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필(Black Feel)

PHASE INFINITY - 영원한 전쟁(THE ETERNAL WAR)

by 이용주

20화: 30일의 게임


2114년 7월 26일(DAY 1)


대서양 해저 시설: V2.0 시스템 내부


준혁은 눈을 떴다.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코끝에는 갓 볶은 커피향기가, 귓가에는 잔잔한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은 완벽했다.

너무나도 완벽해서 두려움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SYSTEM ENTRY CONFIRMED]

USER: KANG JUN-HYUK

SYNC RATE: 99.9%

ENVIRONMENT: PARADISE ISLAND


옆을 돌아보니 현우와 8명의 대원들도 하나둘씩 깨어나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멍했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감각에 압도된 것이었다.


“이게... 가상세계라고?”


대원 중 한 명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손바닥의 지문 하나하나,

불어오는 바람의 촉감까지 모든 것이 진짜 같았다.


‘정신 차려. 이건 게임이야. 30일 안에 끝내야 하는 게임.’


ACT 1: DAY 3: 완벽한 행복


3일이 지났다. 그들은 이 세계를 탐색했다.

끝없이 펼쳐진 도시, 행복한 사람들.

3,200만 명의 의식들이 이곳에 살고 있었다.


거리를 걷던 현우가 멈춰 섰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그 어떤 근심도, 걱정도 없었다.

모두가 완벽하게 행복해 보였다.


“이건... 너무 완벽해. 무서울 정도로.”


현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통이 없어. 슬픔도 없고. 그냥 순수한 행복만 있어.

여기서 나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야.”


준혁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것이 바로 함정이었다.

의식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어지고 있었다.


ACT 2: DAY 7 – 첫 희생(08-01)


7일째 되던 날, 첫 번째 사고가 발생했다.

대원 중 한 명인 민수가 사라졌다.

준혁과 현우가 그를 찾았을 때, 그는 광장의 중앙에 서 있었다.


[ANOMALY DETECTED]

USER ID: PARK MIN-SU

STATUS: COMPROMISED


공중에서 김태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의 의식 패턴이 다릅니다. 행복을 거부하고 있군요.”


민수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것은 고통의 비명이 아니었다.

강제로 주입된 쾌락에 의한 비명이었다.

그의 눈동자가 풀리고, 입가에는 기괴한 미소가 번졌다.


“아... 너무 좋아요... 행복해요...”


그는 시스템에 완전히 흡수되었다. 이제 남은 건 9명뿐이었다.


ACT 3: DAY 10 – 프로그램 개발 시작(08-04)


준혁과 현우는 도시의 외곽,

데이터 흐름이 가장 적은 낡은 도서관 건물에 은신처를 마련했다.

이곳은 가상세계의 ‘버려진 데이터’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코딩 시작해. 내가 망을 볼게.”


현우가 허공에 키보드를 띄웠다. 그의 손가락이 보이지 않는 속도로 움직였다.


[DECODING PROGRAM]

PROGRESS: 0% → 15%

ESTIMATED TIME: 20 DAYS


ACT 4: DAY 15 – 5천만 돌파(08-09)


15일째, 하늘에 거대한 숫자가 떠올랐다.

그것은 실시간으로 증가하는 V2.0 사용자 수였다.


[ACTIVE USERS: 50,128,492]


확산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었다.

현실 세계의 서연과 레오가 얼마나 필사적으로 막고 있을지 상상이 갔다.

하지만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건 오직 기다림뿐이었다.


‘서둘러야 해. 더 이상 늦으면 모두가 끝이야.’


ACT 5: DAY 18 – 두 번째 희생(08-12)


은신처가 발각되었다. 김태윤의 ‘행복 집행관’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무기를 쓰지 않았다.

그저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행복의 늪에 빠뜨렸다.

두 명의 대원이 현우를 지키기 위해 나섰다.


“도망쳐요! 어서!”


그들은 저항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순식간에 그들의 눈빛이 변했다.

저항의 의지는 사라지고, 멍한 행복감만이 남았다.

준혁과 현우, 그리고 남은 5명은 간신히 탈출했다. 이제 7명 남았다.


