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양, <해탄적일천>을 보고
짝꿍요가, 라는 것을 했다. 주말 오후 남편과 함께 였다. 강사님과 그 짝꿍, 참가자 여덟 까지 총 열 명. 속닥거리며 보이차를 나눠 마셔 조금 데워진 몸으로 둘 씩 붙여 둔 매트 위에 앉았다. 시작 동작은 서로 등을 맞댄 채 편안히 앉기. 등 한가운데에서 콩콩거리는 남편의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가늘게 들썩거리는 호흡의 리듬도 알아챌 수 있었다. 그 상태에서 몇 가지 동작을 하자 이내 뜨거워진 등의 온도도 그대로 전해졌다. 내 호흡에 집중하기 어려울 거에요. 짝꿍의 존재로 인해 자꾸만 집중이 분산될 거에요.
눈을 감고 안내에 따라 움직임을 이어갔다. 팔이나 다리를 뻗는 동작을 하자 곧잘 남편의 매트로 내 몸이 넘어가고 서로의 몸이 닿거나 얽혔다.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세요. 거슬림을 느껴보세요. 자연스럽게 포개거나 피해주세요. 일어서서 무릎을 거의 90도로 꺾은 상태를 유지하는 동안에는 잠깐 사이에 훅 하고 땀이 났다. 지시대로 다시 등을 맞대고 자리에 앉았다. 방금 전까지는 나의 형상을 유지하느라, 지금은 짝꿍으로 인해 집중을 하기 어렵습니다. 형태만 달라졌을 뿐 고통은 계속됩니다. 그의 존재를 받아들이세요. 손을 잡거나 팔꿈치를 대거나 손 끝을 닿는다. 팔의 떨림과 손의 땀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서로가 거기 있음을 알아주세요. 침범하거나 거슬리게 하려는 의도가 없이 그저 자신의 삶을 살 뿐인 그 사람을 인지하세요. 무릎을 모으고 앉아 몸을 작게 둥글린다. 같이 있지만 또 온전히 혼자 있는 나를 안아 보세요. 짝꿍이 옆에 있는 걸 알아만 두세요. 나는 내 배가 커지고 작아지며 호흡하는 것에만 집중해봅시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은 짝꿍요가 같은 것 아닐까. 불쑥 끼어들고 거치적거려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방해가 되기도 하고, 때론 계획대로 되지 않거나 협조가 잘 안되어서 섭섭해 지기도 하며, 예기치 않은 표정과 자세로 나를 놀라게 하기도 하고, 참을 수 없게 참견하고 싶기도 하다. 내게 주어진 좁은 매트는 분명한 경계가 있으면서도 그 구분이 모호하다. 의도치 않게 서로 넘나든다. 나의 공간이면서 너에게도 쉬이 혹은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내 준다. 서로의 호흡과 온도를 알아 준다. 그러면서도 각자가 각자의 수련을, 자신의 삶의 시간을 이어간다.
에드워드 양 감독의 <해탄적일천>이 린자리의 성장 이야기로 읽혔다면, 그 성장은 가령 “내가 나의 매트 위에 있음”에 대한 깨달음이 아닐까. 자타의 경계를 인식하고, 자신은 자신의 것을 해야 함을 알게 되는 것 말이다. 오직 서로만이 등을 맞대고 있더라도 그와 나의 리듬과 온도는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떤 사건이 펼쳐져도 아랑곳없이 그날의 파도를 행하는 바다처럼, 각자는 각자의 수련을 해야 한다는 것을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