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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정> 재독

by 복습자

나는 나를 관통하여 지나가는 시간 속에 살고 있을 뿐이다.(중략) 우리는 욕망이라는 자산을 서서히 탕진하고 있었다. 육체적인 강렬함 속에서 얻은 것은 시간의 질서 속에 사라져 갔다.

- 17쪽 -


내게는 형용사의 위치를 바꾸는 일보다 현실에서 일어난 일을 덧붙이는 것이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 61쪽 -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 마지막 쪽, 마지막 문장 -


보통 "사치"는 물건에 붙여 쓰인다. 다른 말로 "임의소비재"라고도 한다. 네이버에선 이렇게 설명한다. "임의소비재(Discretionary Goods)는 소비자의 선택에 따라 구매가 결정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말합니다"


제품은 남에게 계속해서 보여줄 수 있는데 반해 서비스는 그 순간만 그럴 수 있다. 제품이 오롯이 나에게 가장 큰 효용을 주는 건 어떤 - 언박싱을 하거나, 처음 사용하는 - 순간이다. 나의 정신적 영역이다.


불어 문법에 반과거라는 시제가 있다. 반과거는 과거에 발생해 지금까지 지속되는 행동, 상태를 설명하는 시제이다. 주로 과거의 배경을 묘사하거나, 과거의 습관, 반복적인 행동을 나타낼 때 사용한다.


작가는 첫 페이지(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부터 중반을 지난 부분까지 반과거 시제를 사용했다고 책에서 말한다. 이렇게 한 이유는 "끝내고 싶지 않았던 '삶이 가장 아름다웠던 그 시절'의 영원한 반복을 말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예전의 기다림이나 전화벨 소리, 만남을 대신하고 있는 나의 고통을 묘사하는 것이기도 하다."라고 적어두었다.


좌우로 시간의 질서가 있다면 위아래로는 공간의 질서가 있겠지. 작가는 단순한 열정의 장소를 걸어본 적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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