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가 잦아지면 회피가 내린다

by 이안나

헤맨 만큼 나의 땅이기에 아낌없이 길을 잃어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내가 디딘 그 땅 밑에, 또는 그 길의 끝에 뭐가 있는지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아무리 평수 넓은 땅을 가져도 평안한 집을 지을 수 없고 내딛을 길을 닦을 수 없다면 결국 나는 원터치 텐트나 세우며 노심초사하는 것이다.


미루고 미루던 정신과 진료를 본 날, 우산 없이 비를 맞으며 집으로 걸어왔다. 청승을 떨고자 했던 건 아니고 언제나처럼 우산을 잊은 평소였다. 오랜 기간 짐작만 하던 우울증 진단을 받은 그날, 그 장대비 아래에서 모로 봐도 배려 없는 퇴사 통보를 읽었다. 함께 이야기한 성과를 이미 한 바퀴 넘게 이뤘음에도, 더 좋은 성과가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말 한 줄로 끝이 났다. 그 위로 다른 부서로 보내진 [정규직 전환 면접] 말머리로 시작하는 메일이 6개, [채용 동결 예정]이라는 제목의 메일이 1개 쌓여있었다. 계약 만료를 한 달 남겨둔 날의 일이었다.

수확의 계절이자 연말의 성과를 준비하고 정리하는 시기에 나도 한 번쯤은 풍족할 수 있는 게 아닌지 탓해보지만, 생각해 보면 매년 이맘때의 나는 꽤나 요란한 빈수레다. 이 낡은 마차가 언젠가 좋은 곳으로 데려다줄 거라고 믿는 눈먼 신데렐라. 근데 이제 마부도 나인. 왕자보다는 스스로 그 자리에 앉길 바라는.


벌써 6년이다.

쉬지 않고 계속 일 했으나 남은 건 없는 이 기간이 24개의 계절을 게걸스레 삼켰다. 일은 계속했으니 '취업준비생'은 아니고, 그렇다고 제대로 일자리를 잡은 것도 아니니 '직장인'도 아니다. 가끔 나는 내가 뭘 준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미래, 직장, 안정, 커리어, 합격, 자격증, 어학, 효도하는 사람...... 너무 많은 준비를 해야 해서 이제 그냥 준비 비빔밥을 만들며 비빔박자나 신명 나게 타고 있다.

나를 다독이는 것도, 상황과 운이 좋지 않았다는 말도, 내 탓이 아니라는 말과 조급하지 말란 충고가 모두 켜켜이 쌓여서 더 이상 귀에 들리는 위로가 없다. 항상 같은 모습으로 나동그라졌기 때문에 붙잡고 토로할 이야기도, 사람도 없다. 이제 명치에 자리 잡은 게 절박한 마음인지 절망적인 마음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언제나처럼 책으로 도망쳤다. 우느니 읽지. 활자에 파묻혀야지. 멋진 작가들에게 부러움을 갖는 게 지금 자격지심보다 덜 추악하기에 언제나 이런 마음이면 책으로 도망쳤다. 나는 많은 부분 책으로 커왔으며 지금도 글로 배우고 고친다. 언제나 날 키워내고 길러낸 많은 책들 사이에서 기꺼이 길을 잃었다. 미아가 되어 나갈 수 있는 곳을 구태여 찾지 않고 세상을 흐릿하게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책은 나를 세상으로 뱉어내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는지, 어째 도망친 구절마다 숨 쉬듯이 내 일상을 그렸다.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를 톺아보며 "경쟁에서 도태된 자"가 되어버린 비정규직이, 각자의 쓸모를 찾으며 한 사람 몫의 세상과 타인의 구원까지 책임지려는 일록이가, 파산하고 배신당해 우울을 마주한 "시절 중의 시절" 열매가 나타났다. 지금부터 잔인한데, 세상을 뚜렷하게 마주하는 인물들은 결국 원하는 바를 이뤄내지만 나는 끼워주지 않는다.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금세 수치마저 잊는다. 그러지 않으면 견딜 수 없기 때문이라는 변명을 인덱스마냥 덕지덕지 붙이면서 다시 읽는다. 그저 읽고, 읽어서 더 이상 이 행위가 생산성을 가지지 않을 때까지 읽어낸다. 그럼 깊이 있게 뜯어보지 않는 나는 이제 독자 준비생인 건가? 잘 모르겠어서 생각을 닫는다.


왜 책들은 나를 다시 세상으로 던지고, 마주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문득, 내 이야기를 적어보고 싶어졌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활자가 되어보고 싶어서. 내 쓸모와 마음을 피하지 않고 싶어서. 평생 속에서 돌고 도는 글들을 적어 내려 보고 싶어서. 회피한 글 속에 같은 얼굴을 마주하면 세상을 조금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 누군가에겐 필요할 거라고 믿기에 내가 걸어본 황폐한 땅에 같이 텐트를 펼쳐두고 세상을 마주할 사람들을 구해본다. 이 땅이 인프라는 없어도 사람들이 말하는 '언젠가 쓰일 경험'들로는 꽉 차있답니다? 어떻게 보면 노이로제처럼 듣는 '미래를 위한 투자' 아닐까요? 내가 과연 우상향의 투자를 하는 것일지, 무슨 뉴스를 놓쳤길래 이렇게 반등 곡선을 보이지 못하는지 이야기해보고 싶다.

쓰다 보면 뭘 위해 이토록 오래 준비해 왔는지 직면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하지만 지금도 안다. 눈앞의 퇴직원을, 다시 시작될 지난한 시간들을 마주하기 싫어서 나는 또 글로 도망친 거다. 너무 많은 것의 준비생으로 자라난 나는 이제 회피가 직업 같다.




* 언급된 책은 아래와 같습니다.

조문영, 『연루됨 ; 인류학자의 세상 읽기』, 글항아리
청예, 『일억 번째 여름』, 창비
김금희, 『첫여름, 완주』, 무제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