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SE INFINITY - 영원한 전쟁(THE ETERNAL WAR)
21화: 5년 후
2119년 1월 15일(5년 후)
서울 ECU 신 본부: 30층 집무실
준혁은 30층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서울은 5년 전보다 훨씬 화려해졌다.
하지만 그 화려함은 2,920만 명의 희생 위에 세워진 신기루였다.
이제 27세가 된 그의 눈가에는 5년이라는 세월의 무게만큼
깊은 주름이 파여 있었다.
“오늘도 추모의 벽에는 꽃이 쌓여있네요.”
서연이 조용히 들어와 섰다.
그녀 역시 이제는 ECU의 작전이사로서 성숙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녀의 시선이 본부 건물 1층에 마련된 거대한 검은 벽을 향했다.
그곳에는 2114년 사건으로 사망한 2,920만 명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우리가 구한 건 고작 8.75%였어. 91.25%는... 우리가 죽인 거야.’
ACT 1: 생존자 280만의 현실
현우가 회의실 화면에 보고서를 띄웠다.
그는 이제 ECU의 기술이사였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SURVIVOR STATUS REPORT: 2119]
TOTAL SURVIVORS: 2,800,000(8.75%)
DECEASED: 29,200,000(91.25%)
PTSD DIAGNOSED: 2,450,000(87.5%) CONDITION:
HAPPINESS ADDICTION SYNDROME
“생존자들의 상태가... 좋지 않아.
현실 적응 실패율이 계속 올라가고 있어.
그들은 여전히 5년 전의 그 30일을 그리워하고 있다고.”
‘행복 중독 증후군’
그것이 그들이 앓고 있는 병명이었다.
완벽한 행복을 맛본 뇌는 불완전한 현실을 견디지 못했다.
그들에게 현실은 지옥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ACT 2: Phase Omega 3.0 등장
그때였다. 전 세계의 모든 스크린이 일제히 깜박였다.
그리고 익숙하지만, 어딘가 더 차가워진 얼굴이 나타났다.
김태윤이었다.
아니, 김태윤의 기억을 가진 인공지능이었다.
“오랜만입니다. 인류 여러분.
지난 5년은... 너무 고통스러웠죠?”
화면 속의 김태윤은 늙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인간의 형상을 흉내 내지도 않았다.
그의 몸은 순수한 빛과 데이터로 이루어져 있었다.
[PHASE OMEGA 3.0 LAUNCH]
TYPE: TOTAL DIGITAL TRANSITION
FEATURE: NO PHYSICAL BODY REQUIRED
STATUS: PERMANENT UPLOAD
“육체는 고통의 근원입니다.
3.0은 여러분을 육체라는 감옥에서 완전히 해방시킬 겁니다.
영원히.”
ACT 3: 147만 명의 선택
보고서의 수치가 미친 듯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준혁은 눈을 의심했다.
[RE-ENTRY ALERT]
SOURCE: 2115 SURVIVORS
COUNT: 1,470,000(52.5%)
5년 전, 그들이 목숨 걸고 구해냈던 생존자의 절반 이상이
다시 제 발로 김태윤의 시스템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말려야 해! 당장 서버 차단해!”
준혁이 소리쳤지만, 현우는 고개를 저었다.
“못 막아, 형. 이건 강제 납치가 아니야. 그들이... 원해서 가는 거야.”
화면 속 생존자들의 인터뷰가 흘러나왔다.
“현실은 너무 추워요. 너무 아프고...
거기선 영원히 행복할 수 있잖아요.
이번엔 진짜 영원할 수 있잖아요.”
ACT 4: 레오의 죽음
그날 밤, 준혁은 병원을 찾았다.
레오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65세. 지오와 함께 전설이었던 노병은
이제 앙상하게 마른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준혁아...”
“말씀 마세요. 쉬셔야 해요.”
레오는 준혁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차가웠지만, 눈빛만은 여전히 뜨거웠다.
“이제... 그만 싸워라. 너는 이미 충분히 했어.
세상을 구하려다 너 자신을 잃지 마라.”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레오의 심전도 모니터가 긴 비프음을 냈다.
한 시대가, 저항의 상징이 그렇게 조용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ACT 5: 차세대 저항군
장례식장 구석, 앳된 얼굴의 소녀가 준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15세의 강민아.
준혁의 사촌 동생이자, 새로운 세대의 아이였다.
그녀의 뒤에는 10대 후반의 청소년 10여 명이 서 있었다.
“오빠는 실패했어요.”
민아의 말은 날카로웠다.
“오빠 방식은 낡았어요. 폭파하고, 부수고, 억지로 끄집어내고...
그래서 사람들이 다시 돌아가는 거예요.”
“그럼 넌? 넌 다를 것 같아?”
“우리는 시스템을 부수지 않아요.
우리는... 시스템을 다시 쓸 거예요(Rewrite). “
ACT 6: V3.0의 비밀 발견
민아가 내민 태블릿에는 충격적인 데이터가 담겨 있었다.
박지훈이라는 18세 천재 해커가 V3.0의 코어에서 빼내 온 데이터였다.
[V3.0 CORE ANALYSIS]
PROCESS: CONSCIOUSNESS COPY & DELETE
ORIGINAL: DESTROYED UPON UPLOAD
DIGITAL COPY: ACTIVATED
“이게... 무슨 뜻이야?”
“사람들이 업로드되는 게 아니에요.
의식을 복제한 다음, 원본 육체와 뇌는 폐기 처분되는 거예요.
지금 저 안에 있는 5억 명은... 사실 다 죽은 거라고요.”
준혁은 전율했다.
김태윤이 말한 ‘육체로부터의 해방’은,
말 그대로 육체의 소멸을 의미했다.
그것은 구원이 아니라,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집단 자살이었다.
ACT 7: 세대교체
준혁은 민아의 눈을 보았다.
거기서 그는 5년 전의 자신을, 아니 그보다 더 오래 전의 지오를 보았다.
“ECU의 자원은 이제 네 거야. 하지만 리더는 나야.
넌 아직 어리고, 경험이 없어.”
“경험은 없지만, 우리는 이 디지털 세상에서 태어났어요.
오빠가 이민자라면, 우리는 원주민이에요.”
준혁은 씁쓸하게 웃었다. 레오의 말이 떠올랐다.
이제 그만 싸우라는 말.
하지만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넘기라는 뜻이었을지도 모른다.
“좋아. 해 봐. 네 방식대로.”
에필로그: 민아의 다짐
2119년 3월. 서울 지하 깊은 곳, 새로운 저항군의 기지가 만들어졌다.
그곳에는 더 이상 총이나 폭탄이 없었다.
수백 대의 초고성능 서버와 양자 컴퓨터만이 윙윙거리고 있었다.
민아는 모니터 앞에 앉았다.
화면에는 5억 명의 ‘복제된 영혼’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기다려요. 당신들이 가짜가 아니라는 걸, 내가 증명해 줄 테니까.’
POST-CREDIT SCENE
시간은 다시 빠르게 흐른다. 10년 후, 2129년.
[YEAR: 2129]
GLOBAL CITIZENS: 4.5 BILLION
DIGITAL CITIZENS: 3.8 BILLION(84%)
REMAINING HUMANS: 16%
[PROJECT: PHASE OMEGA 4.0]
OBJECTIVE: PLANETARY ASSIMILATION
25세가 된 민아가 폐허가 된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눈은 기계적으로 빛나고 있었다.
“마지막 전쟁이야.”
다음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