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SE INFINITY - 영원한 전쟁(THE ETERNAL WAR)
10화: 행복한 디스토피아
2106년 2월 14일(3개월 후)
서울: 봉쇄 직전
3개월이 흘렀다. 그리고 세상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ETERNAL HAPPINESS: KOREA STATISTICS]
TOTAL MEMBERS: 52,847
GROWTH RATE: +18,000/MONTH
MARKET PENETRATION: 0.1%(NATIONAL POPULATION)
AVERAGE SESSION TIME: 22 HOURS/DAY
MORTALITY RATE: 0.3%(158 DEATHS)
STATUS: EPIDEMIC LEVEL
지오는 ECU 본부 옥상에서 서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도시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지만, 어딘가 활기가 사라진 것 같았다.
‘52,847명... 한 달에 18,000명씩 늘어나고 있어.
이 속도라면 1년 안에 100만 명이 넘을 거야.
그리고 그때는... 막을 수 없어.’
레오가 커피를 들고 올라왔다.
“또 여기 있구나.”
“... 우리가 지고 있어, 레오.”
“알아,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어.”
“끝나지 않았다고? 158명이 죽었어. 행복하게 죽었지만... 죽었어.
그런데도 회원 수는 계속 늘고 있어.
사람들은...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아.”
레오는 난간에 기대며 말했다.
“어젯밤에... 내 동생한테 연락이 왔어.
‘영원한 행복’ 회원이 됐대.
행복하다고... 처음으로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지오는 레오를 바라봤다.
“... 말렸어?”
“말렸지. 하지만 동생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
‘형은 행복해본 적 있어?’라고 물었어.
나는... 대답할 수 없었어.”
ACT 1: 붕괴하는 일상
서울 시내. 명동 거리는 한산했다.
3개월 전만 해도 수만 명이 오가던 거리가 이제는 텅 비어 있었다.
준서가 거리를 걸으며 보고했다.
“팀장님, 상황이 심각해요. 명동 상가의 30%가 문을 닫았어요.
직원들이 ‘영원한 행복’ 회원이 돼서 출근을 안 해요.”
“30%...”
“강남은 더 심각해요. 40% 이상이 휴업 상태예요.
주인들도 회원이 되고, 직원들도 회원이 되고...”
가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문에는 ‘휴업’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휴업
저희 카페는 당분간 영업을 중단합니다.
사장 및 직원 모두가 ‘더 나은 삶’을 선택했습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
지오는 안내문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것은... 그들의 선택이었다.
ACT 2: 정부 긴급회의
청와대 위기관리센터. 대통령, 장관들, 그리고
지오를 포함한 ECU 팀이 모여 있었다.
대통령이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현재 대한민국 경제는 붕괴 직전입니다.
노동력의 0.1%가 ‘영원한 행복’에 빠져 있고,
이 속도라면 6개월 내에 5%가 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경제부총리가 그래프를 띄웠다.
[ECONOMIC IMPACT ANALYSIS]
GDP 감소율: -2.3%(3개월)
실업률 증가: +1.8%
세수 감소: -8억 달러
예상 시나리오(6개월 후):
회원 수: 250,000명(5%)
GDP 감소: -12%
경제 붕괴 가능성: 78%
WARNING: CRITICAL
“제안이 있습니다. ‘영원한 행복’을 불법화하는 겁니다.
마약처럼 취급하는 거죠.”
법무장관이 말했다. 하지만 지오는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합니다. ‘영원한 행복’은 약물도 아니고, 침습적 시술도 아닙니다.
단순히 VR 기술일 뿐이에요. 그걸 불법화하면 모든 VR 산업이 무너집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지오는 잠시 침묵했다.
“...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답이 없습니다.
이건 강제가 아니라 선택이에요.
사람들이 스스로 행복을 선택하는 건데...
그걸 막을 방법이 없어요.”
대통령이 한숨을 쉬었다.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한 팀장. 당신이라면... 선택하시겠습니까?
