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풍진?! 그게 뭔데.

이 풍진 (시험관 시술의) 세상

by 둘둘

과배란 주사 고날에프 4일치를 맞고 5일차 아침에 난포가 자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병원에 갔다. 생리 2일차인 5일 전에 채혈했던 혈액검사 결과가 나와 있었다. 다른 건 다 괜찮았다. 하나만 빼고.


풍진. 풍진이다. Rubella IgG와 IgM으로 표기된 그것의 수치가 이상했다. 이들은 둘다 면역글로불린, 즉 항체이지만 서로 다르다. IgG는 기억 항체로, 오래 전 예방접종이나 감염을 통해 항체가 생성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IgM은 감염 초기에 생성되는 항체로, 최근에 혹은 현재 감염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각기 (+)로 판단하는 기준이 9.99, 1.59였는데 나의 수치는 무려 13과 3에 달했다. 둘 다 지나치게 높았다. 3주 후 재검사를 해야 한다는 소견까지 써 있었다.


최근에 열이 나거나 몸살 나듯 아팠던 적이 있나요? 아니요. 풍진은 임신 초기 최초 감염인 경우 위험해요. 지금 수치가 너무 높아요. 아주 최근 감염 같아요. 그런데 이 수치만으로는 최초 감염인지 여부는 알 수 없어요. 일단은 증상이 없었다고 하니 괜찮을 것 같기는 한데요. 채취 전에 재검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풍진에 대해 잘 몰랐던 나는 온화하고 평정심이 가득한 의사선생님의 얼굴을 보며 대수롭지 않은 일일 거라 생각했고, 남은 기간 과배란을 잘 마치기 위해 추가로 처방 받은 주사를 가득 담고 집에 왔다. (하루에 하나였던 배 주사가 하루 두 개로 늘었다.)


집에 오자마자 폭풍 검색을 시작했다. 검색 결과로 조회된 게시글을 하나하나 읽어갈 때마다 손에 힘은 빠지고 식은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풍진은.. 임신 초기 감염 시 엄청나게 높은 확률로 태아에게 문제를 일으키는.. 임신계에 있어서는 핵폭탄급 문제거리다. 절대로, 아주 절대로 걸리면 안되는 병이다. 절망과 슬픔이 뒤섞인 글들을 계속 읽어 나갔다. 풍진 감염 사실을 알고 의사에게 중절 수술을 권유 받은 이가 있었다. 시험관 고차수로 겨우 임신한 아기를 풍진으로 잃어야 하는 이도 있었다. 높은 풍진 수치 내지는 풍진 예방접종 직후의 임신 때문에 고민하는 글도 많았다. 더욱 무서운 것은, 풍진은 잠복기도 있고, 걸려도 아무 증상이 없는 경우도 있다. 자기도 모르게 심각한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는 거다. 나 또한 혹시 최근에, 아니면 지금, 풍진에 걸린건 아닐까?


갑자기 스쳐간 생각, 아, 1년쯤 전에 보건소에서 무료 혈액검사를 했었지. 혹시?! 결과를 뒤졌다. ‘풍진 항체 있음.’ 그 한 마디에 일단 가슴을 쓸었다. 나는 아직 임신이 아니고 그저 난자를 만들었을 뿐이다. 게다가 작년에 항체가 있었다면 최근 풍진에 걸렸다고 해도 이건 재감염이다. ‘임신 초기’에 ‘최초 감염’인 경우 문제가 생긴다고 했고, 둘 다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이대로 임신이 되어도 되는 걸까? 내가 참고할 수 있는 거라곤 의사의 말과 구글링 결과 뿐이라는 게 너무나 답답했다. 남편은 재감염인 경우 거의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찾아 보여줬다. 왜 지금의 수치가 높게 나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재감염이니 문제 없을 것 같다고 나를 다독였다. 그러니까 의사선생님도 그렇게 차분한 것 아니겠냐며. 긴장이 풀리며 왈칵 눈물이 솟구쳤다. 엉엉. 풍진이 뭐야. 그런 게 왜 나오는 거야.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병원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내 앞에 있던 분이 떠오른다. 대충 묶어 헝클어진 머리에 너무나 퀭한 눈, 얼룩덜룩하게 빨간 얼굴, 늘어나고 후줄근한 티셔츠. 첫인상을 보곤 ‘시험관 고차수라 컨디션이 안 좋은 걸까?’ 감히 넘겨 짚었었다. 곧 간호사가 나타나 임신확인서를 받아가라고 하기에, ‘아, 입덧을 하나 보구나. 임산부구나.’ 했었다. 진료를 마치고 나오자, 생각은 자기 중심적으로 바뀌고 만다. ‘아, 임신을 했는데 풍진 항원이 있다고 해서 충격을 받은 거였나?’


나, 괜찮은 걸까?



매거진의 이전글#7. 내 배에 주사 맞기, 시험관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