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흐름을 휩쓸고 간 '갓생'의 시대를 살아가며 다들 일정한 강박 아래 힘쓰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성장해야 하고, 나아가야 하고, 더 좋은 자신을 만나기 위해 노력하는 게 당연해진 사회라고 느껴진다. 하루하루 살아내며 다들 어떤 걸 기대하고 있을까? 무언가를 바란다는 건 그만큼 곧 다가올 일들을 그려보고 있다는 거니까 요즘 사람들이 어떤 다음을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누군가는 매일, 매 시간 단위로 새로움을 만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학창 시절은 등교하며 만나는 친구의 얼굴이 그럴 것이고 매일매일 잘라놓던 작은 점심메뉴 안내문이 그렇게 중요할 수가 없다. 더 넓게 본다면 매일 저녁 가기 위한 운동, 싸 온 도시락을 자랑할 수 있는 점심시간, 일과 시간 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눌 이야기처럼 일상의 소소한 기대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좋은 날씨가 기대된다는 친구의 말은 나도 웃게 만드니까, 작고 이어지는 일들이 얇은 실처럼 누군가를 움직이는 힘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더 크고 굵직한 일들을 말뚝처럼 박아두는 사람들도 있다. 몇 달 뒤 큰맘 먹고 예약해 둔 여행, 사랑하는 이들의 기념일, 오랜만에 가는 긴 휴가 일정, 인생의 큰 이벤트인 결혼이나 창업, 이직 같은 일들이 아닐까? 말뚝을 잘 찾지 못하는 사람이라 예시도 가난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기대와 설렘을 가지고 당장의 지긋지긋함을 이겨내게 하는 일들. 달력에 크게 동그라미를 쳐두거나, 휴가 일정을 3달 전부터 박아두는 것처럼 아무도 내가 기다리고 있는 그 일들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티 내고 싶은 말뚝들임은 확실하다.
나름 기대할 일들을 잔뜩 만들어두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내일 눈을 반짝 떴을 때 꼭 되새길 수 있을만한 일을 만들어두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눈을 뜨기 싫었던 시간이 길었기 때문이고, 어쩌면 그렇게 몇 번의 나를 일으켜 세웠기 때문이다. 일상의 작은 일들은 나에게 큰 기대가 되지 않는다. 보이는 것에 비해 염세적인 편이기도 하고 짐작할 수 있는 모습에 비해 현실적이게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장점이자 단점이 아닐까?
그렇지만 타고난 성정을 거스르며 꾸준히 일상의 작은 부분들을 찾아내려고 한 이유는 고등학교 교감 선생님의 한 마디 덕분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은 아무래도 하늘보다 땅을 더 많이 보는 시기니까 여느 수험생답게 보도블록 무늬를 바라보며 등교 중이었다. 바닥을 바라보며 교실 가서 해야 할 일을 되뇌고 있는데, 갑자기 앞에서 엄청나게 호방한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하늘 좀 보고 걸어라 이놈들아!" 하는 벼락같은...... 마치 천둥호랑이 같은 목소리에 문득 고개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어떤 하늘이었는지는 지금 기억나지 않지만 그 순간 웃고 계시던, 희게 새어있던 머리의 교감선생님은 기억난다. 그리고 수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선생님 덕분에 하늘을 못 보며 살 필요는 없다고 나에게 자주 속삭인다. 하늘은 무료고, 세금도 안 붙어.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성인이 된 후로 '기대'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은 곳은 면접장이다. 면접장에 앉아서 당신들의 세계에 소속되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물어보는 순간에 꼭 하는 질문이 있기 때문이다. "저희와 함께하시면 어떤 일을 하게 될 거라고 기대하세요?"라는 기출 질문에 나는 기대하고 있지 않은 일들을 술술 이야기할 수 있다. 회사의 비전과 맞춰가는 나의 커리어 비전, 성장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확신하는 말투, 공고를 몇 시간이고 분석해서 내린 업무 내용 등등. 하지만 그중에 정말 기대하고 있는 내용은 크게 없다. 저는 당신들의 세상에 들어가 고용보험과 의료보험비를 내고 연말정산을 하고 싶어요. 커리어가 만들어지는 대가로 저의 시간과 감정을 넘겨드리고 싶습니다. 명함을 주고받는 순간을 기대하고 있어요. 저에게 기대하시는 게 뭔지 더 궁금한 지금입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솔직히 누가 알겠는가. 나와 함께할 이를 모를뿐더러, 공고는 어디든 똑같은 사람을 찾는 것 같다. 추상적이지만 일 잘하고 경험 많은, 하지만 싼 인재를 찾는 이 시장에서 내가 기대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는 걸 안다. 어쩌면 나를 움직이는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기대라는 건 누군가를 바닥까지 눌러 내리는 중력 같은 마음이기도 한데 어떻게 내가 그 질문에 솔직하게 답할 수 있을까?
'기대'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일이 바라거나 예측되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마음이나 감정'이다. 지금의 나는 내 앞에 일어날 일을 예측할 수도 없고 더 이상 무언가를 바라기도 벅차다. 말뚝처럼 박아두고 나아가고 싶던 기대라는 말은 이제 내 중심에 박혀 내 생각의 흐름을 멈춘다. 내가 바라던 미래의 모습도, 부모님이 바라던 나의 모습도, 세상에서 일할 수 있는 청년 인구에게 바라는 생산적인 역할도 모두 무겁게 나를 바닥으로 밀어 내린다. 물 밑에서 수면을 바라보면 그렇게 반짝거릴 수가 없다. 연말이 다가와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세상은 나를 두고 각자의 기대에 손을 뻗으며 나아가고, 그렇게 휘황 찬란 빛날 수가 없다.
하지만 그 바닥에서 땅을 쓸어보며 묻혀있는 마음들을 조금은 들여다볼 수 있었다. 어떤 아이로 자라났는지, 왜 지금 멈출 수밖에 없었는지, 나는 나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 그리고 내가 지금 뭘 좋아하는지. 한 번도 고민해 본 적 없었는데 살짝 구멍 난 마음으로 흙이 피어오르는 걸 바라볼 수 있었다.
나는 단순히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마음을 뒤돌아보는 사람으로 끝나고 싶지 않다. 이 바닥을 도움닫기로 다시 한번 무언가를 도전해 보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끝까지 해내는 사람이고 싶다. 그래, 나는 어떤 일의 종결을 내가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나 보다. 하고 싶은 어떤 일이 있는 게 아니라, 맞닿뜨린 일을 어떻게든 끝까지 해보는 사람으로 나에게 기억되고 싶다. 해내야 한다는 부담을 이겨내고 어떻게든 근성을 길러나가는 사람이고 싶다.
일의 종결을 맞이하는 건 용기가 필요하다. 지금 글을 쓰는 나도 그렇다. 이게 직업이 될 가능성은 절망적이고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는 나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으니 돈이 되지도 않을 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글을 기대하고 싶다. 시작한 이 이야기를 끝내고 다음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건 내가 거짓말로 늘어놓는, 누군가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시작되어 그들의 선택에 붙는 대로 하는 일이 아니고 뚜벅뚜벅 걸어가 자초한 일이다. 내가 시작하고, 내가 끝을 보고 싶은.
글을 모두 마무리하고 난 후에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마음을 조금 더 담아 답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핀다.
"어떤 일이 가장 기대되세요?"
"바쁘고 조급하기에 텅 비어버린 6년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꺼낼 수 있길 바랍니다.
그 이야기를 토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끝까지 해내는 사람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