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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마켓

이민자 삶의 희로애락

by 이미숙

또르르, 탁탁, 철컥, 탁탁탁….

현금통이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하며,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인다.


미국의 작은 한인 마켓.

북적이는 사람들, 오가는 인사, 시끌벅적한 활기로 가득한 이곳은 마치 작은 고향 같다.


손님들은 잠시나마 여기가 미국이라는 사실을 잊은 듯, 서로 아는 얼굴을 반가워하며 안부를 묻는다. 작은 가게 안에는 서울의 모든 것이 축소되어 담겨 있다. 없는 것이 없는 곳.


이 마켓의 주인은 이민 1세대 부부다. 작은 체구지만 부지런함으로는 세계 1위일 것 같은 남편과, 그를 묵묵히 따라온 아내. 그들은 한국에서 정미소를 운영하다 이곳에 왔고, 아주 작은 구멍가게에서 시작해 차근차근 대형 마켓과 여러 상가를 일구며 자리를 잡았다.


남편은 성실, 진실, 꼼꼼함 그 자체였다. 그러나 동시에 유명한 ‘구두쇠’이자, ‘까탈스러운 사장님’이었다.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현금통 앞을 사수하며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는 ‘캐시맨’. 바닥에 떨어진 1센트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손님이 떠나면 슬쩍 발로 눌러뒀다가, 사람들이 보지 않을 때 주워 올리는 모습이 익숙하다. 화장실 불이 켜져 있으면, 안에 사람이 있어도 그냥 꺼버린다. 소문난 ‘자동 Off man’. 절약이 몸에 밴 그의 삶은, 이민자의 교과서 같은 성공 모델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아내. 이 남편을 따라 손가락, 발가락이 쥐가 나도록 일해 온 사람. 그녀는 남편보다도 더 야무지고, 몸을 사리지 않았다. 하루에 수백 근의 LA 갈비, 차돌박이, 불고기, 삼겹살을 기계로 썰어내고 밑반찬을 만들고, 떡 주문까지 처리하는 철두철미한 일꾼.


쉬지 않고 손을 움직이면서도 틈틈이 한국 드라마를 비디오로 녹화해 이민자들에게 ‘위로의 콘텐츠’를 제공했던 사람. 그 시절, 연속극 비디오를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그녀는 ‘작은 행복’을 배달하는 존재였다.


몇십 년이 흘렀다. 이들은 성공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의 삶은 돈을 버는 데 집중한 나머지, 어느 순간 사라지고 없었다. 한 번도 여행을 가지 않았고, 골프 한 번 치지 않았으며, 일 외에 ‘재미’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살아왔다.


그들에게 돈은 성공의 목표였을까, 아니면 그저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었을까. 그리고, 결국 시간은 그 대가를 요구했다.


고된 노동의 세월이 지나고, 부부는 ‘성공’의 자리까지 올라왔지만, 아내의 몸은 혹사당한 채 병이 들었다. 그녀의 손끝에는 아직도 익숙한 노동의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예전처럼 움직일 수 없는 날들이 찾아왔다.


그제야 문득,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을 위한 성공이었을까?’


이민자들의 삶은 언제나 쉽지 않다. 낯선 땅에서 터를 잡고, 견디고, 버티며, 달려간다. 하지만, 그 끝에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 그들의 삶을 돌아보며, 나도 모르게 씁쓸한 마음이 든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때 함께했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그들이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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