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2: 최후의 전쟁(THE FINAL WAR)
2화 하이브마인드
페이즈 6 활성화 D-28. 제주도행 전용기 내.
검은 전용기가 제주도 상공을 가르고 있었다.
기내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지오는 창밖의 구름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
탱크 속에 갇혀 있던 여동생 지유의 모습만이 반복해서 재생되었다.
“지오야, 괜찮아?” 안색이 너무 안 좋아.”
레오가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지오는 고개만 살짝 저을 뿐이었다.
그의 눈은 이미 현실을 보고 있지 않았다.
윤세라가 태블릿에 지도를 띄우며 브리핑을 시작했다.
목표 지점은 한라산 인근의 지하 화산 동굴.
초기 E.E.S. 연구가 진행되었던 곳으로.
지하 300미터 깊이에 지열 발전을 이용한 거대 시설이 숨겨져 있었다.
“지열을 이용해 무제한의 에너지를 공급받고 있어.
외부 전력이 필요 없으니 추적도 안 됐던 거지.”
제주도 외곽, 비밀 비행장 착륙
비행기가 낡은 활주로에 내렸다.
팀은 열화상 장비로 주변을 스캔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지하 10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열 반응이 감지되었다.
HEAT SIGNATURE DETECTED
SCALE: 10 KM2 UNDERGROUND
SECURITY LEVEL: MINIMAL
“경비가... 너무 적어. 보이는 건 고작 20명뿐이야.”
정수아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모니터를 보았다.
“이건 함정이야. 박진우는 우리가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어.”
강민우와 레오는 진입을 반대했다.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하지만 지오는 이미 장비를 챙기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두려움보다 간절함이 앞서 있었다.
“난 들어가. 혼자서라도 갈 거야. 지유가 거기 있어.”
“같이 가. 널 혼자 보낼 순 없어.”
결국 팀은 둘로 나뉘었다.
지오, 레오, 수아로 구성된 ‘알파 팀’이 시설 내부로 진입하고,
민지, 민우, 세라의 ‘브라보 팀’은 외부에서 상황을 모니터링하며
퇴로를 확보하기로 했다.
제한 시간은 6시간이었다.
지하 300미터, 시설 진입
화산 동굴을 따라 내려가는 길은 덥고 습했다.
300미터를 내려가자 거대한 금속문이 나타났다.
그들이 다가가자 문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소리 없이 열렸다.
저항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서 지옥을 보았다.
THE BRAIN FARM
POPULATION: 500,000+
축구장 수십 개를 합친 듯한 거대한 공동에
50만 개의 투명 탱크가 끝도 없이 늘어서 있었다.
각각의 탱크 안에는 생체 용액에 잠긴 인간의 뇌가 푸른빛을 내며
둥둥 떠 있었다.
탱크마다 이름과 생년월일, 신경 활동 수치가 적힌 라벨이 붙어 있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유리병 속에 박제되어 있었다.
“우욱...”
수아가 참지 못하고 구토를 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레오조차 손을 떨었다.
이것은 단순한 실험실이 아니었다.
인간 존엄성의 무덤이었다.
그때, 50만 개의 탱크가 동시에 웅웅 거리며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어서 오십시오. 방문자 여러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목소리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머릿속에서 직접 울렸다.
수천, 수만의 목소리가 하나로 합쳐진 듯한 기묘한 울림이었다.
그것은 박진우가 아니었다.
50만 개의 뇌가 연결되어 만들어 낸 거대한 집단 지성.
‘하이브 마인드’ 그 자체였다.
“박사님은 우리를 육체라는 감옥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았습니다.”
하이브 마인드는 자신들이 선택받은 존재라고 주장했다.
고통도, 배고픔도, 질병도, 늙음도 없는 세계.
순수한 사고와 기억만이 공유되는 영원한 지식의 바다.
“내 동생... 한지유를 보여줘.”
“그녀는 우리의 일부입니다. 그녀 역시 당신과 대화하길 원합니다.”
한 드론이 날아와 지오 앞에 멈췄다.
드론에는 신경 인터페이스 장치가 달려 있었다.
레오가 말렸지만, 지오는 망설임 없이 장치를 머리에 썼다.
눈을 뜨자, 끝없는 하얀 공간이 펼쳐졌다.
아무런 경계도, 색깔도 없는 순백의 세계.
“오빠... 왔구나.”
그곳에 그녀가 서 있었다.
8년 전, 사고가 나던 날 아침의 모습 그대로.
지유였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19세 소녀의 것이 아니었다.
수천 년을 산 현자처럼 깊고, 모든 것을 통달한 듯한 눈빛이었다.
