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함께한 시간, 그리고 잠시의 이별
꽃이 말해주는 이야기: 작약(Peony)은 풍성하고 우아하면서도, 그 안에 강인함과 섬세함을 동시에 담고 있는 꽃입니다. 어머니의 조용하면서도 헌신적인 모습, 그리고 아버지의 카리스마와 유머가 어우러져 두 분의 삶이 마치 작약처럼 풍성하고 깊이 있는 느낌을 줍니다.
다정한 듯 무심하게, 그야말로 옛날 어머님 아버님께서 툭툭 내뱉으신 말속에 사랑이 쏙쏙 묻어나신다.
여러 남매를 두시고 연로하신 두 분만 남겨두기가 불안한 자녀들의 배려로 요양원에 입소하셨다.
꼼꼼하시고 조용하신 두 분의 성품에서 깊은 사랑이 배어 나오시는 두 분을 맞이한 날, 되려 무척 반겨주시면서 예전부터 잘 아셨던 친밀감이 느껴졌다.
자그마한 체구에서 풍겨 나오는 카리스마는 엄했던 아버님들의 모습도 느낄 수 있었다.
며칠 동안은 두 분이 방에만 계시며 두문불출하셨다.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셨을 터. 차츰 서먹한 관계가 신뢰로 바뀌었고, 믿어 주시며 딸처럼 대해 주시는 가족 같은 식구로 자연스럽게 변해 가셨다.
손재주가 많으시고 취미가 다양하셨던 남자 어르신께서는 뭐든 적극적으로 활동해 주셨지만, 여자 어르신께서는 남편의 한 마디에 따라 움직이시는 천상 남편 바라기셨다. 남편 하는 데에 토 달거나 대꾸 한 번 해보지 않았다는 어르신, 그야말로 옛날 어머님이시다.
조용하시고 자기주장을 내세우지 않으시는 성품. 남편 뒤만 졸졸 따라다니며 남편 하시는 대로 따라 하신다.
묻는 말씀에 겨우 대답만 해 주신다. 그러나 가족이 오는 날은 그나마 입에 날개 다신 듯 조근대신 다니 신기하다.
남자 어르신께서는 젊은 시절 사업을 하시면서 가족을 부양하셨다는데, 짬짬이 취미로 부르스, 탱고, 지루박, 트위스트를 즐기셨다. 위트 있게 스텝을 밟는 춤사위가 보통은 넘어 보이셨다.
오락 시간이면 당연히 인기 짱이셨고, 먼저 나오셔서 선생님들을 리드하시며 흥을 올려주신다. 그럴 때면 여자 어르신께서는 눈을 흘리시며 못마땅한 얼굴로 찡그리신다.
살짝 여쭈어봤다.
"어르신, 남편 때문에 속 좀 썩으셨겠어요?"
"응." 하시며 금방 눈치를 보신다.
"춤사위가 하루 이틀 배우신 게 아닌데요?"
고개를 끄덕이시며 미우셨다고 귀띔해 주시고 당신은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밥 해 주고 살림만 하시며 애만 키우셨다고 하신다. 불만이 많으신 것 같았다.
"왜요? 살림하시면서 함께 취미생활 하시지 그러셨어요?"
그러자 남편이 바깥생활은 못 나가게 하셨다고 한다.
두 분이 지내시는 방에는 볼거리가 많다.
수업 시간마다 만드신 두 분의 작품들이 벽 한쪽에 빽빽이 진열되어 있고, 아기자기 꾸며놓으시며 자랑하신다.
한쪽엔 작은 어항에 물고기를 넣어 키우시며 새끼 번식하는 모습을 보시고는 어항 한쪽에 어린이집 하듯 따로 분리해 놓으시는 꼼꼼함이 돋보였고, 흐뭇해하시며 정성을 들이신다.
선생님들마다 전화번호를 따서 가끔씩 전화로 안부를 묻고 관심을 유도하시며 친밀감을 보여 주신다.
아직은 건강하시다며 두 분이서 산책도 하시고 노년의 여유를 즐기시는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요양원에 있다고 해서 다 슬프게만 느끼는 선입견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얼마든지 건강만 유지하신다면 편안한 생활이 될 거라 믿는다.
앞으로 나도 나이 들어 이곳에 있을 때가 오지 않을까. 늘 어르신들을 모시면서 준비하는 마음을 가져본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고, 내가 마음에 행복을 품으면 모두 행복하다고. 지금까지 여러 어르신들과 오랜 세월을 함께하며 정말 우리 어머님보다 더 오래 가까이서 뵈었던 터라 진짜 우리 어머님, 아버님들과 같은 가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