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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질 산문

해해사이

by 복습자

기질은 중립적인 느낌이다. 그런데 기질과 유의어인 성질에 접미어 머리를 붙이면 마이너 한 분위기가 술술 난다. 반대로 인성이나 성품에는 인자한이나 온화한 같은 긍정의 의미를 지닌 형용사가 쉽게 떠오른다.


지방공무원으로 임용되어 면사무소에서 1년을 보내고 군청에서 일할 때 만난 우리 K팀장님이 생각난다. 전자에 가까운 기질을 솔솔 풍기셨던.(괴팍함이 떠오르는 성질머리 쪽은 아니셨지만)


대다수가 남의 일은 쉬워 보이고 내일은 어렵게 느끼는 것과는 반대로 K팀장님은 우리 팀 일에 대해 참 쉽게 쉽게 말씀하셨다. 이런 자신감의 근거가 본인의 추진력은 아니었다. 그 원동력은 당시 L선배가 나에게 해준말로 확실히 수 있는데. “H야, K팀장님 말씀대로 다 하지는 말아라. 저분 나중에 하나도 책임지지 않으실 분인 거 알지?”


군청 남직원들은 두 달에 한번 정도 당직(일직, 숙직) 근무를 군청 1층 당직실에서 했다. 당직실 소파에 앉아서 오른편 벽부터 앞을 바라보면 컴퓨터 모니터 두 대와 TV를 거쳐 본청 조직도(휴대전화 크기의 이름표가 부서명 밑에 부서장, 팀장, 팀원 순으로 붙어 있는)가 보였다.


어느 당직근무 날이었다. 근무원은 팀장 1명, 고참 1명, 신규 1명이다. 근무 시작 후 얼마되지 않아 상급자가 나에게 소속과 이름을 묻는다. 그가 앞에 보이는 조직도에서 우리 부서와 우리 팀을 슥 훑어보신다.


이 순간이 참 묘하게 재미있다. 내가 K팀장과 연관된 고충을 토로하지 않았는데도 알만하다는 눈빛(표정)이 쓱 드러났다가 달팽이 더듬이 움츠리듯 들어간다. 나는 나중에 동료들 눈 속에서 저렇게 내보여지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다짐해 본다.


말과 행동으로 내보여지는 나, 남눈에 담기는 나, 그 눈이 내보이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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