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필(Black Feel)

시즌 1 - 각성 (Awakening)

by 이용주

SF 스릴러 / 사회 풍자 드라마 / 디스토피아


시즌 1 - 각성 (Awakening)


프롤로그: 감정이 상품이 된 세상


2095년.

인류는 마침내 감정을 정복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감정을 상품화했다.

E.E.S.(Emotion Extraction System).

뇌파 스캔을 통한 감정 추출 기술.

2059년, 신경 과학자 리처드 리 박사가 개발한 이 기술은 인류 역사를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처음에는 치료 목적이었다.

PTSD로 고통받는 참전 군인의 트라우마를 제거하고, 우울증 환자의 절망을 덜어내고, 공황장애 환자의 공포를 추출해 내는 것. 그것은 혁명이었다.

노벨의학상이 수여되었고, 전 세계는 환호했다.

하지만 인류는 곧 깨달았다.

추출된 감정은 다시 주입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순간, 감정은 의학을 넘어섰다.


2064년.

첫 번째 감정은행이 뉴욕에 설립되었다.

초기에는 논란이 거셌다. 종교계는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행위”라고 규탄했고,

윤리학자들은 “인간성의 상실”을 경고했다. 시위대가 거리를 메웠고, 법안이 의회에서 부결되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시장은 그들의 반대보다 빨랐다.

면접을 앞둔 청년이‘자신감’을 구매했다.

이혼 후 우울에 빠진 여성이‘평온함’을 구매했다.

중요한 프레젠테이션 전날 직장인이‘집중력’을 구매했다.

데이트 전 남성이‘유머감각’을 구매했다.

수요는 끝이 없었다.

2069년, 감정거래는 전 세계적으로 합법화되었다.

2073년, 감정은행이 증권거래소를 제치고 최대 규모의 시장이 되었다.

2078년, 감정은 제2의 화폐가 되었다.


그리고 2095년.

감정은 이제 공기보다 흔하고,

물보다 싸며,

사랑보다 쉽게 살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서울, Emotion Bank Tower.

지상 150층, 지하 20층,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감정은행 본부.

누군가는 감정을 사러 오고, 누군가는 감정을 팔러 온다.

1층 로비의 거대한 전광판에는 실시간 감정 시세가 흐른다.

오늘도 감정의 가격은 오르락내리락한다. 주식처럼, 환율처럼.

하지만 모두가 아는 진실이 하나 있다.

구매한 감정은 진짜가 아니다.

72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일주일이 지나면 증발한다.

아무리 비싼 프리미엄 감정이라도, 결국은 허공으로 흩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시 산다. 그리고 또 산다.

중독되듯, 습관처럼.

어느새 자신의‘진짜 감정’이 무엇인지 잊어버린 채로.


2095년 서울의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손목에는 모두 같은 것이 채워져 있다.

감정주입기.

애플워치처럼 세련된 디자인의 웨어러블 디바이스.

다섯 개의 슬롯에 감정 캡슐을 끼우면,

즉시 그 감정이 뇌로 전달된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사람들은‘각성’ 캡슐을 주입한다.

점심시간 식당에서, 사람들은‘식욕’ 캡슐을 주입한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우면,‘수면’ 캡슐을 주입한다.

하루 종일,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관리’한다.

마치 스마트폰 배터리를 충전하듯이.


그런데 가끔, 아주 가끔,

누군가는 묻는다.

“나는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 걸까”

“이 기쁨은 내가 느끼는 걸까, 아니면 구매한 상품을 소비하는 걸까?”

“내 진짜 감정은 어디에 있는 걸까?

하지만 그 질문은 오래가지 않는다.

질문하는 것도 피곤하니까.

고민하는 것도 귀찮으니까.

그냥 또 한 번 감정을 구매하면 되니까.


이곳은 2095년, 서울.

감정이 상품이 된 세상.

여기, 감정을 사고파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

8년 전, 자신의 모든 감정을 팔아버린 한 남자가 있다.

한지오. 27세.

감정은행 3급 중개인(broker).

그는 매일 다른 사람의 감정을 거래하지만,

정작 자신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심리학 박사와 인공지능이 함께 만든

그의 이야기가 지금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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