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건히 걸어온 길, 그리고 쉼

프롤로그

by 이미숙

2016년부터 2023년까지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8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이 잠시일지, 영원히 이어질지 알 수 없지만, 아쉬움을 머금고 중단을 선언했다. 쉼의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온몸이 더는 버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두 다리로는 더 이상 서 있기조차 힘들고, 두 어깨도 진통으로 손을 움직이기가 어렵고, 허리는 협착으로 뻐근한 고통이 심하여 밤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다.


온몸이 마비가 올 정도로, 최선을 다해 일에만 몰두하며 내 삶 속의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부모라는 직분으로만 열심히 살아온 훈장 같은 것이다. 내 몸이 아프다 해도 다른 이에게 한 치의 소홀함도 용납되지 않았던 성격이라, 내 몸이 이렇게 망가져 가는 줄도 몰랐고, 그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버텨왔다.


이때 내 나이 65세. 결국 병원 신세로 전락하였고, 힘든 시간과 싸워야만 했다….


그전에는 이민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택해, 어린 두 아이를 넓은 세계에서 공부시키겠다는 마음으로 대륙의 땅 미국 미시간으로, 2000년 먼저 두 아이와 함께 홀연히 떠났다.


막연한 꿈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현실은 마치 지옥에 입성한 것 같았다. 무지의 세계 속에 덩그러니 놓인 세 가족이 타국에서 물러설 수 없는 힘겹고 고독한 새 삶을 일구어야 하는 순간순간 맞닥뜨려야 하는 생존의 현실.


가장 다른 언어와 문화, 살아가는 법. 하나하나 새로 배워야 하는 무거운 마음에 짓눌렸으니까. 그래도 두 아이를 생각하며 부모는 이겨내야 한다는 다짐과 의지 하나만으로 밀어붙이며 용감하게 시작된 타국 생활도 시간이 지나고 버티니 살아지더라.


생존의 법칙은 내가 정하고 일구어가는 것.


하나하나 계획했지만, 실패도 있었고 좌절도 겪으면서 다져지고, 경험의 바탕이 버팀목이 되어 고비마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삶이 이 순간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은 아득한 미국에서의 삶이었다. 그러나 내 인생에 다시 올 수 없고, 겪어볼 수 없는 존귀하고 놀라운 추억의 한 페이지를 남겨놓았다.


그래도 두 아이가 중학교부터 대학원까지 무사히 공부를 마치고, 저마다 제자리를 찾아 각자의 삶을 잘 살아가는 것을 보는 부모는 기쁨이고, 보상받은 마음이다. 부모는 자식 앞에서 어디까지가 끝인지 모르지만, 가족이라는 삶 속에서는 영원하지 않을까….


나 자신에게만은 관대하지 못한 삶이고, 오직 먹고살아야 한다는 생존을 앞세워 정신없이 몇십 년을 하루 같이 버텨온 날들이었지만, 그때그때는 여유를 누릴 수 없는 현실뿐이었으니 아련하다. 비록 내 몸은 병들고 쇠약해졌지만, 그래도 정말 굳건히 열심히 잘 살아왔노라 위로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