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친구 중, 학창 시절부터 꾸준히 회사원이 꿈이던 애가 있다. 어떻게 꿈이 그냥 ‘회사원’이냐고 물어봐도, 자기는 꼭 회색 같은 회사원이 될 거라고 장담하던 그 친구는 정말 루틴한 회사에서 루틴한 업무를 하는 회사원으로 자라났다. 알록달록한 친구가 어떻게 저렇게 흐릿한 회사원이 되고 싶어 했는지, 지금도 그 삶에 아주 만족하고 지낼 수 있는지 아직도 아리송하지만 적어도 고요하고 행복해 보인다. 나는 뭐로 자라나고 싶었을까? 단 한 번도 그냥 회사에 앉아서 엑셀을 만지는 회사원으로 자라나기를 바란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장래희망이 ‘초라해지기’는 아니었을 텐데, 왜 이렇게 나이만 먹었는지. 다들 어떤 어른을 꿈꾸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을지 궁금하다. 그나마 기억할 수 있는 첫 장래희망은 치과의사였다. 거창한 목표나 큰 이유는 없었고, 당시 친가 어른들을 만나면 모두 그러라고 해서, 그러면 좋은 건 줄 알았다. 부유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훌륭한 ‘ 일원으로 자라나라는 뜻이셨으리라 믿는다. 그게 우리 집안에 훌륭한 일일지는 몰라도 좋은 어른으로 자라라는 뜻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 어른들은 꿈에도 몰랐겠지... 내가 수학을 하나도 못하는 청소년으로 자라날줄은...
어렸을 때부터 유구하게 숫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기본 문제는 풀어도 그놈의 ‘응용’을 못하는 학생이었다. 여러 선생님들의 속을 까맣게 태우고 나서야 수험 생활이 끝난 걸 보면 처음에는 몰랐어도 마지막엔 그냥 모르고자 한 것 같다. 수학을 싫어하는 것 치고 과학은 한때 ‘영재’ 반에 들 정도로 좋아했으나, 수학과 영어를 잘해야 과학자가 될 수 있는 걸 알고 빠르게 관심이 식었다. 지금 생각하면 좀 버티고 배우지, 싶기도 하지만 그만큼 노력하지 않은 걸 보면 연이 없는 것 같다. 당연히 물리와 자연과학 등에도 관심이 없었다. 왜 세상은 숫자와, 물리와, 법칙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원망스럽기도 했다. 어릴 적 읽은 책들에서는 아름다움과, 새로움과, 경이로 세상이 이루어진 것 같았는데 다 거짓말이었다. 적막한 설원이나 여름날의 붉은 노을도 모두 숫자와 과학과 어떤 것들로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아직도 가끔 낭만이 부서지곤 한다.
숫자와 연산을 싫어하는 대신, 그만큼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어린이를 위해 아빠 서재방의 한 면은 모두 책장으로 꾸며준 부모님은 아직도 내가 천재로 자랄 줄 알았다고 우스개 소리를 하곤 한다. 글을 몰랐을 때도 책을 펴놓고 그림을 보며 읽는 척을 했던 어린이는 교과서 뒤에 책을 숨겨두고 읽는 학생으로 컸다. 수학학원은 기를 쓰고 빠졌으면서, 논술학원은 부러 남아서 학원 교재며, 꽂혀있는 책이며 닥치는 대로 읽어내는 얼렁뚱땅 문제아였다. 심지어 사람들이랑 부딪히며 영어를 배우라고 유학을 보내도 사람을 피해서 글로 도망치는 예측 불가능한 어린이는 소설, 만화, 철학 등 가리지 않았고 매일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렇게 세상을 배워나갔고 취향을 만들어갔다. 극본집을 읽으며 영화도 사랑하게 되었고, 희곡을 읽으며 연극과 뮤지컬도 사랑하게 되었다. 글과 예술은 삶의 근간이 되었고 아직도 좋은 도피처로 남았으며 취미가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서사가 있는 것들을 좋아해요’라고 두루뭉술하게 대답하는 어른으로 자라났다.
