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필(Black Feel)

시즌 1 - 각성(Awakening)

by 이용주

29화: 7분 45초


TIME REMAINING: 07:45...


지오는 엘리베이터의 비상 정지 버튼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엘리베이터가 굉음을 내며 지하 15층에서 멈췄다.

그는 망설임 없이 비상구 문을 박차고 나갔다.


“은별아!!!”

계단을 뛰어 내려가려는 그의 앞을 페이즈 5 병사들이 가로막았다.

검정 없는 눈동자들이 그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무전기에서 레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오! 미쳤어? 당장 탈출해!”

“절대 혼자 안 가! 비켜!”

지오는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병사들에게 달려들었다.

이성도, 두려움도 없었다.

오직 은별에게 가야 한다는 본능만이 그를 움직였다.


06:00...


원자로실.

은별은 홀로 콘솔 앞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건반 위를 춤추듯 움직였다.


VIRUS UPLOAD: 75%

NUCLEAR DISABLE: 62%


‘지오를 만나기 전까지 난 유령이었어.

하지만 이제 난 살아있어.

이게 내 죽음이라면... 적어도 의미가 있어.’


그때, 붉은 경고장이 떴다.


WARNING: BACKUP PROTOCOL DETECTED

EXTERNAL SERVER LINK ACTIVE


절망감이 밀려왔다.

와이스에게 백업 서버가 있었다.

이곳을 파괴해도 페이즈 5의 데이터는 살아남는다.


05:00...


지하 18층. 지오는 피투성이가 된 채 복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때, 반대편에서 익숙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수아였다.


“수아? 탈출한 거 아니었어?”

“누구도 뒤에 남겨두지 않아요. 다시는요.”


두 사람은 원자로실 입구까지 뚫고 들어갔다.

하지만 문은 자기장으로 봉인되어 있었다.

전력을 과부하시켜야만 열 수 있었다.

“수아! D구역 전력을 차단해!”

수아가 전기실로 달렸다.

잠시 후, 웅웅 거리는 소리와 함께 자기장 잠금이 풀렸다.


04:00


지오가 원자로실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은별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지오?! 왜 안 나갔어!”

“임무보다 네가 더 중요해!”

은별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백업 서버가... 우린 실패했어...”

“그럼 둘 다 해내면 돼. 같이.”


지오는 자신의 콘솔에 접속했다.

두 사람의 손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나가 된 것처럼 완벽한 호흡이었다.


03:00


속도를 최대한 올렸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아무리 계산해도 4분이 필요했다.

남은 시간은 3분.

“불가능해...”

그때 지오의 머릿속에 미친 생각이 스쳤다.


“핵을 무력화하지 말고... 방향을 바꾸자.

폭발력을 위쪽으로만 향하게 하면?”

“그래도 시설은 파괴돼! 우린 죽어!”

“원자로 차폐실이라면... 버틸 수 있어.”

희박한 확률이었지만, 유일한 희망이었다.


02:00...


계획을 수정했다.

폭발 방향 재설정과 바이러스 업로드를 동시에 진행했다.

2분 40초가 필요했다. 시간은 2분.


VIRUS: 96%... 98%...

BLAST REDIRECT: 90%


“지오! 건물이 무너지고 있어! 우린 탈출한다!”

레오의 마지막 무전이 들려왔다.


01:00...


VIRUS UPLOAD: COMPLETE.

PHASE 5 DATA CORRUPTED.


바이러스는 성공했다.

하지만 폭발 방향 재설정이 94%에서 멈췄다.


ERROR: MANUAL OVERRIDE REQUIRED


누군가 원자로 코어실 안으로 들어가 수동으로 밸브를 돌려야 했다.

코어실은 차폐실 밖에 있었다.

밸브를 돌리면, 돌아올 시간은 없었다.

은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갈게.”


지오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안돼! 내가 가!”

그 순간. 은별이 지오에게 입을 맞췄다.

짧지만, 모든 진심이 담긴 입맞춤이었다.


“너를 만나서 행복했어. 고마워.”

그녀는 순식간에 지오를 차폐실 안으로 밀어 넣고 밖에서 잠가버렸다.


00:30...


지오가 방탄유리를 주먹으로 내리치며 절규했다.

하지만 은별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코어를 향해 달렸다.


00:25... 00:20...


은별이 밸브를 잡았다.

그녀의 가냘픈 팔에 핏줄이 섰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 밸브를 돌렸다.


BLAST VECTOR REDIRECTED: 100%


00:10... 00:05...


은별이 마지막으로 지오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울고 있었지만, 활짝 웃고 있었다.


00:00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30분 후.


구조대가 도착했다.

지오는 잔해 속에서 끌려 나왔다.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그는 비틀 거리며 잔해를 파헤쳤다.


“은별아!!! 어디 있어!!!”

2시간의 수색 끝에, 그들은 원자로 코어실에서 그녀를 발견했다.

지오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그의 울음소리가 폐허가 된 공장에 메아리쳤다.


다음 날. 병원.


지오는 붕대를 감은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TV 뉴스 속보가 그의 의식을 깨웠다.

[속보] 마거릿 와이스 박사, 개인 전용기로 출국...

외교 면책 특권으로 체포 불가...

지오가 거칠게 링거를 뽑아냈다.

강민지가 그를 막아섰다.


“지금 움직이면 죽어요!”

“그 여자가 은별이를 죽였어. 절대 못 보내.”

강민우가 들어왔다.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제네바로 갔어. 스위스에 와이스의 백업 시설이 있어.

페이즈 5는 끝나지 않았어.”


레오가 조용히 다가와 낡은 노트북 가방을 내려놓았다.

방수 케이스 덕분에 살아남은 은별의 노트북이었다.


TO. 지오

지오야.

만약 네가 이걸 읽고 있다면, 난 아마 없을 거야.

괜찮아. 이건 내 선택이었어.

너를 만나기 전까지 난 목적 없이 살았어.

하지만 너와 함께한 시간들이 내 인생에 의미를 줬어.

PROMISE ME: 끝까지 싸워. 와이스를 막아.

그리고... 행복해져. 날 위해서.

사랑했어.

- 은별


지오의 뺨 위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노트북을 천천히 닫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눈동자에서 슬픔은 사라지고

차가운 살기만이 남아 있었다.


“스위스로 가지. 이번엔 완전히 끝낸다.”

팀이 다시 모였다.

지오, 레오, 민지, 수아, 민우.

그리고 감옥에서 특별 사면으로 풀려 난 윤세라까지.


“그녀에게 빚이 있어. 갚게 해 줘.”

제네바행 비행기에 오르는 그들의 뒤로 거대한 전광판이 번쩍였다.


48 HOURS UNTIL PHASE 5 GLOBAL ACTIVATION


‘은별아. 지켜볼게. 네가 목숨 걸고 지킨 세상을.

내가 끝까지 지킬게.’


다음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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