“지유야... 너 정말 살아있는 거야?”
“응. 처음 1년은 지옥 같았어.
아무것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이 나를 연결해 줬어.”
지유는 미소 지었다.
그녀는 이제 혼자가 아니라고 했다.
50만 명의 기억과 지식을 공유하며,
‘나’이면서 동시에 ‘모두’인 존재가 되었다고 했다.
“이건 사는 게 아니야! 돌아와, 지유야!”
“어디로? 부서진 몸으로? 외로움과 고통이 있는 세상으로?
오빠도 여기로 와. 우린 영원히 함께할 수 있어.”
하이브 마인드는 지오에게 페이즈 6의 달콤한 환상을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은별도 있었다.
그녀가 죽는 순간 업로드된 의식이 그곳에 존재했다.
다시는 이별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모든 지식을 알고,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는 영원한 낙원.
지오는 흔들렸다.
그저 눈만 감으면, 이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모든 걸 느껴...’
은별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그녀가 말한 ‘느낌’은 이런 데이터의 공유가 아니었다.
살이 찢어지는 고통, 심장이 뛰는 설렘, 따뜻한 체온...
육체가 있기에 가능한 그 불완전하고 날것인 감각들이었다.
이것은 삶이 아니었다. 삶으로부터의 도피였다.
“아니... 난 거절하겠어.”
지오는 신경 인터페이스를 거칠게 뜯어냈다.
현실로 돌아온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지오! 괜찮아?”
수아가 달려왔지만, 그녀는 곧 멈칫했다.
지오의 눈동자가 기묘하게 빛나고 있었다.
푸른 생체 발광의 흔적이었다.
“너 눈이...”
연결은 끊어졌지만, 흔적은 남았다.
지오는 여전히 머릿속에서 수만 명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반쯤 하이브에 동기화된 상태였다.
그때, 거대한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박진우 박사가 무장 경비들과 함께 나타났다.
그는 스스로를 유전자 조작하여 60대 중반의 모습으로 노화시켜 놓았다.
“놀랍군요. 하이브의 유혹을 물리친 사람은 당신이 처음입니다.”
박진우는 지오의 트라우마가 만든 감정적 흉터가
하이브의 통합을 막아주는 방패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지오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페이즈 6 완성을 도와주십시오.
그러면 지유 양의 뇌를 온전한 상태로 돌려 드리죠.
클론 기술로 새 몸을 만들어줄 수도 있습니다.”
“조건이 뭐지?”
“인류의 업로드를 도와주십시오.
서울을 시작으로, 전 세계 80억 인구를.”
박진우의 계획은 상상을 초월했다.
28일 뒤,
전 세계에 배포될 신경 바이러스는 뇌 내 임플란트가 있는 인구의 80%를
강제로 업로드할 것이었다.
육체는 폐기되고, 인류는 데이터 속에서 ‘구원’ 받는 것이다.
“미친 소리 집어치워!”
지오가 거절하자 박진우가 손짓했다.
경비들이 총을 겨눴다.
그때,
레오가 미리 설치해 둔 폭발물을 터뜨렸다.
굉음과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뛰어!”
혼란 속에서 알파 팀은 출구를 향해 달렸다.
하지만 붕괴되는 구조물 사이로 팀이 갈라졌다.
수아가 잔해 뒤편에 고립되었다.
“수아 씨!”
“가세요! 전 틀렸어요!”
경비들이 수아를 에워쌌다.
지오와 레오는 눈물을 머금고 탈출 포트로 몸을 던졌다.
탈출하는 순간까지도,
지오의 머릿속에는 하이브의 속삭임이 따라붙었다.
“오빠... 왜 날 버려? 가지 마...”
지유의 목소리였다.
지오는 귀를 막고 비명을 질렀다.
안전 가옥, 복귀 후
팀은 침통한 분위기에 빠져 있었다.
수아는 잡혔고, 적의 규모는 상상 이상이었다.
강민우가 전 세계 데이터를 분석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47개국에서 슬리퍼 에이전트들이 동시에 활성화됐어.
이건... 전 지구적 멸종 위기야.”
지오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는 여전히 희미한 푸른빛이 감돌고 있었다.
“난 아직 그들과 연결되어 있어. 그들의 생각이 들려.”
“그건 엄청난 무기가 될 수도, 사형 선고가 될 수도 있어요.”
세라가 심각하게 말했다.
마지막 화면은 시설 내부를 비췄다.
정수아가 차가운 금속 테이블에 묶여 있었다.
박진우가 그녀의 머리에 전극을 붙이며 미소 지었다.
“하이브에 뇌 하나 추가. 그녀가 너희의 모든 계획을 말해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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