있었다.

새로운 날이 밝았다.

마지막 날일 수도,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는 날.

은신처 곳곳에서 사람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늘,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 혹은 죽는다.

레오가 중앙에 섰다.

“모두 모여라.”

팀원들이 모였다.

“오늘 밤 11시. 작전 개시.”

“살아서 돌아오자.”

모든 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포위망]

그리고 그 순간.

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모든 이가 얼어붙었다.

“뭐야?”

은별이 창문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우리... 포위됐어요.”

창밖에는 수십 대의 검은 차량.

수백 명의 보안요원.

그리고 헬리콥터까지.

레오가 이를 악물었다.

“들켰어. 강윤서가 알고 있었어.”

지오는 은별을 바라봤다.

은별도 지오를 바라봤다.

그리고 동시에 생각했다.


계획이 바뀌었다.

지금 당장 싸워야 한다.

확성기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한지오. 나와라. 저항하면 모두 죽는다.”

강윤서의 목소리였다.

지오는 주먹을 쥐었다.

8년 만에 느끼는 진짜 감정.

두려움이 아니었다.

분노였다.

“레오.”

“응?”

“계획 변경이에요.”

지오가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바로 돌파해요.”


다음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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