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미숙 Nov 22. 2024

개미 할배

나눔으로 빛나는 노년의 하루

꽃이 말해주는 이야기: 백합(White Trumpet Lily)은 순수함, 희생, 그리고 헌신을 상징합니다. 어르신은 자신의 시간을 남을 위해 쓰고, 채소와 과일을 정성껏 가꾸어 모두와 나누는 모습에서 헌신적인 사랑과 이타심이 돋보입니다. 백합의 우아하고 조용한 존재감은 어르신의 소박하지만 깊이 있는 삶의 태도와 닮은 것 같습니다



10.


새벽 동트기 전부터 해가 저물어 잠자리 드시는 시간 외에 양손엔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항상 손에 쥐어져 있는 부지런하시기로는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어르신께서 우리 요양원에서 함께 지내신다.


자녀분들도 훌륭하게 성공시켜 놓으신 어르신의 노년은 아내 먼저 하늘나라 떠나보내시고 오랜 세월 홀로 지내시기에 적적하시다 이곳에 오신 이후 그래도 마음의 정을 못 붙이시고 방황하시다 찾으신 소일거리.


참으로 건강하고 튼튼해 보이신 분이셨지만 당신도 많은 지병을 안고 있음을 알기에 스스로 건강 지킴이를 자처, 단 하루도 어김없이 눈비가 오나 사계절 모두 이 동네 청소맨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출근할 때쯤이면 저 아래 동네부터 요양원 앞뒤 마당까지 모두 깔끔하게 정리된 것을 매일 볼 수 있었습니다. 어디 한 군데 휴지 낙엽 한 조각 찾아볼 수 없이 완벽하게 수시로 순찰하시며 수거하시지요.


습관이 되신 어르신, 땅만 바라보고 다니시면서 다른 활동은 접어버리시고 오직 청소와 자투리땅에 호박, 오이, 가지를 모종하시어 소일거리 벗 삼아 종일 땡볕에 지내기만 하려 하십니다. 


얼굴이 까맣게 그을려 땀을 비 오듯 쏟아가면서 말려도 말려도 듣지 않고 제 갈 길 가시는 고집통 어르신. 우리 요양원 청소 할배로 봉사하시는 유명하신 분이 되셨습니다. 


식사 시간 외에는 안에 계시려 하지도 않으시고 하루 종일 밖에서 일 찾아 헤매시는 중독자 할배가 되셨답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잡풀 한 포기, 쓰레기들은 어찌 어르신 눈에는 잘 띄는지 바로바로 수거 작전 돌입이지요. 누가 일부러 부탁드린 것도 아닌데 어느 날부터 이 동네 청소는 다 접수해 버린 상황. 


비 오면 비를 맞으시면서 눈이 오면 눈 맞으시면서 피해 갈 줄 모르시는 고집쟁이 어르신을 아무도 말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뭐든 고뇌 잡념을 떨쳐버리려 하시는 듯하지요.


푸릇푸릇했던 청춘을 한순간처럼 보내고 누렇게 퇴색되어 저무는 어르신. 산비탈 저만치 걸쳐진 능수 나무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새 깊숙이 어르신께 스며드는 행복감이 부듯함이 능수 나무 가지에 걸쳐지고 있어요. 


"날마다 빗자루 쓰레받기 놓으시고 흥겨운 노래 한 가락 부르시면서 시원한 수박 좀 드시고 쉬엄쉬엄 제발 쉬어보세요"라고 말씀드리면 가만히 안에 있으면 갇혀 있는 것 같아 답답해 죽을 것 같노라 이게 좋다시며 생기를 부여하신다. 


얼마 후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 아침 출근할 때 저만치 비닐봉지 두 개에 호박을 가득 따서 들고 오고 계신다. 


"안~~ 녕하세요~" 인사를 건네니 손에 들고 오신 것을 모두 주시면서 가져가서 먹으라 하신다. 왜 다 주시는 거냐고 여쭈면 첫 번째 만난 사람만 먹을 복 있는 날이니 매일 첫 번째 뵙는 분에게는 항상 이렇게 선심을 쓰시며 즐거워하셨다. 


우리 근무 선생님들 모두 골고루 싱싱한 야채 나누어 먹었던 추억이 있다.


그렇게 부지런하셨던 어르신께서 보는 사람마다 사탕 한 줌 쥐여 주시고 호박, 오이, 가지, 고추 따오는 수확 나오는 대로 모두 나누는 기쁨으로 하루하루 살아 있음을 부여잡고 살아가신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희와 철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