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속에 남은 기억
꽃이 말해주는 이야기: 봉선화(Impatiens)는 작고 다부진 모습이지만, 선명한 색과 강인한 생명력으로 주변을 환히 밝혀줍니다. 어르신의 서글서글한 눈웃음과 한평생 책임감 속에서 살아오신 모습이 봉선화의 꿋꿋함과 닮아 보입니다.
봉선화는 한 번 피면 주변에 씨앗을 남기며 흔적을 남기듯, 어르신도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남긴 삶의 흔적이 주변에 깊은 울림을 줍니다. 지금은 잊혀진 기억 속에서도, 평생을 지탱한 마음의 무게와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봉선화처럼 소박하지만 아름답게 남아 있는 듯합니다.
아주 작은 키에 다부지게 생기신 남자 어르신께서 입소하셨다. 눈망울이 서글서글하시고, 눈웃음을 치시는 어르신께서는 소, 대변을 가리지 못하시는 중증 치매 환자이셨다.
하루 종일 뭔가 불안하신지, 밤에 주무실 때 외에는 방에 계시지 않고 긴 복도를 왔다 갔다 하신다.
창문에 달라붙어 밖의 틈을 찾으시고, 밖으로 내려가려고 탈출구를 찾으시는 것 같았다.
소, 대변 제어가 안 되셔서 요양원복 속에 팬티 언더웨어를 입혀드렸지만, 항상 복도 옆에 있는 큰 나무 화분에 소변을 보신다.
못 하게 하면 가로수 나무에 비료를 준 것이라고 항변하신다. 길거리 가로수로 생각하고 계신 것이다. 예전에 종종 해보신 행동이다.
바지 한쪽은 반만 접고, 또 한쪽은 팬티 끝에 걸치시고 기저귀가 오락가락 흔들리면서 다니는 모습이 꼭 2살 개구쟁이 어린아이처럼 복도 끝에서 끝까지 왔다 갔다만 하신다. 너무 귀엽고 웃음이 난다.
눈 맞춤하게 된 저에게 "미스 김, 이리 와보라"며 오늘 거래처 어디 가서 돈 받아오는 날이라고, 다녀오라고 하신다. 알겠다고 답하고 주소와 연락처를 달라고 하니, 당신 이름만 적어주시며 빨리 갔다 오라고 종용하신다.
하루에도 여러 번 "미스 김"을 부르시며 결제 상황을 말해주신다. 머리에 각인된 '미스 김' 역할을 자주 대변해 드리며, "얼마 받아오면 될까요?" 여쭤본다.
"알아서 줄 거라 연락해 놨다"며 받아오면 오늘 회식시켜 주겠다고 말씀하신다. 이렇게 하루 종일 같은 말만 반복하셨다.
그러다 왔다 갔다 하시다가 갑자기 모습이 안 보일 때가 있다. 화장실이고, 다른 방이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아 놀란 가슴에 밖으로 나갔는지 확인했지만, 엘리베이터 사용 카드가 없어 나가실 수 없음을 확인하고 다시 찾아보는 순간, 눈에 띄는 벽 쪽 방화 설비실이라는 문이 보여 혹시나 열어봤더니 그 안에서 무언가 쪼그려 앉아 계신다.
깜짝 놀라 어르신께 "여기서 뭐 하세요?" 물으니, "응~~ 내가 설비 기술자인 거 몰라~~? 설비 확인해 봐야 해~"라고 하신다. 그분에게는 직업병이 있었다.
모든 기억은 없어지는데, 평생 해오신 설비 기술에 관한 이야기는 잊지 않고 하신다. 그 좁은 공간에 딱 맞는 그분만의 몸 사이즈와 맞아 웃을 수도 울 수도 없고 귀여우셨다.
가족도 친구도 과거를 기억 못 하시면서 그저 '설비'라는 글씨가 쓰여있는 장소는 당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소신이 남아 있으신 우리 어르신.
그 세월, 우리 아버님들의 삶의 무게를 간직하셨던 지금 현실 앞에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이 모습에서 눈물이 났다.
"어르신, 다신 이곳에 들어가지 마시고 저와 함께 놀러 다니자고요~~"
"좋지...!"
그러나 그것도 잠시,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없다. 아내가 찾아와도 미스 김으로 기억하시고, 수금하러 가자는 말씀만 되뇌신다. 얼마나 많은 세월 동안 돈이란 생계로 스스로를 가둬놓으셨을까... 세월 속 눌린 스트레스.
식사 시간이면 차분히, 여유도 없이 허겁지겁 드시고 얼른 일어나 쫓기듯 밖을 향해 뛰어가다 돌아오신다. 안절부절 어쩔 줄 모르신다.
가여운 어르신, 제발 이제는 다 내려놓고 평안을 누리시면 안 될까요? 평생 종종거리셨던 삶을 보게 됩니다. 너무 늦게 쉼을 잃어버리셨어요.
무엇 때문에 지금도 종종거리시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