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갈팡질팡한 마음

새로운 고민을 시작하다.

by 둘둘

2024년 초에 쓴 글입니다. 이전까지 미뤄뒀던, 아기 갖기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파스타를 포크에 천천히 감으며, 남편이 식사하는 모습을 관찰한다. 포크에 집중하며 내리깐 눈에 촘촘히 붙어 있는 속눈썹이 길다. 작은 입술은 조용히 오물거리고, 턱 근육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움직이고 있다. 맛을 음미하는 걸까, 미간에 주름이 살짝 잡혔다가 풀어진다. 고개를 천천히 들며 부드럽게 미소를 짓는 남편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한쪽 눈썹을 찡긋하며 묻는다, "왜?" 나는 대답한다. "자기를 닮은 아이가 있으면 어떨까 생각해 봤어." 우리는 서로를 잠시 응시한다.


처음에는 전혀 들지 않던 생각이 어느 순간 생기기 시작하더니 이젠 주기적으로 떠오른다. 마음이 왔다갔다하는 간격도 몇 달에서 몇 주, 요즘에는 며칠로 점차 짧아지고 있다. 내가 아이를 갖고 싶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처음 이야기를 나눈 건 하남에 있는 미사경정공원이었다. 바람이 많이 부는 어느 봄날이었고, 나뭇잎과 꽃잎과 머리카락이 바람의 방향에 따라 이리저리 나부꼈다. 잔디밭에 캠핑의자를 펴고 앉아 조정경기장의 물을 바라본 채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그에게 물었다. "언젠가, 아이를 갖고 싶어?" "음.. 글쎄. 오랜 기간 언젠가는 아이가 있는 가정을 꾸리게 될 거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해왔어. 그렇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어. 아직 마음이 정해지지 않은 것 같아." "나도 그래. 내가 원하는지 잘 모르겠고, 자신이 없기도 해." 그런 이야길 나눴다. 이후 일년에 한두 번쯤 서로의 의사를 확인하며 지내왔다.


20대 초반엔 자연스럽게 떠올렸던 것 같다. 학교를 졸업하면, 번듯하게 자리를 잡아 돈을 버는 어른이 되고, 가정을 꾸리고, 한 서른쯤 되면 자녀가 있겠거니 하는 막연한 미래를. 그런데 머지않아 깨달았다. 나를 위한 생활을 챙기며 몸과 마음을 관리하기만 하는 데에도 너무 많은 시간과 돈과 노력이 든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세월이 켜켜이 쌓이며, 나는 결혼을 하지 않고 살아갈 것을 선언하기도 했었다. 혼자도 버겁지만 혼자여서 그나마 가벼웠다. 그런 와중에 아이를 가진다는 생각은 이미 너무 아득히 멀어져, 삶에서 아이를 가진다는 건 나에게는 더이상 현실성이 없는 얘기처럼 느껴졌고, 언젠가부턴 전혀 바라지도 원하지도 않게 되며 관심 밖으로 멀어졌었다.


그랬었는데, 그랬던 내가, 남편과 살게 되고 결혼을 하고 난 뒤 변화가 생긴 거다. 이 사람이 내 인생에 무해하다는 근거를 꾸준히 발견하고 있을 때, 평생을 함께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생경한 결심이었다. 그런데 그와 함께하는 삶은 상상초월로 더 행복하다. 무해한 정도가 아니라 유익한 결정이었다고 스스로 자찬할 정도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급기야 아이를 가지면 어떨까 하는 고민까지 하게 된다. 만일 결심이 서서 정말로 부모가 된다면, 이번에도 미처 상상하지 못했을 정도의 크고 새로운 행복이 있을까?


마음이 이렇게 움직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사랑 때문이다. 아이를 가진다면 나는 '남편을 닮은 아들'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남편을 보고 있으면 사랑스러운데 작은 버젼으로 하나 더 있어서 둘이 같이 있으면 너무 귀여울 것 같아서다. 남편은 특히 시아버지와 판박이다. 나도 아빠와 붕어빵인데 남편은 성별까지 같으니 정말 도플갱어 수준이다. 처음에 시아버지를 뵀을 때, 너무 놀라는 마음과 동시에, ‘아, 이 남자가 나이가 들면 저 모습이겠구나’ 싶어 단박에 아버님이 좋아졌었다. 얼마전 시부모님 댁에서 식사를 하다가, 이 똑 닮은 부자를 바라보며 갑자기 한 생각이 스쳤다. ‘음, 시어머니는 좋겠다. 사랑하는 남자의 젊은 시절을 아들을 통해 볼 수 있겠다. 남편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 보는 풍경은 얼마나 흐뭇할까.’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문득 낯설게 느껴지던 날이었다.


