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임신인가봐
장례를 마치고 돌아온 다음날의 일기는 이렇다. "3일장을 치르고 왔다. 이걸 뚫고 착상이 됐다면 얘는 진짜 강한 아이다."
(이식 직후 3일장을 지낸 이야기는 여기: #20. 배아 이식 다음 날, 장례식장)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났다.
빨리 해치우려고 했다. 이식 13일차에 피검사가 예약돼 있었지만, 대략 9~10일차쯤엔 임신테스트기로 임신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테니, 빨리 확인해서 아니다 싶으면 병원에 말해서 주사도 끊고 약도 끊으려고 했다. (사실 이러면 안됩니다. 병원에서 준 처방은 지켜주세요.) 혹은 예약 날짜를 앞당겨서 피검사를 최대한 빨리 받아 버리고 이번 차수를 종료하려고, 다음 주기나 착실하게 준비하려고 했다. (어차피 안됐을 거란 생각에 부재 후 쌓인 일을 하기 위한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고, 바쁘다는 핑계로 그간 멀리했던 삼각김밥에 컵라면도 먹었다.) 천재지변과 같은 일이 일어났으니 크게 슬프지도 않았다. 조금 아쉽고 씁쓸하긴 했지만 말이다. (몸과 마음과 시간과 돈과 노력을 투입한 한 달이 삭제됐다니!)
그렇게 8일차 밤,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 임테기를 했다. 마침 남편이 야근이라 혼자 확인해보기 좋은 타이밍이었다. 결과는 반전없이 한 줄. 조금 떨리긴 했지만, 에이 그러면 그렇지. 어떻게 그 상황에 착상을 하냐. 임신테스트기를 내팽개쳐 놓고 샤워를 하고 저녁식사를 하고 그냥 평소와 다름없는 저녁을 보냈다. 화장대 위 던져 둔 임테기를 버리려고 주워들었는데, 아주 아~주 미세하게 두 줄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매직아이인가?? 그냥 나의 마음의 선인가?! 시약선인가?!(어떤 테스트기는 희미하게 회색 시약선 보여져서 사람을 헷갈리게 한다) 싶은 수준이었다. (추후 남편에게 보여주니 이건 한 줄이란다.)
이거 시약선 안뜨는 단호박 임테기라 해서 구매했던 건데.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착각 없는 임테기라 해서 산건데. 방치한 지 한시간 넘었으니까 그냥 오류가 난 걸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모르겠네.. 아무래도 내가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 같다. 마음의 선인 것 같아 임테기 분석으로 유명한 맘카페에도 사진을 올렸다. "이거 보이시나요? 저의 마음의 선일까요??" 댓글은 두 개에 불과했다. "힝. 다른 걸로 해보세요." "이거 시약선 없는 테스터라 희망이 있긴 한데.. 좀 애매하네요." 그렇게 나는 두근거리며 밤잠을 이루지 못했고..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남편을 재촉해 출근시킨 뒤 스마일보다 후하다는 원포 얼리 테스트기로 검사를 했다. 결과는 두 줄. 내 인생 첫 두 줄이다. 희미하지만, 절대 한 줄로는 볼 수 없는, 누가 봐도 두 줄. 너무 놀랐지만, 너무 놀라서 네? 하는 기분이었다. 심장이 쿵쾅쿵쾅. 눈물이 나거나 하지도 않았다. 어안이 벙벙했다고 해야 하나. 쾌락이 아니라 말하자면 행복의 감정이랄까. 급속히 치솟는 게 아니라 잔잔하게 마음을 채워가는 따스한 기분. 가슴이 뛰고 몽글몽글하며 따뜻해졌다. 나 임신인가봐!
업무를 하는 사이사이 테스트기 사진을 들여다보고 들여다봤다. 아침에 본 그것이 정말일까? 진짜일까? 싶었다. 집에 가면 한 줄로 변해 있는거 아니야? 불안하기도 했다. 하루종일 자주 작은 미소가 지어졌고, 가만히 생각하다 보면 갑자기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도 했다. 빠르게 퇴근한 후, 저녁에는 여러 종류의 임신테스트기를 사와 쫙 했다. 희미하긴 해도 모든 테스트기가 두 줄이었다. 확실하다. 임신이다!
남편 퇴근 시간에 맞춰 갑자기 먹고 싶은 게 생겼다며 식당을 데려갔다. 두 줄이 가장 선명한 임테기에 리본을 달고 카드를 쓰곤 함께 편지 봉투에 넣었다. 밥을 먹다 말고 소소한 선물이라며 남편에게 건넸다. 편지인 줄 알고 잘 읽어볼게 하더니, 열자마자 남편의 표정이 일그러지곤 정말이냐고 하더니 울었다. 나또한 이제서야 눈물이 났다. 정말로 너무 행복한, 가슴부터 행복의 눈물이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너무너무 신기해하며, 집에 오는 길 내내 이럴까 저럴까 두근거리는 대화를 했다.
생각해보면 손의 온기가 시작이었던 것 같다. 장례식장은 냉방을 계속 해 다들 추워했음에도 나는 춥지 않았는데, 심지어 손바닥이 계속 따뜻했다. 원래는 추위도 잘 타고 추운 데 있으면 금방 손도 발도 시려워지곤 했었는데. 이상하리만치 손이 하루 종일 뜨끈뜨끈했다. 그걸 핑계로 얼음같은 할머니의 손을 3일 밤낮 시시때때로 잡고 있었다. 남편도 네 손이 왜 계속 따뜻하지? 하고 물어봤었다. 나는 아마 혈액응고 방지 주사와 약을 먹고 있으니 혈류가 개선되어서 그런 것 아니겠냐며. 다 약 때문인 것 같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게 시작이었을까.
지금도 손바닥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게 스스로 느껴질 정도로 손이 따뜻하다. 임신을 확인한 후에는 잘 때도 손발과 온 몸이 덥게 느껴진다. 더위로 잠이 잘 오지 않기까지 한다. 이제 막 착상이 된 배아가 이렇게도 자신의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낸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다. 1mm도 안되는 배아가 나의 몸과 마음을 이토록 따끈하게 하다니. 역시 강한 아이다.
와,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 나 임신인가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