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내 배에 주사 맞기, 시험관 시작

시험관 하면 떠오르는 "주사, 주사, 주사"

by 둘둘

난임시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시험관' 하면 떠오르는 건 '주사'가 아닐까. 임신이 쉽지 않아 병원 방문을 조금이라도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포털사이트에서 난임병원/인공수정/체외수정/임신/출산에 관련한 각종 자료를 서칭하는 데 써본 사람이라면,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무수히 많은 주사기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흑백의 초음파 사진을 감싼 사진, 혹은 동글동글 푸릇푸릇하게 멍이 든 어떤 이의 배 사진을.


시험관을 하겠다고 하자마자 주사가 처방됐다. 의사선생님의 요약 설명 이후, 간호사를 따라 들어간 상담실 책상 위에는 나를 위한 준비물들이 늘어져 있었다. 주사가 들어 있는 작은 상자(대표적인 과배란 유도 주사제인 고날에프 펜주), 조그마한 냉동팩이 든 보냉백(주사제는 온도에 예민해 냉장보관 해야 한다), 그리고 주사수첩. 간호사 선생님은 주사수첩을 펼쳐 어떤 주사를 며칠간 매일 얼만큼의 용량으로 맞아야 하는지 설명하고 실물 주사기로 시범을 보여 줬다. 아-, 시작이다.



Mkgaa800x600.jpeg 이 친구다. 과배란 유도제 고날에프. (출처: https://www.merckgroup.com/kr-ko/expertise/gonal-f.html)


주사수첩은 이후 2주일 간 거실 테이블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비치되었다. 난자 채취 시술이 보통 아침 일찍 이루어지기 때문에, 과배란 주사도 오전 시간에 맞는다. 아침에 일어나 간단하게 씻은 후 냉장고에서 주사를 꺼내 와 주사수첩 앞에 앉는 것은 이어진 수 일간 나의 모닝 루틴. 맞아야 할 것은 고날에프(Gonal-F). 유전자재조합 에스트로겐 호르몬이다. 하나의 펜 모양 주사기 안에 이미 900IU의 용량이 들어있다. 이걸 4번, 4일에 나눠 주사한다. 바늘만 바꿔가며 맞는다. 용량을 1/4인 225에 맞추고, 주사기와 내 배를 알콜스왑으로 소독하고, 일회용 바늘을 끼우고, 뱃살을 왼손 엄지와 검지로 튀어나오게 잡은 후, 수직으로 바늘을 꽂고, 0이 될 때까지 주사액을 주입하면 끝.


인공수정을 할 때, 난포 터지는 주사(오비드렐)를 배에 스스로 맞은 적이 있었는데, 고날에프는 그에 비해서 아프지 않았다. 주사를 맞고 나면 약간의 찌르르- 한 느낌이 들고(냉장고에 있었다보니 차가운 온도 때문일까? 주사액의 질감 때문일까?) 주사를 맞았다는 자체로 기분이 조금 구리다는 것 뿐, 할 만 하다.


고날에프만 4일을 맞은 후 이번에는 고날에프 외에 오가루트란(Orgalutran)이 추가로 처방됐다. 고날에프가 난소에서 여러 개의 난자를 동시에 성숙시키는 역할을 한다면, 오가루트란은 이들이 배란되지 않도록 억제하는 주사다. 난자를 모으기 위해 과배란을 시키고 있는데 채취 전 배란돼버리면 곤란하므로. 아침 같은 시간에 이번에는 한 쪽 배에 하나씩 총 두 개의 주사를 맞는다. 오가루트란은 이미 주사제가 담겨 있는 작은 주사기다. 포장을 뜯어서 그대로 맞으면 된다. 그런데 매우 아프다. 맞고 나면 배를 한 대 쎄게 맞은 감각이다. 아침잠이 확 깬다. 참고로, 아픔의 정도는 주사제의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 생각보다 주사를 맞는다는 것 자체로 아픈 건 아닌 듯 하다. 하지만 주사액이 무엇이냐, 그리고 바늘의 두께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고통의 정도는 크게 다르다. 하루 두 대씩 맞기 시작하자, 신중하게 애정 어린 손길로 놓는데도, 조그만 이 생겨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고날에프만 4일, 오가루트란까지 4일, 8일차 병원에 방문하자, 이번에는 아직 조금 작은 난포들의 성숙을 돕기 위해 IVF-M이라는 주사가 처방됐다. 주사제를 넣자 마자 통증이 시작된다. ‘원래 좀 아픈 주사에요.’ 그래 뭘 어쩌겠는가, 맞아야 하는 거면 맞는 거지.


