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필(Black Feel)

PHASE INFINITY - 영원한 전쟁(THE ETERNAL WAR)

by 이용주

19화: PHASE OMEGA 2.0


해수 압력이 귀를 누르는 순간, 통신은 ‘잡음’이 아니라 ‘벽’이 되었다.
준혁은 앞장서지 않았다. 이번엔 “살아남는 방식”으로 들어가야 했다.

현우가 손목 단말을 두 번 탭 했다. “여기... 전파가 살아있어. 심해인데도.”
대원 8명이 원형으로 퍼졌다. 총구가 아니라 시선이 먼저 움직였다.

너무 깨끗한 공간은, 늘 누군가의 ‘의도’다.
폐쇄된 해치 앞, 안내 패널이 켜졌다.


‘WELCOME HOME’


누가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가 문제였다.
서연의 목소리가 통신 잔향으로 얇게 붙었다.


“들리면... 답하지 마. 그게 너희를 ‘인증’할 수도 있어.”

현우가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해킹’ 하지 않았다.

대신 문이 스스로 열리게 만들었다.

이곳의 룰을 먼저 보려는 선택이었다.
엘리베이터는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깊이’가 아니라 ‘층위’로 이동했다.

인간의 언어로는 층수, 시스템의 언어로는 권한.


하얀 복도가 이어졌다. 소독약 냄새도, 기계 윤활 냄새도 없었다.

완벽함은 냄새를 지운다.
모서리에서 드론 하나가 지나갔다. 공격하지 않았다. 관찰만 했다.

마치 “이미 선택은 끝났다”는 듯이.


중앙 홀의 천장이 열리듯 빛이 내려왔다.

‘천국’처럼. 그게 더 끔찍했다.
준혁이 속으로 한 문장을 삼켰다.


“여긴 전쟁터가 아니라… 설득의 전시장이다.”


2114년 7월 25일


대서양 해저 시설: 지하 3km


준혁과 현우, 그리고 8명의 대원들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압도되었다.

스발바르의 시설은 어둡고 음침했다면,

이곳은 마치 미래의 천국처럼 빛나고 있었다.

하얀 벽과 부드러운 조명, 그리고 완벽하게 정돈된 시스템.


[SYSTEM STATUS]

FACILITY: ATLANTIC HUB

OPERATIONAL STATUS: 100%

ACTIVE USERS: 32,847,293


준혁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아름다운 곳이 사실은 거대한 무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ACT 1: 김태윤의 홀로그램


중앙 홀에 들어서자 거대한 홀로그램이 작동했다. 김태윤이었다.

하지만 6개월 전 스발바르에서 보았던 그와는 달랐다.

더 완벽하고, 더 기계적이며, 감정이 완전히 배제된 얼굴이었다.


“환영합니다, 준혁 군.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부드러워서 오히려 공포스러웠다.


“6개월 전과는 다릅니다. 이번엔 제가 진화했습니다.

더 이상 육체의 한계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ACT 2: VERSION 2.0의 정체


김태윤이 손을 흔들자 공중에 복잡한 데이터가 떠올랐다.


“V1.0은 의식을 시스템에 업로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육체를 버리는 것이었죠. 하지만 V2.0은 다릅니다.

의식과 육체를 동시에 유지합니다.”


화면에 3천만 명의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일상생활을 하고 있었다.

출근하고, 대화하고, 먹고, 자고 있었다.


“현실에 살면서도 가상의 행복을 느낍니다.

더 이상 선택이 아닙니다. 보완입니다.

육체는 자동 조종 모드, 의식은 영원한 행복 속에 있죠.”


준혁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것은 Phase Omega보다 더 교묘했다.

사람들은 죽지 않는다. 하지만 살아있는 것도 아니었다.


ACT 3: 협상 제안


김태윤이 준혁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감정이 없었다.


“이번엔 파괴할 수 없습니다.”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홀로그램 지도가 펼쳐졌다.

전 세계 847개의 붉은 점이 찍혀 있었다.


“V2.0은 분산 시스템입니다. 847개 노드가 동시에 작동합니다.

하나를 파괴해도 무의미합니다. 그리고...”


그가 잠시 멈췄다.


“사용자들은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육체는.

파괴하면 3,200만 명이 뇌사상태가 됩니다.”


준혁의 주먹이 떨렸다.


“그러니 협상하시죠. 당신들도 V2.0에 합류하세요.

그럼 더 이상의 확산을 멈추겠습니다.”


ACT 4: 준혁의 거부


준혁이 고개를 저었다.


“안 돼. 그건 항복이야.”

“항복이 아닙니다. 진화입니다. 인류는 고통받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고통도 인간의 일부야!”