고통스러운 현실과 완벽한 가상 중에서.”
지오는 대통령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 현실을 선택하겠습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왜냐하면 저는... 진짜를 살고 싶으니까요.”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셨죠?”
[NATIONAL OPINION POLL: FEB. 2106]
Q: “영원한 행복을 금지해야 하는가?”
찬성: 31%, 반대: 69%
Q: “개인이 가상 행복을 선택할 권리가 있는가?”
YES: 82%, NO: 18%
결론: 국민의 대다수가 ‘영원한 행복’을 지지함.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의 82%가 찬성하는 것을 정부가 막을 수는 없습니다.”
지오는 말문이 막혔다.
ACT 3: 학교의 변화
서울 강남구 A고등학교. 준서가 학교 상담교사를 인터뷰하고 있었다.
“학생들 중에도 회원이 있나요?”
“... 있어요. 전교생 1,200명 중 47명이 회원이에요.
부모님 몰래 가입했죠.”
“그 학생들은 어떻게 됐나요?”
“학교에 안 나와요. 집에서 VR 헤드셋만 쓰고 있어요.
부모님들이 헤드셋을 빼앗으면... 자해를 하거나 가출을 해요.”
상담교사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한 학생은 창문에서 뛰어내리려고 했어요.
‘가상 세계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울부짖으면서.
그 아이는... 겨우 15살이에요.”
준서는 주먹을 쥐었다.
‘15살... 아직 인생을 시작하지도 않은 아이가...
벌써 가상 세계에 갇혀버렸어.’
ACT4 : 가족의 붕괴
ECU 본부로 한 여성이 찾아왔다.
30대 후반, 지친 얼굴이었다.
“제 남편을... 구해주세요. ‘영원한 행복’ 회원이 된 지 두 달째예요.
이제는 집에도 안 들어와요. 회사도 관뒀어요.
센터에서 살고 있어요.”
지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남편분께 직접 말씀해 보셨나요?”
“해 봤어요! 하지만 남편은... 웃기만 해요.
‘나는 처음으로 행복해졌어. 당신도 함께하자’ 고만해요.
우리 딸도 있는데... 딸을 보고도 아무 감정이 없어요.”
여성이 울먹였다.
“남편이 사라지는 게 느껴져요. 겉모습은 남편인데...
속은 텅 비어 있어요.
그냥... 행복한 껍데기만 남았어요.”
수아가 여성을 안심시키려 했다.
“저희가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회원 가족 지원 프로그램이에요. 하지만...”
“... 효과가 거의 없어요. 한 번 ‘영원한 행복’을 경험한 사람은...
돌아오지 않아요.”
ACT 5: 김태윤과의 대면
지오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직접 ‘영원한 행복’ 본사를 찾아갔다.
강남 고층 빌딩 최상층. 김태윤은 전망 좋은 사무실에서 지오를 맞이했다.
“한지오 팀장님, 환영합니다.
직접 찾아오시다니 영광입니다.”
“그만둬, 김태윤. 이제 그만 멈춰.”
“멈춰? 무엇을 멈추라는 건가요?”
“당신이 하는 짓! 158명이 죽었어! 수만 개의 가족이 무너졌어!
경제가 붕괴하고 있어!”
김태윤은 조용히 웃었다.
“158명이 죽었다고요? 하지만 그들은 행복하게 죽었어요.
그리고 52,847명이 살아 있어요. 행복하게.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요?”
“행복하게 사는 게 아니야! 그들은 도피하고 있는 거야!”
“도피와 삶의 경계는 뭔가요? 팀장님, 당신도 알잖아요.
현실은 고통으로 가득해요. 가난, 질병, 외로움, 죽음의 공포...
그걸 견디며 사는 게 진짜 삶인가요?”
김태윤이 창밖을 가리켰다.
“저 밖을 보세요. 수백만 명이 불행하게 살고 있어요.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하고, 직장에 가기 싫어하고,
살아있는 게 고통이에요.