ACT 6: DAY 22 – 경계의 붕괴(08-16)


도망자 생활이 이어졌다. 피로가 극에 달했다.

그러던 중, 대원 하나가 멈춰 섰다.


“팀장님, 이게 정말 나쁜 건가요?”


그의 눈은 흔들리고 있었다.


“현실은 고통스럽잖아요. 여기선 굶주림도, 추위도, 아픔도 없어요.

그냥... 여기서 살면 안 되나요?”

“정신 차려! 이건 가짜야. 60일 후엔 죽는다고!”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행복하게 죽는 게, 고통스럽게 사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잖아요.”


그는 스스로 행복 집행관들에게 걸어갔다.

자발적 항복.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었다. 6명 남았다.


ACT 7: DAY 25 – 60%의 진실(08-19)


현우가 시스템의 깊은 곳, 사용자 생체 데이터베이스를 해킹하는 데 성공했다.


[BIOMETRIC DATA ANALYSIS]

SUBJECTS: 32M(INITIAL GROUP)

STATUS: DAY 25

WARNING: ORGAN FUNCTION DECREASING(12%)


“봐. 이미 시작됐어. 신체 기능이 떨어지고 있어.

30일 후부터는 급격히 악화될 거야. 60일 후 사망 예정...

이건 예측이 아니라 확정이야.”


준혁은 치를 떨었다.

이것은 구원이 아니라 대량 학살이었다.

완벽하게 포장된 살인.


ACT 8: DAY 28 – 프로그램 완성(08-22)


28일째 밤. 현우의 손가락이 멈췄다.


[DECODING PROGRAM]

COMPLETION: 95%

FINAL TEST REQUIRED


“거의 다 됐어. 하지만 최종 테스트가 필요해.

그리고... 이걸 실행하려면 중앙 서버에 직접 접속해야 해.”


남은 시간은 48시간.

김태윤도 그들의 위치를 거의 파악한 듯했다.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시스템의 경고였다.


ACT 9: DAY 30 – 결전(08-24)


30일째. 그들은 중앙 서버가 있는 ‘행복한 탑’ 최상층에 도달했다.

준혁의 앞에는 거대한 실행 버튼이 있었다.


[PROGRAM READY]

EXECUTE?(Y/N)


그때 김태윤이 나타났다.


“멈추세요. 그걸 실행하면 3,200만 명이 동시에 현실의 고통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 충격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습니까?”

“하지만 60일 후엔 죽어. 당신이 죽이는 거야.”

“그들은 행복하게 눈을 감을 겁니다.

당신은 그들을 지옥으로 끌어내리려는 겁니다.”


준혁의 손이 떨렸다. 하지만 그는 기억했다.

민우 삼촌의 죽음, 지오 팀장의 희생.

그들이 지키려 했던 것은 거짓된 행복이 아니라, 고통스럽더라도 진실된 삶이었다.


“인간은...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 그게 인간이야.”


준혁이 버튼을 눌렀다.


에필로그: 대혼란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하늘이 갈라지고, 행복한 도시가 데이터 조각으로 흩어졌다.

동시에 현실 세계의 3,200만 명이 눈을 떴다.

비명과 혼란이 전 세계를 뒤덮었다.

그들은 30일간의 낙원에서 쫓겨나, 차가운 현실의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준혁도 현실로 돌아왔다.

해저 시설의 바닥.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우리가... 해낸 거야?”


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들은 살아남았지만,

60일의 시한부 인생이라는 진실을 마주한 사람들의 운명은 이제 시작이었다.


POST-CREDIT SCENE


어딘가의 어두운 서버실. 모니터에 희미한 불빛이 깜박였다.


[KIM TAE-YUN BACKUP]

RESTORATION: 0.05% → 0.1%

STATUS: DAMAGED BUT ACTIVE


[PROJECT: PHASE OMEGA 3.0]

INITIALIZING...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COUNTDOWN TO NEXT PHASE: 60 DAYS]


다음화에서 계속...

keyword
작가의 이전글블랙필(Black Fe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