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1 - 각성(Awakening)
21화: 초대장
프로젝트 제로 저지 2주 후. 서울 감정 상담 센터.
지오의 일상은 겉보기에 평온했다.
상담센터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늘어났고,
도시는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폭풍전야의 고요함처럼,
공기 중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띠링-
컴퓨터 화면에 알림 창이 떴다. 발신자 불명의 이메일.
From: R. Lee(encrypted) Subject:
Phase 3: An Invitation.
한지오.
네가 이겼다고 생각하나? 프로젝트 제로는 그저 테스트였을 뿐이다.
진실을 알고 싶다면 나를 찾아와라.
좌표를 첨부한다.
혼자 와라. 너에게 주어진 시간은 48시간이다.
[첨부] 좌표: 제주도 남서쪽 40km 해상.
지오는 모니터를 응시했다. ‘R. Lee’.
그 이름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긴급소집
지오는 즉시 팀을 소집했다.
은별, 레오, 강민지, 김중석 노인, 그리고 강민우.
“이건 분명히 함정이야.”
레오가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가 우리가 모르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요?”
은별이 반박했다.
“리처드 리 박사는 죽었어요. 기록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고요.”
강민지가 의아해하며 말했다.
그때, 강민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만약 리처드 리가 살아있다면...
우리가 아는 모든 게 틀렸을 수도 있어.”
“그게 무슨 소리인가, 자네?”
김중석 노인이 물었다.
“내가... 40년 전 그와 함께 일했네.
그는 천재였지만, 동시에 감정에 집착했지.
그가 살아있다면, 그는 매우 위험한 존재야.”
과거의 진실
은별이 빠르게 낡은 기록들을 해킹했다.
리처드 리. 2059년 E.E.S를 개발한 신경과학자.
노벨상 수상자이자 인류의 영웅.
하지만 2065년. 실험실 폭발 사고로 사망. 시신은 발견되지 않음.
“리처드 리는 죽지 않았어.”
강민우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그는 죽음을 위장했어. 내가 도왔고.”
모두가 충격에 빠져 그를 쳐다봤다.
“그는 E.E.S. 에 대한 끔찍한 진실을 발견했다고 했어.
정부가 그를 침묵시키려 한다고. 그래서 탈출을 도왔지.”
민우가 고개를 떨구었다.
“나는 그가 은퇴한 줄 알았어. 이런 걸... 계획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
지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겠어요.”
모두가 반대했지만, 지오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만약 리처드 리가 이 모든 일의 배후라면, 이유를 알아야 해요.
왜 이런 시스템을 만들었는지. 왜 하필 나를 지목했는지.”
그때 서연이 달려들어와 지오의 옷자락을 잡았다.
“가지 마요! 아저씨까지 잃고 싶지 않아요!”
지오는 무릎을 꿇고 서연의 눈을 맞췄다.
“꼭 돌아올게. 약속할게.”
결국 팀은 동의했지만. 안전장치를 마련하기로 했다.
“근처 섬에 백업 팀을 배치하겠어. 신호가 잡히면 즉시 진입한다.”
제한시간 : 48시간 00분.
다음날. 제주도 인근 해상.
지오는 작은 보트를 타고 좌표를 향해 나아갔다.
수평선 너머로 지도에 없는 작은 섬이 나타났다.
울창한 숲으로 뒤덮인 무인도. 구조물은 보이지 않았다.
해안에 도착하자마자 드론 한 대가 나타났다.
“환영합니다. 한지오 씨. 길을 따라오십시오.”
땅속에 숨겨져 있던 LED 마커들이 켜지며 숲 속으로 이어지는 길을 만들었다.
길의 끝은 거대한 절벽이었다.
지오가 다가가자 절벽의 일부가 갈라지며 하이테크 입구가 드러났다.
지하 연구 시설
“이게... 대체 뭐지?”
내부는 미래적인 지하 도시 같았다. 티끌 하나 없는 흰색 복도. 멸균된 공기.
그때 한 여성이 나타났다.
30대 중반의 한국계 미국인. 사라 강 박사였다.
유리 벽 너머로 보이는 실험실에는 최첨단 장비들이 가득했다.
“리처드 리 박사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지만 먼저 확인 절차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수백 개의 포드가 있었다.
그녀는 스캐너로 지오를 훑더니,
은별이 만들어준 시계형 추적기를 찾아냈다.
액체 속에 부유하고 있는 사람들. 머리에는 헬멧을 쓰고 있는 모습.
“영리하군요. 하지만 불필요해요.”
그녀는 추적기를 압수해 부숴버렸다.
“당신 친구들은 도울 수 없습니다.
우리 위로 50미터의 강화 콘크리트가 있거든요.
어떤 신호도 통과하지 못합니다.”
중앙 연구실
거대한 공간. 수많은 서버와 뇌파 스캔 화면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중심에, 리처드 리 박사가 있었다.
75세의 나이가 무색하게 활기차고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
“한지오! 드디어 왔군!”
“살아있었군요.”