하지만 저는 그들에게 선택지를 줬어요. ‘행복’이라는 선택지를.”
“그건 선택이 아니야! 마약을 주면서 ‘선택하라’고 하는 거랑 똑같아!”
“마약? 흥미로운 비유네요. 그럼 항우울제는? 진통제는? 수면제는?”
“행복은 괜찮고, 디지털 행복은 안 되나요?”
지오는 대답할 수 없었다.
“팀장님, 당신은 10년 동안 고통받았어요. 지유 씨를 잃고, 은별 씨를 잃고...
매일 죄책감과 슬픔 속에서 살았죠. 그게 ‘진짜 삶’인가요?
아니면 그냥... 불필요한 고통인가요?”
“... 고통도 삶의 일부야. 고통이 없으면 행복도 없어.”
“틀렸어요. 고통 없이도 행복할 수 있어요.
저희 회원들이 증명하고 있잖아요.
그들은 고통 없이 매일 행복해요.”
김태윤이 지오에게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제안할게요. 함께하세요.
ECU를 이용해서 ‘영원한 행복’을 확산시켜요.
강제가 아니라 권장으로.
5년 안에 우리나라 국민의 50%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어요.”
“... 미쳤구나.”
“미쳤다고요? 아니에요. 저는 정신이 멀쩡해요.
미친 건 이 세상이에요.
사람들을 고통받게 만드는 이 세상이 미쳤어요.
저는 단지... 그걸 고치려는 거예요.”
ACT 6: 지오의 결단
ECU 본부로 돌아온 지오는 팀원들을 소집했다.
“우리는 졌어. 법적으로, 여론적으로, 모든 면에서 졌어.
하지만... 아직 한 가지 방법이 남았어.”
“무슨 방법?”
지오는 태블릿에 자료를 띄웠다.
“김태윤을 제거한다. 그가 없으면 ‘영원한 행복’도 무너질 거야.”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수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거한다는 게... 설마...”
“암살이야.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막을 수 없어.
그럼 불법적인 방법을 써야지.”
“지오! 그건 살인이야!”
레오가 소리쳤다.
“알아.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
김태윤 한 명 vs 수백만 명의 미래. 선택은 명확해.”
“그럼 우리도 박진우랑 똑같아지는 거야!”
“아니야. 박진우는 사람들을 강제로 바꾸려 했어.
하지만 우리는 사람들을 지키려는 거야.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달라.”
민우가 고개를 저었다.
“지오, 그건 우리 스스로를 속이는 거야.
동기가 선하다고 살인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야.”
준서가 일어섰다.
“저는... 팀장님을 따르겠습니다. 김태윤을 막아야 해요.
어떤 방법으로든. ”“준서, 넌 아직 어려. 이게 무슨 의미인지 몰라.”
“알아요! 하지만 제 부모님도 Phase 6 때 죽었어요.
이번에도 같은 일이 반복되는 걸 보고만 있을 순 없어요!”
ACT 7: 분열
회의는 결렬되었다. 팀은 둘로 나뉘었다.
찬성(암살 지지): 지오, 준서, 전술팀 12명
반대(평화적 해결): 레오, 수아, 민우, 나머지 33명
“지오, 네가 이러면... 우리는 더 이상 함께 일할 수 없어.”
레오가 배지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레오...”
“10년 동안 함께 싸웠어. 하지만 이건... 너무 넘어섰어.
우리가 살인자가 되는 순간, 우리는 박진우보다 나을 게 없어.”
수아와 민우도 배지를 내려놓았다.
“지오, 난 너를 이해해. 절박한 거 알아. 하지만 이 방법은 틀렸어.”
지오는 배지들을 바라봤다. 10년 동안 함께한 동료들이 떠나고 있었다.
‘나는... 틀린 걸까? 아니면 그들이 이상주의에 빠진 걸까? 모르겠어...
더 이상 무엇이 옳은지 모르겠어.’
