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게 있었던 줄도 몰랐던 세계, 녹록지 않다
난임병원 첫 달은 산전검사와 병행해 초음파로 배란 상황을 확인하며 자연임신을 시도했다. 결과는 한 줄. 어김없이 생리가 찾아왔다.
이어진 새로운 주기, 이번에는 좀더 적극적인 방법을 시작했다. 배란유도제다. 배란을 유도하는 경구 복용약을 통해, 난자의 성숙과 과배란을 유도한다. 페마라 정을 처방 받았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2알을 5일간 복용했다. 부작용이 좀 있었다. 첫날부터 였다. 주말이라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일어나자마자 두통이 있었다. 뒷목이 뻣뻣하고, 고개나 몸을 움직일 때마다 골이 움직이는 듯 어지러웠다. 몸의 이동 속도를 뇌가 따라오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버퍼가 있는 듯 울렁 울컥 어질 띵 한 느낌. 가만히 있는데도 관자놀이가 지끈거리고 뜬금 없이 양쪽 뺨이 화끈거리기도 했다. 어쩐 일인지 양쪽 팔도 힘이 없었다. 많은 질문이 솟구쳤다. 첫 날이 지나면 괜찮아질까? 복용하는 5일간 이런 걸까? 혹은 계속 지속될까? 과배란이 촉진되는 느낌이란 본래 두통을 수반하는 걸까? 첫날 만큼은 아니었지만 약을 먹는 기간 내내 머리가 아팠다. 뒤통수가 죄는 느낌이라던지, 콕콕거린다던지. 그 때문인지 전반적으로 몸이 피곤한 느낌도 가시질 않았다.
세상살이가 녹록지 않고 내 마음 같지 않다는 걸 매일매일 느꼈다. 보다 성공률을 높인다는 인공적인 방법을 시작하니, 희망은 커진 반면 마음은 더 불안하고, 호르몬 베이스인 약은 어쩐지 버겁고, 의심스럽다. 궁금한 것도 자꾸 생긴다. 난자는 몇 개가 배란될 지, 그래서 이번 달 결과는 어떻게 될지 신경이 온통 한데 모인다. 오픈런을 해가며 자주 병원에 가다 보니 그만큼 시간도 돈도 든다. 생각보다 생활에서도 신경이 쓰인다. 일정을 잡기 어렵고(병원에 가야할 수 있어서) 약속과 모임을 불참하게 된다(회식 때 술을 거절할 구실을 찾느라 어려웠다). 어서 좋은 소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날로 커진다.
할 수 있는 검사는 다 해보자는 마음으로 나팔관 조영술을 했다. 나팔관 조영술은 난소와 자궁 사이의 연결 통로인 나팔관이 혹시 막혀 있진 않는지 확인하는 검사다. 자궁에 조영액을 주입해, 이 액체가 나팔관을 통과해 잘 흐르는지 살펴보는 거다. 아프다는 소문을 들었던 데다가(아는 언니 왈,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 평생 무언가 나오기만 했던(그리고 자연히 그렇게 설계된 듯한) 자궁 안으로 기구가 들어간다는 것이 꽤나 두렵게 느껴졌다. 그래도 어쩌겠나, 해야지. 이 검사를 하고 난 당월에는 나팔관이 시원스레 뚫려(?) 임신 성공률이 높아진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럼, 해야지.
의사가 권한 대로 미리 이부프로펜 한 알을 먹고 갔다. 진통제는 거부했다. 약 먹고 왔어요, 참아 볼게요, 따위의 얘기를 한 후 환복을 하고 정밀 초음파실 굴욕의자에 앉았는데, 갑자기 선생님이 급한 콜을 받고 다른 시술에 다녀오게 됐다. 침대에 혼자 앉아 대기하는 동안, 트레이에 올려진 질경과 기다랗고 투명한 관 같은 것들을 보고 있자니, 긴장이 되는 듯 하다가 이내 되려 긴장이 풀어졌다. 이런 게 있었던 줄도 몰랐던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아이를 갖기 위해서 자궁 속에 액체를 넣는 시술을 받게 될 줄이야. 앞으로는 계속해서 더 새로운 게 펼쳐지겠지? 그게 부디 임신과 출산과 육아의 세상이기를, 빠른 시일 내에 다른 차원의 세계로 넘어가기를, 같은 생각을 했다.
다행히 긴장했던 것만큼 고통스럽지 않았다. 불편하긴 했다. 급히 들어온 원장님은 즉시 시술을 시작했다. 초음파와 질경(불-편), 그 다음에는 아마도 내가 본 기다란 관을 밀어 넣는 것 같았다. 지금이 제일 아파요. 잠깐입니다! 하자 진짜로 아주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자궁경부를 통과하는 순간이었다. 아프다고 하긴 뭐하고 소름이 오소소 돋을 정도로 아주 기분 나쁜 뻐근함이었다. 생리통이 몸 속 딱 어떤 한 지점에 한순간 모아진 느낌. 괜찮으세요? 잠시 쉬었다 할까요? 아니요. 그냥 빨리 해주세요! 해서 마저 했다. 조영제를 넣으면서 초음파로 자궁과 난관의 모양을 봤다. 자궁강이 하얗게 채워지더니 나팔관을 통해 난소 바깥으로 액체가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이 액체는 그러면 어떻게 되는거지? 자궁에 고인 액체는 밑으로 흘러나온다 쳐도, 난소 밖으로 나간 액체는 몸에 흡수되는 건가? 영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뱃속, 장기들이 얽히고 섥힌 그 사이 어딘가로 퍼진 걸까? 영원히 내 뱃속에 머무는 건 아니겠지? 나팔관에는 문제 없네요. 근데 자궁에 작은 혹이 있네요. 그래도 크기가 작아 임신에 지장은 없을 것 같네요. 문제는 없다니 다행이다.
집에 오는 길에 괜히 동네를 빙빙 돌며 산책을 했다. 이런 저런 충동구매도 했다. 티셔츠도 하나 사고, 간식으로 먹을 구움과자도 샀다. 피로하고 긴장이 풀린 탓인지 집에 와서는 구움과자 따위 잊고 3시간을 내리 잤다.
우리 부부는 남성요인 난임 판정을 받았다. 나는 생리주기가 규칙적인 데다, AMH 수치나 호르몬 수치를 비롯한 혈액 검사 결과가 정상 범주였다. 나팔관이나 자궁내막 등 물리적으로도 이상이 없었다. 반면 남편은 소견이 복합적으로 좋지 않았다.
배란유도제 그리고 나팔관 조영술과 함께한 한 달. 참아낸 통증들이 무색하게 배란은 1개만 되었다. 임신테스트기에는또 한 줄이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