“아주 잘 살아있지. 자네를 지켜보고 있었네.
페이즈 2를 막아낸 건 인상적이었어.”
“왜 이런 악몽을 만든 겁니까?
E.E.S. 는 수백만 명의 삶을 파괴했어요!”
리 박사가 미소 지었다.
“과연 그럴까? 아니면 인류의 진실을 드러낸 것일까?”
리 박사의 철학
“나는 PTSD를 치료하기 위해 E.E.S. 를 만들었네.
고귀한 목표였지.
하지만 발견했어. 사람들이 부정적인 감정을 팔았을 때...
그들은 더 행복해졌어.
일시적인 게 아니야. 진정으로 삶이 개선되었지.”
“나는 깨달았네. 부정적인 감정은 진화의 실수야.
공포, 분노, 슬픔... 원시인들에게나 필요했던 것들이지.
현대 인류에게는? 그저 고통일 뿐이야.”
“감정은 실수가 아니에요.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거죠!”
“그럴까? 아니면 우리를 노예로 만드는 걸까?”
리 박사는 지오를 포드 앞으로 데려갔다.
“이 사람들은 자원했네.
페이즈 3: 감정 재구축(Emotional Reconstruction) 단계지.”
“나는 감정을 없애는 게 아니야. 더 나은 버전으로 교체하는 거지.
자연적인 공포는 마비시키지만, 재구축된 신중함은 생산적이지.
자연적인 슬픔은 쇠약하게 만들지만, 재구축된 수용은 치유를 주네.”
“나는 좀비를 만드는 게 아니야.
인류의 다음 진화를 만들고 있는 걸세.”
지오가 포드 안의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미소 짓고 있었다.
“자네, 한지오는 특별해.”
리 박사가 지오에게 다가왔다.
“8년 전 슬픔을 팔았지. 그리고 그 없이도 가능했어. 오히려 더 잘.”
“나는 텅 비어 있었어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고요.”
“바로 그 거아! 자네는 자유로웠어!
어리석게도 감정을 되찾기 전까지는.”
“자네 여동생의 죽음. 그 슬픔이 무슨 목적이 있었나?
그저 자네를 아프게만 했지.”
“내 동생 얘기 하지 마!”
지오가 소리쳤다.
“한지유. 똑똑한 아이였지. 내 계획을 발견했어. 멈춰야만 했지.”
지오가 얼어붙었다.
“당신이... 죽였어.”
“박성호가 했지. 하지만 그래, 내 지시였네.
그녀는 페이즈 3을 너무 일찍 폭로하려 했으니까.”
지오가 이성을 잃고 리 박사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사라가 즉시 테이저건을 발사했다.
지오는 경련을 일으키며 스러졌다.
“보게나? 분노. 쓸모없는 감정이지
자네를 폭력으로 이끌고, 패배로 이끌었어.”
리 박사가 쓰러진 지오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만약 자네가‘ 재구축된 분노’를 가졌다면, 전략을 짰겠지.
계획했을 테고. 이겼을 걸세.”
“당신은... 미쳤어...”
“나는 선지자야. 그리고 자네에게 기회를 주지.”
“나와 함께 하게. 자발적으로 첫 번째 재구축 인간이 되는 거야.”
전 세계 1억 명의 지원자가 대기 중이야. 페이즈 3은 30일 후에 시작되네.
“거절한다면요?”
“자네는 막을 수 없어. 하지만 나는 자네가 함께하길 바라네.”
리 박사는 지오를 특별 포드로 데려갔다.
그 안에서 20대 여성이 나왔다. 유나라고 했다.
“6개월 전, 심각한 우울증으로 세 번이나 자살 시도를 했었죠.
지금은 재구축되었습니다.”
유나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약물 투여 중인가요?”
지오가 물었다.
“아니요. 저는 행복해요. 정말로요. 제 인생 처음으로.”
그녀의 미소는... 너무나 진짜 같았다. 지오는 혼란스러웠다.
“48시간. 그게 자네가 여기 머물 수 있는 시간이야.”
리 박사가 말했다.
“시설을 둘러보게. 지원자들과 이야기해 봐. 결과를 직접 확인해.”
“그리고 결정하게. 나와 함께할지,
아니면 떠나서 페이즈 3가 일어나는 걸 지켜만 볼지.”
게스트 룸.
지오는 잠깐 방 안에 혼자 남겨졌다.
리 박사는 지유를 죽였다. 용서할 수 없는 악이다.
하지만... 유나의 미소. 포드 안의 평온한 얼굴들.
지오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떨리고 있었다.
공포인가? 분노인가? 아니면 의심인가?
“그가 옳다면? 만약 감정이 정말 우리의 결함이라면?”
인터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1시간 후 저녁 식사입니다.
리 박사님이 지원자들과 함께 식사하길 원하십니다.”
지오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나는 대체 어디로 걸어 들어온 거지?”
보안 카메라가 지오를 지켜보고 있었다.
모니터 룸에서 리 박사와 사라가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흔들리고 있군요. 완벽해요.”
남은 시간: 47시간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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