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는 요란했다. 언제부터 인지 알 수 없지만, 꽤 오랜 시간 동안 서울의 20살 대학생이 되기 위한 수많은 일들이 시작되었다. 대다수는 부모님의 결정이었고, 또 일정 부분은 교육부의 결정으로 봐도 무방하다. 다행스럽게도 사랑받는 가정 아래에 있었으나 모든 집이 그렇듯 또 완벽하지만은 않았기에 그 준비는 꽤나 다사다난했다. 집 떠나 타지에서도 지내보고, 어린 시절 여자아이라면 심심치 않게 겪는 사건들도 마주하며 꾸물꾸물 나이를 먹었다.
사회적인 '어른'이 되기 위해 뭐가 필요한지 듣고 자란 건 많다. 성인이 되면 주체적으로 삶을 이끌어나가기 위해 사고해야 한다. 적어도 그렇게 배웠다. 갓 장을 보고 나온 사람처럼 양손에 책임을 들고 나의 길을 알아서 개척해 나가야 하기에 미리 많이 넘어져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넘어져 생채기가 난 곳에 다시 새 살이 돋는다고.
항상 그 말에 공감하지 못했다. 나기를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서 그럴까? 생채기가 아니라 뇌진탕이 오면 어쩌려고 자꾸 넘어지라는 걸까. 직접 20살이 되어본 후엔 이제껏 없었던 걱정들로 양손이 가득 차서 넘어지는 순간 땅을 짚기도 쉽지 않은데 어떻게 다들 휙휙 달려 나가는지 궁금하기만 했다. 장도 처음 보는 사람은 뭘 사야 할지 모르는데, 왜 앞자리 하나 바뀌었다고 척척 잘 골라 담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어려웠다. 세상에 참 불만이 많은 작자다.
이렇게 투덜이 스머프인 양 하는 것 치고는 20살 문턱을 지난 지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아직 독립과는 거리가 멀다. 고백하자면 아직 온 식구가 붙어 와글와글 지내고 있으며 '잉잉'거리며 거실에서 울기도 한다. 희미한 걱정과 애정이 섞인 부모님의 눈빛이 아직 편안하다. 부끄럽지만 이 온실을 아직 사랑한다. 이곳은 무거운 양가감정을 준다. 이 안에서 보호받고 자라서 20살이 넘어서야 바깥의 길을 마주할 수 있었고 아직도 자리하고 있다. 누구에겐 배부른 소리일 것이며, 누군가에겐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겐 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이야기였다. 어른이란 자신의 인정이 아닌 외부의 시선으로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얼른 생산성 있는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안온한 곳을 뒤로하고 나로서 인정받으며 또 다른 삶을 마주해보고 싶었다. 내가 내 발로 설 수 있는 사람임을 알고 싶었다. 하지만 다들 무언가 경험하고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는 대학 초입, 내 장바구니는 아직 비어있었다. 아무것도 못한 채 마주할 3, 4학년이 두려워 휴학을 선택했다. 쌓여가는 조급함을 원동력으로 발을 내딛었고, 그렇게 짧은 인턴 생활을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여서 뽑혔다는 말이 칭찬인지 비난인지 모른 채로 일을 시작했다. 그냥 신이 났다. 엑셀을 처음 만져보고, 회사 메일은 어떻게 보내는 지도 모르고 신나게 출근했다. 내 자리가 있고, 누군가 나에게 점점 더 많은 일을 맡기는 감각이 짜릿했다. 드디어 손에 책임이라는 게 들렸다. 스스로 해내고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일에 대한 짝사랑을 키워내기 충분했다. 애증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일을 사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