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필(Black Feel)

시즌 1 - 각성(Awakening)

by 이용주

30화: 인간의 증명


GLOBAL LAUNCH: 36 HOURS REMAINING


스위스 제네바, 평화로워 보이는 제약 연구소 지하에는

인류의 종말을 준비하는 거대한 기지가 숨겨져 있었다.

지오와 팀원들은 삼엄한 경비를 뚫고 인근 숲 속에 은신했다.


TARGET: WEISS BACKUP FACILITY

STATUS: 50,000 SUBJECTS READY FOR DEPLOYMENT

OBJECTIVE: REPLACEMENT OF KEY GLOBAL FIGURES


강민우가 해킹한 데이터는 절망적이었다.

페이즈 5 실험체 5만 명.

그들은 이미 전 세계 주요 인사들을 대체할 준비를 마쳤다.

정치가, CEO, 군사 지도자...

이들이 대체되는 순간 호모 사피엔스의 시대는 끝나고

‘호모 이모투스’의 시대가 열린다.


24 HOURS REMAINING


200명의 강화 병사와 와이스 박사를 상대로 정면 승부는 불가능했다.

침묵을 깬 것은 윤세라였다.


“우리가 싸우지 맙시다. 그들이 스스로 싸우게 만들죠.”

그녀의 계획은 대담했다.

페이즈 5 실험체들에게 ‘감정 바이러스’를 주입하는 것.

그들에게 진짜 감정을 돌려주면,

그들은 명령에 의문을 품고 갈등하게 될 것이다.


“제가 미끼가 될게요.”

정수아가 손을 들었다.


“탈출한 실험체가 제 발로 돌아오면,

와이스는 호기심을 참지 못할 거예요.

그 틈에 침투하세요.”


18 HOURS REMAINING


시설 내부에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와이스 박사는 수아를 고문하며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었다.

수아는 끔찍한 신경 프로그래밍을 견뎌내며 시간을 벌었다.


‘더 이상 무섭지 않아. 난 혼자가 아니니까.’

그녀의 희생 덕분에

지오와 세라는 환기구를 통해 중앙 신경 허브에 도달할 수 있었다.


12 HOURS REMAINING


중앙 허브는 5만 개의 신경 연결 포드가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공간이었다.

마치 기계로 만든 벌집 같았다.


UPLOADING EMOTION RESTORATION VIRUS... 15%


세라가 바이러스 업로드를 시작하자마자 경보가 울렸다.

와이스가 침입을 감지했다.

레오와 민지가 입구를 필사적으로 방어했지만,

페이즈 5 경비병들의 압도적인 힘에 밀리고 있었다.

“5분! 그들이 도착하기까지 5분 남았어!”

민우의 절박한 외침이 무전기를 때렸다.


10 HOURS REMAINING


허브의 문이 열리고 마거릿 와이스 박사가 나타났다.

그녀의 뒤로 수십 명의 무장 병력이 도열했다.


“너무 늦었네, 미스터 한. 10시간 후면 인류는 진화한다.”

“당신은 신이 아니야. 누가 존재할 가치가 있는지 결정할 권리는

없어. ”“난 이미 결정했어. 5만 명의 완벽한 존재가

80억의 결함덩어리보다 낫지.”


와이스는 스크린에 전쟁, 살인, 학대 영상을 띄웠다.

“보게. 이게 자네가 지키려는 인류야.

감정이 만들어 낸 지옥이지. 난 고통을 끝내려는 거야.”

“고통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거야!

은별이가 수백만을 위해 죽었을 때, 그게 바로 인간성이었어!”


08 hours remaining


“그녀 말이 맞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오의 눈이 커졌다.

죽은 줄 알았던 리처드 리 박사가 와이스의 곁으로 걸어 나왔다.


“리 박사... 당신이 어떻게...”

“난 인류를 고치려 했고, 와이스는 대체하려 했지.

둘 다 필요해.”

지오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

“당신이 내 동생을 죽였어!”

“수십억을 구하기 위해 하나를 희생했다. 차가운 수학이지.”


06 HOURS REMAINING


VIRUS UPLOAD COMPLETE.

INITIATING AWAKENING SEQUENCE.


