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히 들어가기를 원했던 산업에서 불과 4개월 만에 퇴사한 이야기
오랜만에 본업인 암호화폐, 그리고 약간의 개인적인 일들에 관한 글을 남긴다.
먼저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잠깐 얘기하고자 한다.
작년 이맘때의 나는 암호화폐라는 새로운 기술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이 분야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나름 체계적인 전략을 갖고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니까 내가 공부하는 모든 것들을 기록으로 남겨서 이를 포트폴리오로 만들자!라는 생각을 갖고 낮에는 회사를 다니고 밤에는 리서치와 글쓰기를 반복했었다. 마침내 2022년 7월, 나는 5년간의 커리어에서 지속해 왔던 세일즈를 계속하면서도 연봉을 약 50% 올리는 최고의 조건 속에서 새로운 암호화폐 기업으로 입사했다. 드디어 원했던 산업으로 들어왔고 심지어 조건도 훨씬 좋아졌으니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불과 4개월이 걸리지 않았다.
2022년 11월에 퇴사를한 나는 아직까지 무직상태에 있다. 음, 정확히는 약 2주 동안 무직이었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대학교 때 배운 경제 1010 수업의 내용을 떠올려보면 "실업"의 정확한 정의는 "일할 의사와 능력이 있고 최근 구직활동을 하였으나 수입 있는 일을 하지 못한 자"이니까. 퇴사 이후 나는 처음으로 아무것도 하기 싫고 할 수 없는 업무 불능의 상황이었기에 한동안 구직활동 자체를 하지 않았다. 아마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지 않으셨다면 이 업무 불능의 상황은 훨씬 더 오래 지속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천만다행히도 아버지는 많이 회복하셨으며, 나도 더 이상 놀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다시 취업전선으로 뛰어들었다. 이것이 약 2주 전의 일이니 나는 현재 실업 약 2주차이다 (완전 정신승리..ㅎ).
나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는 여기까지만하고, 오늘은 암호화폐 기업에서 몸담았던 4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느낀 점과 이 산업에 들어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경고에 가까운 메시지들에대해 이야기하고싶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여전히 이 산업에 대해 긍정적이고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이 가져올 긍정적인 변화들을 무척 고대하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이 산업은 수많은 돈이 너무나 빠르게 들어가고 빠지는 산업이어서 자칫하면 당신이 그 풍파 속에서 헤매게 될까 봐 두렵다. 오늘은 여과 없이 내가 느낀 점들을 공유하면서 최소한 이 산업에 들어오는 당신이 갑작스러운 소용돌이를 보고 놀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 이 글을 쓴다. 역설적이게도, 최근 암호화폐 산업에서 많은 사건사고가 터지면서 사람들의 기대치도 많이 수정되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암호화폐 산업으로 입사하기 전에 유의해야 할 딱 세 가지 포인트만 집어서 설명하고자 한다.
#1. 대부분의 서비스는 아직 빌드 단계에 있으며, 아직까지 투자자와 빌더들 (개발자, 디자이너 등)을 제외한 직종은 수혜 받기 어려운 산업이다 (고로 회사 선택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
내가 암호화폐 산업으로 이직한 가장 큰 이유는 기존 전통금융시장의 경우 한계가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예전에 있었던 블룸버그와 같은 금융데이터 및 정보 제공 플랫폼 세일즈를 했던 시니어 세일즈들은 이미 시장 곳곳에 다수 포진되어 있었다. 하지만 암호화폐 산업은 비교적 신생 사업이기에 내가 빠르게 진출해서 입지를 다져 놓으면 나중에 후발주자들이 들어왔을 때 나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올라가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유감스럽게도, 외부에서 목격했던 암호화폐 산업의 성장 속도나 단시간에 많은 돈을 번 수많은 무용담에 비해서 이 산업은 아직 개발의 초기단계에 있다. 블록체인이 더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아직 더 많은 트랜섹션을 더 저렴한 가격에 진행시킬 수 있어야 하고, 규제는 물론이며 서비스의 안정성도 더 강화되어야 한다. 세계 2위 암호화폐 거래소가 하루아침에 망하고 고객들이 맡겼던 돈을 돌려받지 못하는 등, 아직 이 산업에서는 해결해나가야 할 숙제가 너무나도 많다.