생각보다 난포들의 성숙이 빠른 탓에 주사를 시작한 지 10일째 날 아침으로 채취 일정이 잡혔다. 병원을 방문해 IVF-M을 맞았던 8일차 밤에 배주사가 2개 추가되었다. 배란을 도와주는 오비드렐(Ovidrel)과 데카펩틸(Decapeptyl). 하루에 배 주사만 5개라니. (왼쪽에 세 개를 할까, 오른쪽에 세 개를 할까..)


이렇게 과배란과 난자 채취를 위해 15개의 주사를 맞았다. (사람과 상황에 따라 주사는 더 추가되기도 한단다.) 날이 갈 수록 배가 빵빵하고 불편하다. 2cm에서 3cm에 달하는 난포가 양쪽 배에 5~10개씩 자라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뱃 속에 작은 물풍선이 가득 든 것 같아 속도를 내 걷거나 뛰는 게 힘들어진다. 채취 전 4-5일은 특히 운동은 무리였다. 그래도 많이 걸었다. 매일 의식적으로 최소 5천보 이상은 걸으려고 했다. 더부룩하고 찌뿌둥한 몸과 마음을 돌보는 시간이었달까. 난포의 성장에 좋다고 하기도 하고.


내 몸에 주사를 놓는(=맞는) 경험은 생소하다. 몇 번의 주사를 직접 놓은 남편에게도 생소한 경험이었을 거다. 나 이제 마약 자신 있다, 주사 망설임 없이 제일 잘 놓을 수 있다, 같은 시덥잖은 농담도 했다. 모두 피하지방 주사였기에 뱃살 아래로 간 주사제들은 어디로 어떻게 퍼지는 것일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게다가 이리 자주 이리 많이 ‘호르몬’을 몸 속에 주입하다니. 인체 실험의 대상이 된 것 같다는 생각도 살짝 든다. 이전에, 어린 아이들에게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게 한다는 얘기를 접한 뒤, 인위적으로 호르몬을 투여한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들곤 했었는데. 이젠 그런 얘기를 들어도 그런가보다 하는 마음으로 변하는 것 같기도 하고. 유전자 재조합 기술 발전 없이 내 시험관 시도 자체가 불가했을테니, 실험체가 된다 해도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한 게 감사하기도 하다. 시험관의 역사는 언제부터 일까, 이제는 정말로 안정적인 걸까, 이걸 통해 아기를 낳거나 태어난 사람은 대체 몇 명이나 될까. 많은 게 궁금하다. 새로운 세계가 시야를 넓히긴 하는구나.


아, 또 주사 맞으러 일찍 자야지.





안녕하세요. 둘둘입니다.

난임 병원에 다니기 시작해 배란유도제, 인공수정 과정을 거쳐 시험관 시술까지 시작하게 됐네요.

글을 시간 순서대로 올려야만 할 것 같은 나름의 강박(?) 때문에ㅠㅠ (오 자유롭지 못한 자여)
과거에 써뒀던 글들을 다듬어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어서 과거의 글을 좌락 올리고, 현재 시제로 글을 올릴 수 있게 하겠습니다. 곧이에요. 기다려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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