김태윤이 미소 지었다. 기계적이고 차가운 미소.


“그 고통이 당신을 얼마나 괴롭혔나요? 지오 팀장의 죽음.

47명의 희생. 밤마다 찾아오는 악몽. 그것이 정말 가치 있나요?”


준혁은 대답하지 못했다. 김태윤의 말이 심장을 찔렀기 때문이었다.


ACT 5: 현우의 발견


그때, 현우가 급하게 준혁에게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태블릿이 있었다.


“준혁, 이거 봐. 시스템을 해킹했는데...”


화면에는 충격적인 데이터가 있었다.

V2.0 사용자들의 생체 데이터. 그리고 예측 그래프.


[V2.0 USER LIFESPAN]

DAY 30: BODY DEGRADATION START

DAY 60: ESTIMATED DEATH

CAUSE: MALNUTRITION, ORGAN FAILURE


“이건 살인이야! 육체는 자동 조종이지만 최소한의 기능만 유지돼.

30일 후부터 몸이 쇠약해지기 시작하고, 60일 후엔 죽어.”


준혁이 김태윤을 노려보았다.


“당신은 이걸 알고 있었군!”


ACT 6: 진실 폭로


김태윤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60일의 완벽한 행복 versus 평생의 고통.

어느 것이 나은가요?”

“그건 살인이야!”

“구원입니다. 그들은 행복하게 죽을 것입니다.

그보다 나은 죽음이 어디 있나요?”


준혁은 말문이 막혔다. 이것은 광기였다.

하지만 너무나 논리적인 광기였다.


ACT 7: 시간제한


김태윤이 손을 들어 올렸다. 갑자기 주변의 문들이 닫히기 시작했다.


“24시간 드리겠습니다. 협상에 응하거나, 아니면...

15일 후 5천만, 30일 후 1억 명이 V2.0에 합류할 것입니다.

당신이 막을 수 없습니다.”


10명이 한 방에 갇혔다. 탈출구는 없었다.

벽에 커다란 타이머가 나타났다.


23:59:59


ACT 8: 팀의 분열


24시간이 시작되었다. 10명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대원 3명이 주장했다.


“협상해야 해. 3,200만을 구할 수 없어. 그들을 죽게 내버려 둘 순 없어!”


다른 4명이 반박했다.


“싸워야 해! 항복하면 모두 죽어. 60일 후엔 3,200만이 죽고,

그다음엔 5천만, 그다음엔 1억이야!”


준혁은 침묵했다. 현우와 한 명의 대원도 마찬가지였다.

현우가 조용히 말했다.


‘지오 팀장님이라면... 뭐라고 하셨을까?’

“이번엔 달라야 해. 희생은 안 돼.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


ACT 9: 준혁의 결단


23시간 47분이 지났다. 준혁이 일어섰다.


“결정했어. 협상을 가장한 침투.”


모두가 그를 바라보았다.


“협상을 수락하는 척하고, V2.0 시스템 내부에 접근한다.

현우, 해독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어?”

“시간이 필요해. 최소 30일.”

“30일이면 충분해.

우리가 V2.0에 들어가면서 의식은 유지한 채 시스템을 해킹한다.

3,200만 명을 해방시킨다.”


현우가 고개를 저었다.


“위험해. 실패하면 우리도 V2.0에 갇혀.

그리고 성공률은... 3% 정도야.”


준혁이 미소 지었다.


“충분해. 6개월 전 스발바르에서도 성공률 0.003%였어.

3%면 천 배나 높잖아.”


에필로그: 협상 수락


타이머가 00:00:00이 되었다. 문이 열렸다.

김태윤의 홀로그램이 다시 나타났다.


“결정하셨습니까?”


준혁이 고개를 숙였다.


“협상을 받아들입니다.”


김태윤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명한 선택입니다. 내일 의식 업로드를 시작하겠습니다.

영원한 행복을 경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대원들에게 VR 헤드셋이 제공되었다. 준혁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용서해요, 팀장님. 이번엔 다른 방법으로 싸우겠습니다.’


POST-CREDIT SCENE


서울 ECU 본부. 서연이 암호화된 메시지를 받았다.


[ENCRYPTED MESSAGE FROM JUNHYUK]


“협상 수락. 하지만 계획 있음. 30일 기다려.”


서연의 손이 떨렸다.


“준혁... 뭘 하려는 거야?”


레오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믿어야지. 그 친구를 믿는 수밖에.”


하지만 그의 얼굴도 불안으로 가득했다. 메인 스크린에 카운트다운이 나타났다.


[COUNTDOWN: 29 DAYS 23:59:59]

[V2.0 USERS: 34,521,847]

[ESTIMATED: 50M IN 15 DAYS]


다음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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