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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을 읽고

by 복습자

'우아하다'는 동사가 두 개의 장면에서 나온다. 중간쯤 남자 주인공의 동료가 이 주인공의 겉으로 드러난 - 스무 살 넘은, 챙길 게 없는 아들을 두고 이혼해 이사하여 혼자 사는 48세 남자의 - 지금의 삶을 묘사하면서 한번, 맨 끝에 이 주인공이 더 이상 우아하지 않을란다라고 말하면서 한번. '우(낮게)(높게)' 든 '우(높게)아(낮게)'든 정규분포 곡선이 생각난다. '적당히 고상하다'가 '우아하다'로 다가온다. 1부터 10까지 중에 2.5부터 5까지 든, 5에서부터 7.5까지 든. 이 정도면 '우아(우아)하다'


위 동료는 남자 주인공의 겉모습만 보고 '우아하다'라고 했는데, 이 장면 전 남자 주인공의 보통사람과 비슷한 - 적당히 고상한 게 아닌 - 본연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위 동료의 대사가 나오고, 남자 주인공과 같은 동네에 살게 된 불륜 상대방이며 1년 전 헤어진 여자 주인공 아버지의 쓰러짐이 발단이 다. 이 발단과 남자 주인공이 이사한 집의 주인이 당초 계약 만료일 이전에 집을 비워달라는 사건에 이은 전개 끝에 남자 주인공 "우아하다는 말은 이제 그만 듣고 싶다" 말로 소설은 끝이 난다.


아버지는 노환 때문에 여자 주인공과 요양 보호사의 보살핌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여기에 종종 남자 주인공도 손을 보탠다. 아픈 아버지는 시간(아픈)과 가족(아버지)으로 대변된다. 남자 주인공은 아버지까지 셋이서 한 집에서 살자고 여자 주인공에게 제안하지만 분명한 대답을 듣지 못한다. 직접적인 여자 주인공의 심리 묘사는 없지만, 남자 주인공의 우아함을 알기에 이걸 깨트리는 것에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것 같다.


미루었던 영화 <호우시절>을 이어서 보았다. 시간과 가족 그리고 인연의 소중함을 알고, 상대의 이 셋을 존중하는 남녀 주인공이 여운을 주는 영화다. 한편으로 한국 드라마 <부부의 세계>와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도 떠올랐다. 전자는 '자녀'도 등장하고, 후자는 '그와 나'만 등장한다. 동양적 사고에서 '자녀', '가족'이 주는 무게는 서양과 다르다. '단순한 열정'에 '현실 감각'을 교묘하고 용의주도하게 섞어 낸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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