산업이 아직 초기 단계에 있을 때 가장 많은 수혜를 보는 직종은 서비스를 만드는 개발자와 창업자들, 그리고 그 서비스들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이다. 만약 당신이 이 분류에 속한 사람들이라면 암호화폐 산업은, 그리고 특히 지금 시점은 상당히 매력적인 진입구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신이 나와 같은 세일즈라면 회사를 선택할 때 매우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드리고 싶다. 그래서 현재 나는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하기보다는 어떤 회사들이 좋은 제품 및 서비스를 오퍼하고 있는지를 탐색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2. 지루하더라도, 안정적인 직업이 갖다 주는 밸류는 생각보다 훨씬 크다. 암호화폐 산업 내 많은 기업들은 일반 기업의 안정성과는 거리가 있음으로 이 부분을 유의해야 한다.
나는 모험을 좋아하기에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그런데 이런 내 성격조차도 막상 실업상태가 되고 나니까 일상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당신이 안정적인 일을 원한다면 애초에 암호화폐 기업들을 생각하지도 않았겠지만, 만약 당신이 새로운 것을 좋아하더라도 이 산업으로 들어오기전까지 매우 신중해야한다. 불행히도 우리가 사는 현실에는 우리가 내야 하는 공과금, 카드값, 집세 등의 지출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현재 주변에는 해고당한 사람, 퇴사한 사람 등 수많은 불운한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 모두들 대단히 똑똑하고 배울 점이 많았던 사람들이며 나는 절대 그 사람들이 능력이 없어서 회사에서 쫓겨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요즘 구글 등 빅테크 기업들이 해고하는 직원의 수를 보면 이게 비단 암호화폐 산업의 문제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사건은 일어났고, 그분들도 견디고 다른 선택지를 찾아야 할 것이다.
Risk-appetite는 사람마다 다르다. 안전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고 모험이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여기에 정답은 없고 이는 단지 취향의 차이일 뿐이다. 암호화폐 산업은 분명 안전을 추구하는 집단의 사람들과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이 비즈니스가 정말 내 입맛에 맞는 산업인가? 스스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음... 너무 부정적인 부분들만 얘기한 것 같아서, 긍정적인 포인트도 하나 작성하고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3. 이럴 때일수록 실력을 가진 사람이 살아남는다. 본인의 장단점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역량을 강화할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무기가 녹슬었다면 다시 갈아야 한다. 이미 시장의 거품은 꺼졌고 사람들의 시선은 냉담해졌으니 더욱더 까다로워진 산업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스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요즘 나는 암호화폐에서 어떤 서비스와 상품들에 대해 고객들의 수요가 많을지 공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에 관심 갖게 된 분야 중 하나가 블록체인 오라클인데, 간단히 설명하면 스마트컨트랙트 작성을 위해 필요한 실물 데이터들을 끌어오는 역할을 하는 게 오라클 기술이다. 스마트컨트랙트의 보편적인 활용을 위해서는 오라클 서비스 제공자들의 역할이 필수적인데, 만약 이런 서비스들이 잘돼서 전문 세일즈들을 채용하는 단계에 온다면 당연히 상품지식을 갖춘 사람들을 필요로 할 것이다. 특수한 상품에 대한 세일즈를 하기 위해 요즘 나는 리서치와 글쓰기를 반복하고 있다. 내가 이해한 지식을 단순 요약하더라도 글을 써서 콘텐츠로 만든다면 이는 곧 내 포트폴리오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전문 세일즈이기에 다른 직종은 어떻게 역량을 끌어올리는지는 잘 모르지만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지는 아마 본인 스스로가 더 잘 알 것이라고 믿는다. 일렬의 사건들로인해 살아남기는 분명 더 힘들어졌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본인의 성장이 더 빛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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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맥락으로 다음번에는 제가 조사하고 있는 암호화폐 회사들/산업에대한 글을 써보려고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