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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미숙 Dec 08. 2024

카츄사 할배

와상 어르신과의 일상 속 웃음과 도전

카모마일(Chamomile)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바꾸진 않지만, 작은 잔잔함과 위로로 마음을 진정시킨다. 나 역시 어르신의 장난스러운 행동들 뒤에 숨겨진 마음을 헤아리고, 차분한 태도로 그 답답함을 덜어드리려 노력했다. 때로는 어르신의 농담이나 짓궂은 행동이 나를 시험하려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당신의 외로움을 이해하려고 마음을 다잡았다.



22.


잘생긴 남자 어르신께서 입소해 있었다. 하루면 수없이 벨을 누르신다. 하반신 와상 어르신이기 때문에 수시로 도움을 드려야 하지만, 웬만하면 본인 스스로 하시려 하시면서도 새로운 여자 선생님들만 보시면 장난을 거신다. 


괜히 불러놓고 침상에 가래침 뱉고 머리맡에 놓인 휴지 빼달라 하시고, 휴지통 바로 옆에 있어도 멀리 던져 놓으시고는 휴지 주워 버려 달라 하신다. 일하시는 선생님께 손 잡아달라 하시면서 방에 들락거리도록 일부러 딴청을 부리신다. 처음 오신 선생님들은 어르신 성향을 모르니 똑같은 상황을 여러 번 대면하게 된다.


남들 다 주무시는 밤에도 변함없이 벨을 눌러 달려가 뵈면 잘못 누르셨다 하시고 씨익 웃음으로 넘기시기 일쑤. 어느 날 선생님 한 분이 다급히 부르셔서 가보니 어르신께서 영어로 무언가 말씀하시는데 못 알아듣겠다 하시며 도와달라 하셨다. 원래 한국말을 잘하셨던 분이신데, 갑자기 영어로만 말씀하시며 장난을 치시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시냐 여쭈니, 당신이 예전 미군부대에서 카투사로 근무했었다고 자랑하시며 선생님들에게 영어를 얼마나 잘할 수 있나 테스트 좀 하는 것이라 하신다. 그러더니 대뜸 욕부터 하시며 웃으신다. 못 알아듣는 척하니 이상한 성희롱적 말도 안 되는 소리까지 하시면서 선생님들을 힘들게 하신다. 


어르신께 정중히 그런 나쁜 말씀은 삼가 주시라 전하니 순간 깜짝 놀라시며 당황해하신다. 영어로 대답해 드렸다. 저희도 영어 알아들을 수 있고 말도 할 수 있으니 요양원 선생님들을 우습게 보시면 안 된다고 말씀드렸다. 학벌이나 인성 등 다 갖춰진 선생들이니 예의를 갖추어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미군부대에서 무슨 일 하셨냐 여쭈니, 사무관리 하셨다고 거짓말로 둘러대신다. 말씀은 하시는데 영어가 어설픈 게 앞뒤 단어가 안 맞고 이상하여 마침 근무하는 곳에 어르신 아드님이 함께 근무하고 있어서 아버님이 선생님들께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니 아드님께서 대신 사과하시고 카투사 때 잠시 운전기사로 근무하셨다고 말해주셨다. 그리고는 아버님께 달려가 이상한 말과 거짓말로 영어 하지 못하시도록 당부하는 것 같았다.


이후 우습게 보시고 무시하며 희롱 섞인 장난을 자주 하셨던 어르신께서 점차 눈치 보시듯 조심스레 물어보신다. 어떻게 당신 말을 알아들을 수 있냐고 하셔서, 어르신, 제가 미국에서 좀 살다 왔다고 말씀드렸다. 그 이후 영어는 사용하시는 것을 볼 수 없었고, 근무하시는 선생님들에게도 실없는 농담이나 이상한 행동은 멈추게 되셨다.


간혹 남자 어르신들 중에 치매로 인해 나쁜 행동을 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그러나 좀 더 세심하게 취미 활동을 하실 수 있도록 정서 안정 지원에 신경 써 드리면 많이 변화된 삶으로 바뀌신다. 늘 상황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시는 어르신께 아드님이 곁에 자주 찾아와 말벗해 주시면서 안정을 찾아드리니 빨리 좋아지시는 것 같으셨다. 


여러 남자 어르신 같은 경우에는 활동적이셨던 성향이라 웬만하면 산책과 운동으로 스트레스가 없도록 권해드린다. 와상이시기 때문에 무료하시고 답답하실 수 있으셔서 이런저런 장난기가 발동하신 것으로 이해하면서 힘내시도록 격려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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