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필(Black Feel)

PHASE INFINITY - 영원한 전쟁(THE ETERNAL WAR)

by 이용주

17화: 신들의 황혼(Ragnarok Part 3)


2114년 1월 15일(D-DAY)


스발바르 지하 2.9km: 최후의 관문


지오의 죽음 이후, 남은 18명의 생존자들은 지옥을 통과했다.

그것은 비유가 아니었다. 7개의 관문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고통을 시험했다.


[SURVIVOR LOG]

LEVEL 4(MEMORY): 3 SUICIDES

LEVEL 5(ENDURANCE): 2 FATALITIES

LEVEL 6(BETRAYAL): 5 KILLED IN ACTION

LEVEL 7(DESPAIR): 3 SUICIDES

CURRENT SURVIVORS: 5


남은 사람은 단 5명. 준혁, 서연, 현우, 그리고 C팀의 대원 2명.

그들의 눈에는 더 이상 공포조차 담겨있지 않았다.

오직 끝을 보겠다는 광기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ACT 1: LEVEL 8 – 마지막 희생


여덟 번째 방에 도착했을 때, 그들을 맞이한 것은 또다시 거대한 문이었다.

그리고 그 문을 열기 위한 조건은 명확했다.


“LEVEL 8: SACRIFICE AGAIN. 두 명의 생명이 필요합니다.”


준혁이 앞으로 나서려 했다.

하지만 C팀의 두 대원이 그를 막아섰다.

그들은 이미 피투성이였고, 한 명은 팔을 잃은 상태였다.


“여기까지입니다. 저희는.”

“팀장님을 따라가겠습니다. 부디... 코어를 부숴주십시오.”


말릴 새도 없이 그들은 제단 위로 올라갔다.

기계장치가 작동하는 소리와 함께, 육중한 문이 열렸다.

준혁은 입술을 깨물어 피를 흘렸다.


이제 3명. 준혁, 서연, 현우


ACT 2: 준혁의 통로


아홉 번째 관문에서 그들은 흩어졌다.

준혁은 홀로 어둠 속을 걸었다.

어둠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준혁아, 넌 해낼 수 있어.”


삼촌 민우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또 다른 목소리.


“코어를 부숴라. 망설이지 마라.”


지오의 마지막 당부였다. 준혁은 주먹을 꽉 쥐었다.

환영인지 실제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꼭... 성공하겠습니다.”


통로 끝에서 눈부신 빛이 쏟아져 나왔다.

마침내, 세상의 끝에 도달한 것이다.


ACT 3: 코어 도달


준혁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지하 3km의 거대한 공동(空洞).

그 허공에 지름 100m의 거대한 구체가 떠 있었다.

구체는 수천만 개의 빛나는 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각각의 점이 하나의 인간 의식이었다.


THE CORE

STATUS: ONLINE

CONNECTED CONSCIOUSNESS: 20,482,194


준혁은 떨리는 손으로 배낭에서 소형 핵폭탄을 꺼냈다.

현우가 설계한 특수 기폭장치였다.

그는 코어의 제어 패널에 폭탄을 부착하고 타이머를 설정했다.


DETONATION SEQUENCE INITIATED

T-MINUS: 05:00


ACT 4: 김태윤의 유혹


그때, 코어의 빛들이 모여 하나의 형상을 만들었다.

김태윤이었다. 그는 마치 신처럼 공중에 떠서 준혁을 내려다보았다.


“축하합니다. 강준혁 군. 당신이 승자입니다.

이 게임의 유일한 생존자군요.”


준혁은 대답 대신 총구를 겨눴다. 김태윤은 부드럽게 웃었다.


“하지만... 정말 폭탄을 터뜨릴 수 있을까요?

2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살인자가 될 텐데?”

“제안을 하나 하죠. 폭탄을 멈추세요.

그러면 당신에게 선택권을 드리겠습니다.

삼촌 민우를 돌려드리죠.

Phase Omega 시스템 안에서 그를 완벽하게 부활시킬 수 있습니다.”


허공에 민우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가 준혁을 향해 손을 뻗었다.


“준혁아... 삼촌 여기 있어. 아프지 않아. 행복해...”


ACT 5: 준혁의 선택


준혁의 손이 흔들렸다. 타이머는 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민우의 환영이 애처롭게 그를 불렀다.


“살려줘... 다시 죽기 싫어...”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준혁의 뇌리에 지오의 마지막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차가운 물속에서 그가 했던 말.


‘너희들 차례야.’


그리고 이곳까지 오기 위해 희생된 한지오 팀장님을 비롯한 사람들의 얼굴들이 떠올랐다.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으려면.


“거짓말하지 마세요.”


준혁의 목소리는 차분해졌다.


“삼촌은 이미 죽었어요. 당신이 만들 수 있는 건 0과 1로 이루어진 복사본일 뿐이에요.

내 삼촌은...

그런 가짜 행복을 원하지 않았어.”


그는 민우의 환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홀로그램이 흩어졌다. 타이머는 멈추지 않았다.


ACT 6: 폭발


서연과 현우가 뒤늦게 도착했다.

김태윤은 그들에게도 죽은 가족들을 보여주며 유혹했지만,

누구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의 손을 잡았다.


T-MINUS 00:10... 00:09...


김태윤은 결국, 피조물이 파괴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미친 과학자일 뿐이었다.


00:00


섬광

세상의 모든 빛을 삼키는 듯한 백색의 폭발이 일어났다.

수천만 개의 별들이 동시에 비명을 지르며 소멸했다.

그것은 라그나로크, 신들의 황혼이었다.


ACT 7: 탈출 그리고 생존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굉음 속에서

3명은 비상 탈출 포드를 타고 지상으로 솟구쳤다.

북극의 빙하 위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들은 살아남았다. 50명 중 단 3명.

생존율 6% 하지만 그들은 해냈다.


에필로그: 1주일 후


2114년 1월 22일.

전 세계의 Phase Omega 시스템이 멈췄다.

2천만 명의 의식은 영원히 사라졌다.

그것은 역사상 가장 큰 대량 학살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인류가 기계의 노예가 되는 것을 막은 구원이기도 했다.


서울 본부로 귀환한 3명을 맞이한 것은 797명의 환호가 아니었다.

묵념이었다.

레오는 지팡이를 짚은 채 준혁을 끌어안고 울었다.

수아는 말없이 지오의 빈자리를 바라보았다.


POST-CREDIT SCENE


[3개월 후, 2114년 4월]


준혁은 새로운 ECU 팀장이 되었다.

서연은 부팀장, 현우는 기술팀장을 맡았다.

새로운 세대가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어딘가의 깊은 바닷속, 파괴되지 않은 비밀 서버실에서

희미한 불빛이 깜박이고 있었다.


[SYSTEM BACKUP DETECTED]

SUBJECT: KIM TAE-YUN

RESTORATION PROGRESS: 0.003%

ESTIMATED TIME: 10 YEARS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다음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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