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걸크러쉬, 그녀

웃음 뒤에 감춘 외로움과 의리

by 이미숙

"Miss Lee, Good morning!"

아침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그녀의 우렁찬 인사.


왕왕왕! 시끌벅적하게 하루를 깨우는 소리와 함께, 가게 안에는 동네 소식과 수다가 끊이지 않는다. 마치 동네 보안관처럼, 그녀가 등장하면 분위기가 확 살아난다.


이곳에서 닌자를 모르면, 이 동네 사람이 아니다.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존재감. 그녀 없는 날이면 가게도 왠지 조용해지고, 손님도 뜸해지는 기분이 들 정도다.


닌자의 모습은 마치 TV 프로그램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법한 장면이었다. 흑인과 일본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크고 동그란 눈에는 항상 색깔 콘택트렌즈를 껴서, 마치 고양이 눈처럼 반짝거린다. 거기에다 몇십 년 동안 변함없는 독특한 헤어스타일까지. 앞머리는 단발, 뒷머리는 가짜 긴 가발. 베이지색, 옅은 밤색, 노란색이 섞인 그녀만의 스타일은 어느새 이 동네의 ‘상징’이 되었다.


머리숱이 많지 않아 매주 직접 가발을 만들어 쓰고, 흐트러짐 없는 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 바지 뒷주머니에는 늘 도끼빗을 꽂고 다닌다. 십 분 간격으로 빗질하는 모습은 이제 자연스러운 습관이 된 지 오래다.


크고 묵직한 몸집에 허리는 굵고 엉덩이는 커서 청바지를 입으면 항상 쫄바지처럼 보였다. 허리에는 ‘챔피언’ 벨트를 두르고, 거친 목소리로 허풍을 떨며 손짓발짓까지 크다. 그녀는 스스로 동네의 ‘보안관’이라도 된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마치 자신이 이곳을 책임지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그 호탕함 속에는, 아무도 모르는 외로움이 숨겨져 있었다.


닌자는 한국 음식을 유난히 좋아했다. 자존심 강한 그녀도 한식 앞에서는 모든 걸 내려놓을 정도였다.

한국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즐겼고, 우리 가게에서도 늘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두 가지 약점이 있었다.

도벽과 도박.


돈만 손에 쥐면 곧장 카지노로 향했고, 가게에서 일하면서도 흑인 친구들과 공모해 물건을 빼돌렸다. 한두 번은 모른 척했지만, 점점 도가 지나치면 단속해야 했다. 그러면 닌자는 더 영리하게 수법을 바꿨다.


이 지역에서 흑인을 상대로 장사하는 한인들은 그들과 직접적으로 대립하지 않으려 애썼다. 일부는 눈감아 주고, 일부는 적당히 맞춰가며 가게를 운영했다. 닌자는 그런 줄타기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비록 도박을 하고, 도둑질했지만 그녀는 정 많고 의리가 강한 사람이었다. 때로는 자신도 그 습관을 고치려 애썼다. 그러나 쉽게 끊어지지 않는 게 또 인간의 나약함이었다.


돈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늘 쪼들리는 삶. 제대로 된 옷 한 벌 사 입지 못하면서도, 카지노에 신용을 걸어둔 채 살아가는 아이러니.


그러던 어느 날, 닌자가 말했다.

"Miss Lee! 오늘 밤은 랍스터 파티 가자!"


카지노에서 쌓인 신용 덕분에 가족들은 가끔 공짜로 고급 호텔 뷔페에 초대되었다. 랍스터를 실컷 먹을 수 있는 날이었다.


처음엔 즐거웠지만, 점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닌자야, 이제 그만해. 도박도, 도둑질도. 넌 그것만 아니면 정말 좋은 사람이야."


그녀는 미안한 듯 웃었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지만, 그저 우리에게 랍스터 한 접시를 더 건넬 뿐이었다.


어릴 때 엄마 곁을 떠나 홀로 살아온 세월. 그 외로움이 그녀를 더욱 우리에게 밀착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멀리 떨어져 사는 엄마는 딸을 위해 매년 1만 불씩 보내고 있었다. 그 돈이 카지노로 사라지는 걸 알면서도, 그녀의 외로운 삶을 가엾게 여겼던 것일까.


시간이 흘렀다. 나는 그곳을 떠났고, 닌자도 더 이상 내 곁에 없다.


지금쯤, 60을 훌쩍 넘겼을 텐데…. 여전히 "Miss Lee!" 하며 호탕한 목소리로 나를 부를 것만 같다.


그녀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직도 도박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새로운 삶을 살고 있을까? 이따금,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Miss Lee!"


그 에너지 넘치는 목소리가 그립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