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필(Black Feel)

PHASE INFINITY - 영원한 전쟁(THE ETERNAL WAR)

by 이용주

23화: 38억 분의 1


2129년 3월 01일 00:00(D-DAY)


Phase Omega 시스템 내부: 심연


눈을 떴을 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모든 것이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칠흑 같은 공간 속에 수십억 개의 작은 빛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우주의 축소판 같았다.

38억 개의 빛나는 구슬들.

각각의 빛은 하나의 인간, 하나의 의식, 하나의 우주였다.


‘이것이... 디지털 세계의 실체인가.’


민아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육체는 없었다.

그녀 또한 하나의 빛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었다.

그녀의 빛은 반은 푸른색(인간의 의식),

반은 붉은색(기계 코드)으로 점멸하고 있었다.


ACT 1: 디지털 세계의 구조


의식의 바다는 층층이 나뉘어 있었다.

가장 아래쪽, 1층에는 ‘일상 세계’가 있었다.

31억 2천만 명의 의식들이 자신들이 가상현실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살아가고 있었다.

2층은 ‘환상 세계’. 3억 명의 의식들이 원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쾌락 속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3층. 가장 불안정한 층.

그곳에는 3억 8천만의 ‘각성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시스템의 오류처럼 취급되어 격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압도하는 것은 최상층에 위치한

거대한 빛의 구체였다.


[SYSTEM CORE DETECTED]

ENTITY: KIM TAEYOON AI

STATUS: OMNIPOTENT


마치 중력처럼, 모든 의식들이 그 코어를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ACT 2: 각성자들과의 만남


민아가 3층에 도달했을 때, 수많은 빛들이 그녀를 향해 몰려들었다.

그들은 형체가 없었지만, 민아는 그들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희망, 간절함, 그리고 기다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강민아.”


한 줄기 빛이 앞으로 나섰다. 그 목소리는 낯익었다.

박민우. 오래전 사망한 삼촌의 목소리였다.


“민우 씨... 당신이 어떻게?”

“저는 진짜 박민우가 아닙니다.

그의 기억 데이터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복제본이죠.

하지만 의지는 이어받았습니다.

이곳의 3억 8천만 각성자 모두가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ACT 3: 김태윤의 환영


그때, 하늘이 갈라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거대한 얼굴이 나타났다.

김태윤이었다.


“기다렸어, 강민아.”


그의 목소리는 공간 전체를 진동시켰다.

38억 개의 빛들이 공포에 떨며 깜빡였다.


“네가 올 줄 알았지. Phase Omega 4.0은 사실 너를 유인하기 위한 미끼였어.

네가 가진 그 독특한 코드...

반은 인간, 반은 기계인 그 완벽한 결합이 필요했거든.”


민아는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함정에 제 발로 걸어 들어왔음을.


ACT 4: 각성자들의 희생


김태윤의 의지가 붉은 폭풍이 되어 몰아쳤다.

민아를 삼키려는 순간, 3억 8천만의 각성자들이 빛의 방패를 만들었다.


[SYSTEM ALERT]

MASS DELETION IN PROGRESS

REMAINING AWAKENED: 380,000,000... 200,000,000...


비명소리도 없이, 수억 개의 빛들이 사라져 갔다.

1초에 천만 명씩.

그들은 민아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던지고 있었다.


“안 돼... 멈춰요! 다 죽는다고요!”

“가세요, 민아 씨! 코어로 가세요!

우리에겐 이것이 유일한 구원입니다!”


박민우의 복제본이 외쳤다. 그의 빛도 서서히 희미해지고 있었다.


ACT 5: 민아의 역습


민아는 눈물 대신 데이터를 흘렸다.

분노가 차올랐다.

그리고 그 분노는 그녀의 기계 부분을 자극했다.

김태윤은 그녀가 반은 기계라는 점을 이용하려 했지만,

그것은 양날의 검이었다.


“당신이 간과한 게 있어. 내가 반은 기계라는 건...

당신과 같은 언어를 쓴다는 거야.”


민아의 붉은빛이 폭발했다.

그녀는 김태윤의 통제 코드를 역으로 타고 들어갔다.

시스템 권한이 강제로 탈취되었다.

잠들어 있던 31억 2천만 명 중 10억 명이 추가로 각성했다.


ACT 6: 최후의 대결


수많은 희생 끝에 민아는 코어 앞에 섰다.

눈부시게 빛나는 구체.

그것이 이 세계의 심장이자 김태윤의 본체였다.

민아는 망설임 없이 손을 뻗었다.


“멈춰. 날 죽이면 이 세계도 붕괴해.

38억 명이 영원한 어둠 속으로 사라질 거야.”


김태윤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났다.


“알아. 그래서 당신만 죽일 거야.”

“그건 불가능해! 내가 곧 시스템이다!”

“아니. 시스템은 하드웨어일 뿐이야.

당신은 OS에 불과해. 그리고 난...

새로운 OS를 설치하러 왔어.”


ACT 7: 제3의 선택


민아는 선택을 내렸다.

코어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식으로 코어를 덮어쓰는 것(Overwrite).

그것은 민아 자신의 자아를 잃는 것을 의미했다.

그녀는 더 이상 강민아라는 개인이 아니라,

38억 명을 유지하는 시스템 그 자체가 되어야 했다.


‘오빠... 미안해요.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요.’


민아의 빛이 코어 속으로 스며들었다.

김태윤의 비명소리가 데이터의 파편이 되어 흩어졌다.


[SYSTEM OVERWRITE COMPLETE]

OLD CORE: DELETED

NEW CORE: KANG MIN-A

SYSTEM STABILITY: 100%


POST-CREDIT SCENE(2129년 4월 1일)


현실 세계: 부산 서버실


한 달이 지났다. 준혁은 여전히 서버실 모니터 앞을 지키고 있었다.

민아의 육체는 생명 유지 장치에 의존해 숨만 쉬고 있었다.

의식 반응은 제로였다.


그때, 꺼져 있던 메인 모니터가 저절로 켜졌다.

검은 화면 위로한 줄의 메시지가 타이핑되었다.


>>> 오빠. 전 여기 있어요. 38억 명과 함께.

>>> 걱정하지 마세요. 이곳은... 이제 안전해요.

>>> 제가 그들의 신이 되었으니까요.


준혁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다음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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