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속에서도 빛나는 사랑과 이별의 시간
꽃이 말해주는 이야기: 국화(Chrysanthemum)는 전통적으로 생의 마지막을 기리는 꽃으로 여겨지며, 동시에 품위와 정서를 담고 있습니다. 소희 어르신과 철수 어르신의 이야기는 삶의 마지막 순간과 그 속에서의 감정적인 여정을 담고 있어, 국화의 상징인 추모, 평온, 그리고 존엄을 떠올리게 합니다.
"야, 이년아! 만지지도 마! 저리 치워!" 하시며 앙칼지게 손톱으로 꼬집고 비트시며 곁을 내주지 않으셨던 소희 어르신.
내 것만 사수하시는 성품, 깐깐하시고 깔끔하며 정확한 것을 좋아하시는 철수 어르신. 부부가 어느 날 입소하셔서 요양원 가족이 되셨다.
두 분 다 중증 치매를 앓고 계셨고,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신 와상(침대에 항상 누워만 있는 환자) 어르신들이셨다.
어찌나 낯을 가리시고 꼼꼼하게 따지시는 성품인지, 과거 관직에서 일하신 폼새가 묻어나셨다.
여자 어르신의 체구는 초등학생 2학년 정도로 가냘프고 예민하고 신경질적이었다. 어르신은 남편 목소리에 익숙해져서 남편의 말씀만은 따르셨다.
소희 어르신은 워낙 소식하시고 가리는 음식이 많으셨던 분으로 기억된다. 철수 어르신 역시 소식하시며 면 종류 위주의 식사, 빵, 간식, 음료 등으로 편식이 심하셔서 우리 선생님들이 두 분을 모시기 참 힘들었다.
몇 개월이 지나서야 철수 어르신께서는 우리에게 완전히 믿고 맡기며 의지해주시는 분으로 바뀌셨고, 순한 성품으로 변해가셨으나 우리 소희 어르신은 날로 무섭고 날카로워지셔서 정말 힘들게 하셨던 것 같다.
꼬집고 할퀴고, 틈만 나면 기저귀를 벗어 던지고 찢으며 심한 욕까지 하셔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예민해지셨고, 식사는 일절 거절하시며 주사로만 버티실 정도로 악화하셨다.
그래도 성질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으셨다. 가능하면 자극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살펴드려야 했다.
철수 어르신께서 부인이 심하시다고 느끼셨는지, "여보, 선생님들 말 좀 잘 들어. 성질 그만 부려요." 하며 거들어주시곤 했다. 하지만 옆에 계신 남편의 시중과 말벗해 드리는 것에 대한 심술이었던 것 같다.
두 분만 계시면 조용히 "여보"라 부르시며 자주 철수 어르신의 자리를 확인하시고, 선생님들만 보면 눈을 째려보셨다.
어느 날 철수 어르신 방에 미니 슈퍼마켓이 차려졌다. 특히 각종 라면 브랜드가 다 세팅되어 있었고, 작은 방 한켠에 당신이 좋아하시는 과자, 빵, 음료수 등으로 따님께 부탁해서 세팅된 것이었다.
철수 어르신께서는 흐뭇해하시며 안정감을 느끼셨다. 그렇다고 그것만 드시는 것도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까지...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하시니 아버님 성품에 원하면 바로 해서 놔 드려야 한다는 따님의 배려가 대단했다.
철수 어르신께서는 우리 선생님들께 언제든지 먹고 싶은 것을 골라 먹어도 된다고 허락해 주셨다. 그냥 힘들게 보필하는 선생님들을 위한 깊은 배려였던 것 같다.
당신께서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시면서 잦은 실수로 옷과 침상을 수시로 교체해 드릴 때마다 괜스레 버럭 화부터 내시고, 표정이 굳어지심을 볼 때 자존감이 떨어지는 실망스러운 표정.
"어르신, 괜찮아요. 그러실 수 있어요."라고 위로해 드리면, "미안하다"는 말씀을 연신 남발하셨다.
"어르신, 오늘부터 새로 태어난 새 생명이라고 생각하시고 어린아이처럼 저희에게 맡기시고 마음 놓으셨으면 좋겠어요. 미안해하지 마세요."라 부탁드리면, 고맙다며 부탁한다고 하셨다.
그렇게 신뢰를 바탕으로 오락가락하시는 치매 증상임에도 불구하고 잘 적응해 주셨다.
어쩌다 저녁쯤 출출해질 때, 똑똑 노크하면 "네~" 하신다.
"혹시 철수 마켓 아직 오픈 중인가요? ^_^"
"컵라면 두 개만 가져가겠습니다~ ^0^"
"오늘은 이것으로 가게 문 닫으셔도 됩니다. 내일 아침 일찍 다시 찾아뵐게요." 하면, "그러시게."라고 하신다.
이렇듯 그 방을 오갈 때마다 "오예스 두 개요, 음료수 한 개요." 하며 격의 없이 대해 드리는 것에 대한 작은 성의라며 흐뭇해하시고 주무신다.
철수네 마켓은 우리 선생님들 드시라 만들어 놓고 얼굴 한 번 더 보기 위한 위트였다. 치매이면서도 똑똑한 재치가 묻어나셨던 분이다.
하루하루 두 분의 병상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미래를 예상한 듯 조금씩 마음을 내려놓으시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 입소하실 때는 기세등등 큰 소리 내시던 일이 잦다 보니 가족들 모두 긴장대기조. 매일 찾아와 숨죽이며 지켜보다가, 어느 순간부터 조용히 머무시는 것에 도려 안타까워한다.
기운이 빠져 회복할 수 없음을 느끼셨던가요.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으셨던 걸까요.
누구나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가면 똑같은 일상을 맞이할 수 있는 일이지만, 준비 없이 맞이하는 노년의 삶은 멋지게 계획된 대로 살아지는 것은 아니련만 마음의 준비부터 세워야 하지 않을까, 우리들의 미래를 생각하게 됩니다.
몇 개월 후 새벽, 소희 어르신 아침 세수를 하던 때였다.
여느 때처럼 앙칼진 소리도 없고 조용히 주무시는 것 같았다. 몸에 손도 못 대게 하시던 분이 왜 이렇게 가만히 계실까 하며 이상한 생각을 했지만, 그 시간이 마지막이 되실 줄 모르고 왠지 깨끗이 손발까지 따뜻한 물로 씻어드리고 싶었다.
그렇게 나오고 30분 후, 간호사님께서 체온 체크하시다가 소천하셨다고 말씀하셨을 때 깜짝 놀랐다. 어쩐지… 마지막으로 깨끗이 씻고 떠나려 하셨구나. 가슴이 뭉클해졌다.
"어르신, 이제 아프지 말고 화내지 않으실 좋은 곳에서 영면하세요…"
그렇게 소희 어르신은 철수 어르신께 인사도 못 건네시고 홀연히 떠나셨는데 옆에 계시던 철수 어르신은 아무것도 모른 채 주무시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