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입견을 넘어선 깨달음의 순간
미국에 이민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교회를 가던 길이 아직 눈에 익지 않았고, 특히 교회가 흑인 주택가에 가까운 곳에 있어 더욱 긴장되던 시기였다. 집에서 30분에서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지만, 낮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다녀왔던 길이었기에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 작은 골목 하나를 지나치는 실수로 인해 전혀 다른 세계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날은 저녁 부흥회가 있는 날이었다. 오후 4시쯤 출발했는데, 이상하게도 자꾸 방향이 어긋나는 느낌이었다. 어느 순간, 주변을 둘러보니 흑인들만 사는 깊고 으슥한 동네에 들어와 있었다. 뒷좌석에 있던 어린 두 아이가 "엄마, 언제 도착해?"라며 지루함을 호소했고, 나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차 문을 꼭 잠그라고 당부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아이들에게 절대 문을 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길을 되돌아 나가려던 찰나, 멀리서 여러 명의 흑인 남성들이 내 차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내 차 앞을 가로막고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저 호기심에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에는 영어도 서툴렀고, 무엇보다 지인들이 해준 이야기들이 떠올라 더 겁을 먹었다. ‘흑인 가에 잘못 들어서면 상해를 입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라는 경고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더 가까이 오기 전에 차를 돌리려 했지만, 그들이 손짓하며 차를 세우라는 신호를 보냈다. 공포감이 밀려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작정 차를 몰아 달렸다. 도망치듯 빠져나와 한참을 달렸지만, 아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엉뚱한 곳을 헤매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익숙한 길이 나타났다. 그렇게 10시간 넘게 길을 잃고 방황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주변 주유소에서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그곳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흑인이었다. 선입견이 만들어낸 두려움 때문인지, 차에서 내릴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빈민가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마약에 중독되거나 범죄에 연루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혹여 강도를 당하거나 위험한 상황에 부닥칠까봐 더욱 움츠러들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긴장과 공포 속에서 몇 시간 동안 운전을 했던 탓인지, 현기증이 나면서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며칠 동안 몸살을 앓으며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했다. 그때부터는 어디를 갈 때면 철저하게 지도와 위치를 확인하고, 사전에 연락을 남긴 후 움직이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내가 얼마나 큰 선입견을 품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길 하나 잘못 들었을 뿐인데, 왜 그렇게 두려움에 휩싸였을까?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을 모두 위험한 사람들로 오인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미처 몰랐던 내 안의 편견이 부끄러웠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 후로는 흑인을 만나면 더 다정하게 대해주려 노력했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했다. 사람은 결국 다 같은 사람이다. 피부색이 다르다고 해서 무섭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물론 빈민가에 살수록 생존 환경이 거칠어지고 범죄율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이 곧 모든 흑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미국은 자유와 평등을 외치는 나라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인종 간의 격차가 존재했다. 거주 지역도 반으로 나뉘어, 한쪽에는 흑인이, 다른 한쪽에는 백인이 사는 모습을 보며 아이러니한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경험은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고, 타인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를 되돌아보게 만든 소중한 배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