남편과 함께 삶을 꾸리면서, 뭔가를 조금 더 해볼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는 것도 고민의 배경 중 하나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내가 놓치는 점을 보완해주는 든든함이 그에겐 있다. 공동의 살림과 생활을 꾸리면서 한결같고 사려 깊은 모습을 본다. 살림과 생활 말고 또 다른 것을 공동으로 하더라도 무임승차하거나 야비하게 굴지 않을 사람임을 믿는다. 나를 아끼는 것처럼 아이를 아끼고 사랑할 사람임을 의심할 수 없다. 낳는 것은 온전히 내 몸으로 해야 하겠지만 그 밖에는 혼자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새로운 도전을 고민해볼 수 있게 한다.


남편에 대한 사랑, 남편과 함께하기 때문에 오는 용기 말고, 이렇게 고민이 커지게 된 또 하나의 까닭이 있다. 정말로 큰 사랑을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자식에 대한 마음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되지 않는 새롭고 강렬하고 거대한 감정으로 묘사되곤 한다. 그게 뭘지 궁금하다. 경험해보고 싶다. 오래전부터 궁금했었던 감정이다. 부모님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그들에게 갖는 감정과 그들이 나에게 갖는 감정의 깊이가 사뭇 다름을 깨달았을 때부터 궁금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여전히 결심의 순간은 오지 않은 듯 하다. 갈팡질팡 헤매고만 있다. 생각을 조금만 끌어가도 두려움의 감각이 온몸을 지배한다. 과연 나란 사람이 어떤 한 인간을 온전하게 길러낼 수 있을까? 이 험한 세상 속에서, 자신과 주변을 사랑하며 행복을 아는 이로 말이다. 자신이 없다. 매일매일 미숙하기만 내가 다른 인간을 오롯이 어른으로 키워낼 수 있는 존재일지, 모르겠다. 나의 결점과 과오들에 의해 고스란히 영향을 받을 사람이 생긴다는 게 생각만 해도 공포스럽다.


그 외에도 걱정은 많다. 평생에 걸쳐, 특히 최소 20년간 나의 시간과 돈과 노력을 세차게 쏟아 부어야 하는 존재가 생긴다는 게 너무너무 부담스럽다. 지금도 전혀 여유롭지 않은데, 생활은 더 팍팍해지고 체력은 몹시 후달릴 테다. 만일 이로 인해 생긴 스트레스를 가지고 아이를 탓하고 원망하게 되면 어쩌나. 또 있다. 약간 오그라들 수도 있는데, 너무 많이 사랑할까봐 무섭다. 너무 많이 사랑하는 감정이 궁금하다고 하면서 한편으론 무섭다는 게 좀 어이없긴 하지만 암튼 그렇다. 그 사람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나를 잃게 되거나 나를 소중히 하지 않는 일이 생길까봐 불안하다. 나를 가장 아끼며 살고자 오랜 시간 노력해왔는데, 한 순간에 순위가 뒤바뀔까봐 겁이 난다. 그리고 내가 만일 나보다 더 그를 사랑하게 되고, 일순위로 사랑한다는 게 아이에게 늘 행복을 주는 게 아니라면, 누구의 잘못도 없는 채 홀로 자주 자괴감에 빠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상상만으로도 조마조마하다.


오늘의 생각은 이렇지만 내일은 다를 거다. 지금까지 엎치락뒤치락 고민만 N 년째다. 다만 고민의 기간은 유한하다. 마흔 살로 기한을 정했다. 한계가 있어선지 시간이 감에 따라 고민의 빈도가 더 잦아지고 있는 것 같다. 언젠가 어느 쪽으로든 마음이 서거나, 어쩌면 고민의 시간이 종료되어 자연스레 결론이 나게 될 거다.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남편과 더 자주 이야기 나눠보려 한다. 내 마음의 변화도 섬세하게 관찰해야 한다. 아무튼 참 감사하다.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 경험이 재료가 되어, 또다른 사랑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마음환경이 되었다는 것이. 맞은 편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남편의 눈을 다시 한 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