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꽃이 말해주는 이야기: 포피(Poppy) 꽃은 어르신들과 닮아 있습니다. 이 꽃은 그저 눈에 띄게 붉고 아름답지만, 그 속엔 삶의 굴곡을 따라 새겨진 기억과 상처를 품고 있죠. 전쟁 같은 세월을 견디며 남긴 주름진 손과 깊어진 눈빛처럼, 포피의 붉은 꽃잎은 누군가의 헌신과 희생, 그리고 그로 인해 남겨진 아픔을 고요히 품고 바람에 흔들립니다. 척박한 땅에서도 피어나듯이, 이들도 긴 세월을 지나며 고난 속에서도 굳건히 서 왔습니다. 언뜻 보면 덧없어 보이는 순간에도 강렬히 빛나는 그들의 삶은, 마치 부서질 듯한 마음 속에서도 피어나는 희망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수시로 "선생님, 여기는 뭐 하는 곳이요~?" "누구시냐?" 되묻고, 어딘지 모를 곳의 이름을 대며 데려다 달라시며 찾아가는 과거 속에 사시는 우리 어르신들.
현실을 모른 채 똑같은 물음을 반복하시며 웃음기 없는 얼굴에서 가족이란 사랑을 그리워하면서 살포시 아쉬움을 토해내십니다.
본인만 모르는 현실… 너무도 당연한 일이시고, 받아 누려야 할 가족의 사랑을 함께 느끼고 싶으신데… 왜 지금 내가 여기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으로 낯설어하십니다.
우리도, 아니 나 자신도 언젠가, 아니 얼마 남지 않은 코앞의 일인 것을, 아련히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숙제로 남겨봅니다.
세상 사시던 무게중심이 모두 몸으로 와버린 듯한 아픈 고통들… 시린 마음들, 서러움을 하나둘씩 꺼내놓으시며 응석받이처럼 이제야 관심과 사랑을 원하십니다.
"선생님~ 선생님~~~" 하루면 수없이 부르시고, 아프시다 소리 지르시고 외칠 때, 여기저기서 외치는 것 중엔 한 가지, 모두 사랑과 관심을 주라는 것처럼 가여움이 내 깊은 가슴을 울립니다.
"여기는 누구 집이여~? 뭐 하는 곳이여~?" 현실을 잊은 채 똑같은 물음을 반복하십니다. 웃음기 없는 얼굴에서 가족이란 사랑을 그리워하면서 살포시 서글픔과 함께 아련함이 보입니다.
가족이란 이런 아픔까지 받아들여야 하고 함께 품어야 하는 것인데… 사는 게 우선이라는 이유로 또 다른 환경에 새롭게 적응하시는 나의 어르신들을 뵐 때마다 나의 자화상을 떠올리며, 나의 어머니 아버님이라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서 남은 인생이나마 아름다웠다고, 좋았다고, 고마웠노라고 말하실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나 자신을 매일 다졌습니다.
내 어머니 아버님처럼 못다 한 효도 하듯이 조금씩 사랑이란 마음을 나눠 드리도록 노력하자고 다짐했지만 항상 부족함을 느꼈죠…
다른 인연으로 만나 또 다른 가족이란 이름으로 어르신들을 뵐 수 있어서 감사했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한 분 한 분 충분한 사랑, 넘치는 사랑을 다 드리지는 못했지만 최선을 다하여 불편함이 없도록 돌봐드리려 노력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어르신들, 건강하게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삶조차도 보람 있게, 행복하게, 여러 어르신과 함께 잘 보내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매일 오고 갔던 사랑스러운 감정들, 제가 드리는 것보다 받는 것이 많았습니다. 이제 그 아름다운 추억을 하나씩 나눠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