“이게... 뭐지? 왜... 눈물이 나지?”


한 경비병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인공 인간들이 생애 처음으로 공포, 혼란, 호기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은 집단 각성이었다.


“안돼! 멈춰! 접속을 끊어!”

와이스가 비명을 질렀다.


04 HOURS REMAINING


와이스가 비상 정지 장치를 꺼내 들었다.

그것을 누르면 5만 명의 뇌가 즉시 파괴된다.


“내가 완벽하게 만들 수 없다면, 차라리 폐기하겠어.”

“그들은 이제 살아있어! 느끼고 있다고!”


지오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는 무기를 버리고 앞으로 나아갔다.


“ 날 가져요. 대신 나를 당신의 완벽한 인간으로 만들어요.

그들을 놔주고.”

“자네의 인간성을 포기하겠다고?”

“5만 명을 살릴 수 있다면, 그게 인간이 하는 일이니까.”


리 박사가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냈다.

“매혹적이군. 궁극의 테스트야.”


02 HOURS REMAINING


지오는 개조 챔버에 들어갔다.

팀원들이 절규했지만 그는 세라에게 작게 속삭였다.

“날 믿어.”


개조가 50% 진행되었을 때,

지오는 숨겨둔 계획을 실행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는 대신, 시스템 전체로 역류시켰다.

그의 슬픔, 은별을 향한 사랑, 상실의 고통, 지유를 잃은 분노.

한 인간이 겪은 가장 강렬한 감정의 파도가 5만 명의 네트워크를 강타했다.


SYSTEM OVERLOAD: EMOTIONAL SURGE DETECTED

SYNCHRONIZATION RATE: 100%


5만 명의 페이즈 5 실험체들이 동시에 지오의 마음을 느꼈다.

그들은 은별의 죽음을 함께 슬퍼했고, 지유의 희생을 함께 아파했다.

그들은 지오의 심장을 통해 인간이 무엇인지 배웠다.


“우리는... 느끼고 싶다. 고통일지라도.”


실험체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와이스는 시스템 과부하로 비상 정지 장치조차 작동시킬 수 없었다.

리 박사가 그들을 막으려 했지만,

수백 명의 실험체들에게 제압당했다.


30 MINUTES REMAINING

반쯤 개조된 상태로 비틀거리는 지오가 와이스 앞에 섰다.

그녀는 구석에 몰려 떨고 있었다.

처음으로 공포라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난... 난 그저 나 자신을 고치려던 거였어... 더 이상 느끼고 싶지 않았어...”

와이스가 무너져 내렸다. 30년 만에 흐르는 눈물이었다.


“그럼 지금 느끼세요. 아직 늦지 않았으니까.”


PROJECT PHASE 5: TERMINATED

E.E.S. NETWORK: OFFLINE


1개월 후. 서울 추모 공원.

서은별과 사라 강을 비롯한 영웅들의 동상이 세워졌다.

“그들은 증명했습니다. 인간성은 목숨을 걸고 지킬 가치가 있다는 것을.”

지오의 연설을 듣는 군중 속에는

사회에 적응해 가는 페이즈 5 생존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서툴지만, 진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지오는 은별의 묘소를 찾았다.

그의 감정은 개조의 후유증으로 아직 불안정하지만,

서서히 돌아오고 있었다.

그는 은별의 마지막 편지와 함께 전해주지 못한 반지를 묘비에 놓았다.


“약속 지켰어. 세상은 안전해.

그리고 나도... 행복해지려고 노력 중이야.”

바람이 불어왔다.

지오는 처음으로 진심으로 미소 지었다.

그는 치유되고 있었다.


[최고 보안 교도소]


와이스는 독방 벽에 무언가를 그리고 있었다.

그것은 복잡한 설계도였다.

교도관이 식판을 내려놓았다.


“페이즈 6은 내 존재가 필요 없어. 이미 시작됐으니까.”

와이스가 중얼거렸다.

교도관의 눈이 순간적으로 번뜩였다.

그의 손목에는 희미한 페이즈 5의 표식이 있었다.

“네, 박사님. 페이즈 6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즌2: PHASE 6: 최후의 전쟁(THE FINAL WAR)에서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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