하지만 호오와 별개로 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가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걸 점차 배웠다. 좋아하는 건 취미로 둬야 하고 앞으로 평생 할 일은 ‘버틸 수 있는’ 일로 정하는 게 맞다는 이야기를 중학생 때부터 들었다. 변호사든, 카피라이터든, 방송 PD든 좋은 학교를 나오는 게 먼저니까 공부를 하라고. 물론 그 말에 이견이 있는 건 아니며,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해낸 학생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한국 교육의 생리를 이해한다. 하지만 수학과 거리가 멀었던 흔한 ‘수포자’는 취업이 어렵다는 소위 중위권 인서울 인문대생이 될 수밖에 없었다. 복수전공이라도 취업에 용이한 학과를 골랐어야 하나 싶지만 반골 기질이 다분한 나는 줏대 있게 관심 있는 학문을 배우겠다며 도움이 되지 않는 과를 골랐다. 이렇게 ‘문송한’ 대학생 때는 회사가 좋다면 직무는 내가 고르는 게 아니라 붙는 대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도 농담처럼 하곤 했다. 장래희망이라는 건 꿈같은 이야기였고 어떻게 자리 잡을 수 있는지, 지금 취업 시장에서는 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가 더 우선순위의 고민이 되었다. 직무라도 고민해 봤으면 좋았을 텐데 허겁지겁, 되는 대로 일을 시작해 버려서 지금 이렇게 체한 건가 싶기도 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 쉬었다 ‘고 답하는 청년 인구가 많다는 통계를 보면 세상의 탓인 것도 같다가, 막상 주변을 둘러보면 쉬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에 내 탓인 것 같다. 근데 막상 자책하기엔 나도 내 세계가 뭘로 이루어져 있기에 그때의 조급한 선택을 왜 했는지 알기 어렵다. 그게 최선인 것 같았고 돌아간다 해도 비슷한 선택을 할 것 같다. 장마가 길어지면 맛없어지는 과일처럼, 계속 내리는 실패에 내 세상이 싱거워져 염세가 짙어졌다.
어릴 적 읽은 성장 소설들에서는 눈앞의 길 모퉁이를 만나면 그 너머 뭐가 있는지 몰라도 가장 좋은 게 있을 거라고, 그 모퉁이 자체가 매력적이라 이야기했다. 모퉁이들을 어떻게든 돌며 끊임없이 무언가 되기 위해 준비해 왔다. 쉬지않고 해내도 잡히지않는 그 ‘무언가’를 마주하니 혼란스럽기만 하다. 배운 세상과 마주한 세상이 너무 달라서 멈춰버린 것 같다. 이것도 내가 응용을 못하는 사람이라서,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하며 그저 들이받아서 그런 걸까. 인생의 모퉁이들을 지나 이렇게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길에 덩그러니 서있게 된 건 온전히 나의 잘못일까. 돌파구를 찾고 싶어서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던 사람들의 에세이를 읽어봐도 이제 공감이 가지 않는다. 그 사람들은 특별해서 길을 다시 찾은 걸로 보이고 나는 초라해 보이기 일쑤다.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들이 오히려 나에게 독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을 버리기 힘들다.
특이 케이스는 아니다. 이게 대단한 통찰이라거나, 남들과는 다른 경험도 전혀 아니다. 대부분 이렇게 일을 시작하고, 그렇게 돈을 벌며 살아간다는 걸 안다. 조선의 실학자가 적었듯이, 시대가 나를 휘감고 내가 시대에 살고 있는 한 삶에서 비겁해질 수밖에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이 비겁함을 인정하지 못하고 화해는커녕 왜 이렇게 얄팍한 세상이냐며 화를 내고 있는 난 어른이 되기엔 아직 글러먹은 것 같다는 생각이다. 세상의 순리를 인정하려 했고 닥치는 대로 눈앞의 기회를 잡았다. 잘 해냈고, 인정도 받았고, 자기 만족도 꽤나 있었지만 어른들이 바라는 훌륭한 사회의 일원이 되지 못했다. 꿈같고 행복하다는 20대가 너무 어렵고 버거웠던 건 충분한 고민 없이 사회로 나섰기 때문인 걸까. 지금은 회복이 우선인 걸 알지만 그마저도 하염없이 실체 없는 부채감에 잠겨가는 과정 같다.
* 언급된 책은 아래와 같습니다.
루시 몽고메리, 『빨간 머리 앤』
신창호, 『정약용의 고해; 스스로에게 건네는 생의 마지막 고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