ACT 8: 작전 개시
밤 11시. 지오와 준서, 그리고 전술팀 12명이 출동했다.
목표: 김태윤의 펜트하우스
[OPERATION: DECAPITATION]
TARGET: KIM TAEYOON
LOCATION: GANGNAM PENTHOUSE - 47TH FLOOR
TEAM: 14 OPERATIVES
OBJECTIVE: ELIMINATE TARGET
METHOD: SNIPER SHOT
AUTHORIZATION: UNAUTHORIZED
STATUS: ROGUE OPERATION
‘하지만... 이게 정말 옳은 걸까? 나는 지금 살인자가 되려고 하고 있어.
정의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박진우도 같은 말을 했었지.’
“(무전) 지오, 하지 마. 제발... 하지 마.”
“레오? 어떻게...”
“(무전) 네 위치를 추적했어. 지오,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너는 돌아올 수 없어.
우리가 지키려던 세상은 사라져.”
지오는 숨을 멈췄다.
ACT 9: 선택
5초, 10초, 30초가 지났다.
지오는 여전히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있었다.
‘왜... 왜 못 당기는 거야? 이게 유일한 방법인데...
왜 손이 떨리는 거야?’
그때, 김태윤이 창문 쪽을 바라봤다. 마치 지오를 보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웃었다.
손을 들어 인사를 하듯 흔들었다.
‘그는... 알고 있어. 내가 여기 있다는 걸.
그리고 내가 쏘지 못한다는 것도.’
지오는 총을 내려놓았다.
“... 철수한다.”
“팀장님?!”
“철수해. 나는... 살인자가 될 수 없어.”
ACT 10: 에필로그 – 새로운 세상
다음 날, 김태윤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어젯밤, ECU의 한지오 팀장이 저를 암살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습니다. 왜일까요?”
“왜냐하면 한지오 팀장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행복’은 악이 아닙니다. 이것은... 진화입니다.
인류가 고통에서 벗어나는 진화.”
스크린에 숫자가 떠올랐다.
[ETERNAL HAPPINESS: UPDATE]
MEMBERS(KOREA): 63,214
MEMBERS(GLOBAL): 187,492
PROJECTED 1 YEAR: 2,000,000
PROJECTED 5 YEARS: 50,000,000
PROJECTED 10 YEARS: 500,000,000
“한지오 팀장님, 그리고 ECU 여러분. 당신들은 졌습니다.
하지만 슬퍼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우리가 이긴 세상은...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니까요.”
“행복한 미래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TV를 끄고, 지오는 창밖을 바라봤다.
거리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하지만 절반쯤은 VR 헤드셋을 쓰고 있었다.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이게... 행복한 디스토피아구나. 사람들은 행복해.
하지만 인간은 아니야. 그들은... 행복한 껍데기일 뿐이야.’
레오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지오... 우리 이제 어떻게 해?”
“모르겠어.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
싸움은 끝나지 않았어. 아직... 끝나지 않았어.”
POST-CREDIT SCENE
[1년 후 – 2107년]
[서울 도심. 거리의 80%가 VR 헤드셋을 쓰고 있다.]
[ETERNAL HAPPINESS: 2107 STATUS]
KOREA: 2,340,000 MEMBERS(4.5%)
GLOBAL: 23,000,000 MEMBERS
ECONOMIC STATUS: COLLAPSED
GOVERNMENT STATUS: NON-FUNCTIONAL SOCIETY STATUS
HAPPY DYSTOPIA
“아무도 일하지 않지만, 모두가 행복합니다.”
[ECU 본부, 지오와 소수의 저항군만 남아있다.]
지오가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지오: “우리는... 인류 최후의 불행한 사람들이야.
하지만 그게 더 인간다운 걸지도 몰라.”
[멀리서 김태윤의 홀로그램 광고가 떠오른다.]
“당신도 행복하고 싶지 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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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선택입니다. 행복도 선택입니다.”
다음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