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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습자 May 29. 2024

최소한의 선의(가족관계증명서)

왜구구단은

육이오가 가는 실처럼 손에 닿은 적이 있다. 우리 어머니는 1960년대에 태어나셨다. 외할아버지 D는 땅부자셨고, 아들은 없으셨다. 우리 어머니는 후처의 세 딸 중 둘째다. 외할머니는 어머니 어릴 적 돌아가셨다. 엄마는 큰엄마, 새엄마와 어린 시절을 보내셨다. 어머니 나이 20대 중반에 외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운명하시기 며칠 전까지도 외할아버지 옆에는 젊은 할머니가 계셨다. 어머니와 이모들이 물려받을 재산은 천 평쯤 되는 밭하나가 다였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해에 어머니와 이모들은 외할아버지의 사연 때문에 토지소유권을 이전하지 못하셨다. 그렇지만 마을 사람들 모두는 외할아버지를 이 땅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어머니와 이모들은 고향에 살며 농사짓는 어머니 친구에게 이 땅을 임대하였다. 이렇게 여러 해가 흐르는 사이 부동산특별조치법*이라는 것이 생겼다.  (*건축물이나 토지에 대한 보존 등기가 누락되었거나 등기부등본의 내용이 실제권리와 다를 때, 간편한 절차를 통해 등기할 수 있도록 제정된 법률로 2020년 10월 20일을 시작으로 하여 2년 동안만 한시적으로 적용되었음) 마침내 어머니도 간편한 절차 - 행정적 절차는 간편했고, 인간적 절차는 그렇지 않은 - 로 이 땅을 등기할 수 있었다.

외할아버지의 사연은 육이오 때문이었다. 종전 후 어느 해 이웃 마을에 전쟁고아 F가 시집갈 나이가 되었는데, 문서로서 가족관계가 증명되지 않아 애로사항이 생긴 일에 외할아버지가 나선 것이다. F를 가족관계증명서에 양녀로 등재해 주셨다.

 법에서 말하는 간편한 절차의 두 축 중 하나는 이 땅이 외할아버지의 소유였음을 증명해 주는 마을 사람의 의견이 들어간 서류를 얻는 것이었는데 이건 말 그대로 간편히 처리가 됐다. 다른 축은  가족관계증명서에 외할아버지 성함에서 뻗어나간 이름의 사람들에게 외할아버지의 땅을 어머니의 땅으로 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의견이 들어간 서류를 얻는 거였다. 세월이 흘러 F는 고인이 되었고, 자녀 5명(1, 2, 셋째, 넷째, 막내)은 대한민국에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이들과 전화로, 만남으로 간편한 절차를 진행했다.

전화통화에서 셋째, 넷째, 막내는 그랬단다. 'F 사연 저희가 다 아는데 당연히 동의해 드려야지요' 하지만 대면한 경기도 남부 ㅇ시 한 동네에 사는 숫자 1, 2는 달랐다. '서류상 D는 우리 외할아버지 되시니 당연히 우리도 권리가 있네요 '라고 말했다고. 이 말에 어머니와 동행한 내 동생이 차마 어른들 앞이라 입밖에 내지는 못한 말은 이랬다 '서류상 우리 어머니는 1, 2의 이모가 되시는데 말투가 공손하지 못하시네요'

이런 1, 2에게 어머니는 300만 원씩 모바일 이체로 간편한 절차를 마무리하셨다.

문유석 작가의 최소한의 선의(특히 , 아름다운 판결과 냉정한 판결)를 곱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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