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배아 이식 다음 날, 장례식장

예상치 못한 부고

by 둘둘

배아 이식을 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3일간, 나는 장례식장에 있었다.

(이식 이야기는 여기: #19. 2차 동결배아 이식)


병원에서 받은 이식 후 주의사항 안내문 첫 번째는 "이식 후 당일 가벼운 일상생활은 가능하십니다"다. 가벼운 일상생활이라.. 그것이 어디까지 말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회사생활이라는 게 늘 무거운 일상생활이라고 생각했던 터라, 이번에는 스트레스를 줄이겠다고 이식 당일과 다음날까지 휴가를 썼다. 이식 당일은 긴장도 풀린 데다 약기운에 취해 집에서 내리 자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주사와 질정과 먹는 약을 챙겼다.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계획해 두지 않았었다. 그저 잘 먹고 잘 쉬려고, 마음 먹었다. 집밥을 해먹고 낮잠을 자고 심심하면 책을 읽어야겠다, 정도로 하루 계획을 세우고는 아점으로 뭘 먹을까 고민하다 요리를 시작했다. 소분해 얼려둔 소고기를 꺼내 녹이고, 감자와 양파와 애호박, 그리고 두부를 깍뚝 썰었다. 물을 끓여 고기와 채소를 팔팔 끓이다가 청국장을 넣으려던 차, 갑자기 카톡이 왔다.


아버지였다. "시간 될 때 전화줘라." 아버지가 이런 연락을 한 적이 있었던가. 갑자기 등줄기가 서늘했다. 무슨 일이 생겼다. 누구에게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생겼다. 별의 별 상상을 하며 바로 전화를 걸었다. 응 아빠, 무슨 일이에요? 어... 어.... 말을 잇지 못하고 우는 소리만 나다가, 갈라지는 목소리로 아버지는 말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갑작스러웠다. 도마와 칼을 앞에 두고 한참을 서 있다 의자를 찾아 앉자, 눈물이 쏟아졌다. 몇 달 전 뵈었을 때가 생각났다. 할아버지 잘생겼다는 내 농담에 밝게 웃으셨던 얼굴이 떠올랐다. 원체 말이 없는 분이셨지만 우리가 한 말씀 해 달라고 하자, 욕심을 부리지 말아라. 그리고 거짓말을 하지 마라. 형제간에는 사이 좋게 지내라. 그저 욕심 없이 진실되게, 건강하게만 살아라. 그런 말씀을 띄엄띄엄 하시는 할아버지가 좋았다. 부어 있는 혈관과 가느다란 뼈 그리고 푸석한 근육을 얇은 랩으로 싸 놓은 것만 같던 마른 손이 선했다.


그런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앉아 있다 집안을 서성이다 다시 앉기를 반복했다. 엉엉 울다 가만히 멈췄다를 반복했다. 무얼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남편에게 연락을 달라는 문자를 남기고 짐을 쌌다. 3일간 입을 속옷과 양말 같은 것. 그리고 주사와 질정과 약들... '가벼운 일상생활'로부터는 너무나 멀어질 것 같지만, 챙기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리고 청국장을 마저 끓였다. 최근 거의 매일 할아버지 댁에 방문해 할아버지의 병원과 아픔과 변덕을 수발하고 할머니의 고통을 케어하던 엄마가 생각났다. 할아버지를 챙기며 내 엄마는 급격하게 늙었다. 내가 밥을 먹고 힘을 내서 가야 어떻게든 엄마를 붙들 수 있겠다 생각했다.


헐레벌떡 집에 돌아온 남편과 빈소로 향했다. 꾸려진 지 얼마 안 된 빈소에서 가족들은 말그대로 황망한 모습으로 모여 있었다. 부모님은 눈물과 슬픔으로 절여진 채였다. 누군가가 건네는 상복을 꿰어 입고, 뭐가 어떻게 된건지 이야기를 듣고, 숨을 몰아쉬거나 너무 드물게 쉬는 것 같은 엄마에게 심호흡을 하라 물을 마셔라 이르며, 3일장이 시작됐다.


남편을 잃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를 잃은 우리 부모님과 그들의 형제들 사이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었지만 내 슬픔은 비할 바 아닐 것이었다. 때로는 할머니, 때로는 엄마 곁을 지켰다. 돌아가진 할아버지를 뵙고, 조문객에게 감사를 드리고, 친척들과 서로의 식사 여부를 챙기고, 입관식과 영결식을 참여하고, 무언갈 정리하고, 북받쳐 울고, 너무 울까봐 참고, 참기 어려워 숨어서 울고, 그리고 그 사이에 장례식장 화장실에서 주사를 넣고 약을 먹었다.


끼니는 삼일간 반찬과 밥과 육개장. 착상에 좋다는 균형잡힌 영양소와 고단백 식사를 챙길 수 있을리 없었다. 그래도 끼니를 챙길 수 있는 게 어딘지. 밥과 국을 억지로라도 다 먹었다. 마지막 수육 한 점을 '제가 먹을게요'라며 집어먹는 당황스러운 스스로의 모습을 보기도 했다. 혹시나, 혹시나. 그래도, 이건 어려운 게임이다. 마음이 접혔다. 어쩔 수 없다. 할아버지를 잘 보내드리는 데에만 집중하자.


'가벼운 일상생활'이라는 말은 결코 내 몫이 아니었다. 첫날은 잠시 잤지만 둘째날에는 아예 잠도 자지 못했다. 마지막 손님을 보내고 부의금을 계수해 정산했다. 새벽엔 향을 피우고 가만히 앉아 할아버지를 생각했다. 밤을 새우고 화장장으로 향했다. 목이 잠기고 눈꺼풀은 부었고 머리만 대면 곯아떨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화장장이며 납골당에서는 기력이 없어 울음도 작고 짧게만 나왔다.


배아를 한 개만 이식하길 다행이다. 두 개를 잃을 뻔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약을 끊을 순 없었다. 시간을 딱딱 지킬 순 없었지만 매일 해야 하는 것들을 했다. 화장장 구석에서 물없이 약을 삼켰고, 납골당에서 질정을 넣었다.


그렇게 이식 후 며칠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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