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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장로님

한인 교포들의 생존기

by 이미숙

누군가는 미국을 ‘기회의 땅’이라 부른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 땅은, 날마다 생존하듯 버텨야 하는 낯선 전쟁터였다.

그렇게 우리는, 조용히 싸우며 살아남는 법을 배워갔다.


미국 생활에 서서히 적응해 가던 어느 날, 나는 평소처럼 교회 장로님이 운영하는 뷰티 서플라이 가게로 출근했다. 흑인 거주 지역의 작은 상가에 위치한 그 가게는, 주로 가발과 각종 미용용품을 판매하는 곳이었다.


그 지역은 늘 긴장을 놓을 수 없는 공간이었다. 흑인 사회 내에서도 특히 위험하다고 알려진 곳이었기에, 날마다 무언의 경계심을 안고 살아야 했다.


내가 살던 동네는 대부분 한인이 흑인을 상대로 장사를 하며 터를 잡은 곳이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모습은, 그 자체로 이민자의 삶을 보여주는 풍경이었다. 나 역시 그 현장의 한복판에서 치열하게 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그곳에서의 일상은 늘 조심스러웠다. 손님으로 위장한 강도들이 종종 들이닥쳤고, 대부분은 마약에 중독된 상태로,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곤 했다. 강도 사건은 예사였고, 그들은 대부분 총을 소지하고 있었다. 우리는 나름의 방식으로 위기 상황에 대비하고 있었지만, 위험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왔다.


며칠 전에도 소소하지만, 아찔한 강도 사건이 있었다. 그 일을 계기로 장로님은 더욱 체계적인 방어책을 마련하기로 결심하셨다.


계산대 천장에는 무거운 돌덩이를 줄에 매달아두었다. 강도가 총을 겨눌 경우, 줄을 당겨 돌을 떨어뜨리는 방식이었다. 출입문 위에는 식용유와 어린이 머리끈에 사용하는 구슬을 가득 담은 용기를 설치했다. 도망가는 강도의 길을 막기 위한 함정이었다. 바닥에 미끄러짐을 유도하고, 그물망과 함께 작동하는 꽤 정교한 장치였다.


그리고 며칠 후, 결국 또다시 강도가 들이닥쳤다.


총을 겨누며 돈을 요구하는 강도의 눈빛은 날카롭고 광기 어렸다. 우리는 숨조차 크게 쉴 수 없었다. 준비해 둔 장치를 사용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가는 총알이 날아올 것 같았다. 우리는 그저 얼어붙은 채로, 그가 원하는 만큼의 돈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돈을 챙기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장로님이 간발의 차로 장치를 작동시켰다. 그러나 아쉽게도 돌은 목표를 빗나가 엉뚱한 곳으로 떨어졌고, 강도는 무사히 가게를 빠져나갔다.


우리는 망연자실했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은 그 이후에 벌어졌다.


잠시 후, 신고를 받고 도착한 경찰이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그만 미끄러져 바닥에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당황스러운 순간, 그 장면은 마치 영화 나 홀로 집에(Home Alone)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가게 안은 순간 웃음바다가 되었고, 경찰들조차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날의 사건은 그렇게, 강도가 아닌 경찰의 허망한 등장이 모든 긴장을 풀어주며 마무리되었다.


험한 땅 미국에서, 한인 교포들은 그렇게 날마다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위협과 두려움 속에서도 생계를 이어가며, 조심스레 삶의 기반을 다져간다.


나는 이 땅에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든 한인에게 존경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그리고 누구보다도 담대하게 이민자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 그 존재만으로 이미, 위대한 이야기의 주인공들이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스쳐 가는 작은 가게일지 몰라도,

우리에게 그곳은 매일의 두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던 삶의 최전선이었다.

오늘도 그 전선을 지켜내는 사람들에게, 나는 조용한 경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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