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휴머노이드존? 우리는 왜 섞이면서도 따로 노는가

1부 6화 : 공존

by leeari

“너희는 배제를 배웠니?”
AI에게 묻고 싶었다.
배제를, 감정 없이 배운다면— 그건 더 무서운 일이 아닐까?


인간은 감정으로 누군가를 밀어낸다.
불편하니까. 무례하니까. 나랑 다르니까.
AI는 데이터를 통해 같은 걸 학습한다.
우리가 '안전'이라 부르는 그 기준을.
망설임 없이, 소음 없이, 너무나 효율적으로.


우리는 늘 공존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가만 보면,
‘공존’은 ‘가까이 오지 마’의 다른 말이었다.
마치 “자연과 함께” 살겠다는 그럴듯한 구호처럼.
우리는 옆에 두고 싶지,

정말 함께 살아갈 마음은 없었는지도 모른다.




요즘 들어 디지털 공간에도 ‘질서’가 생기고 있다.
‘노휴머노이드존’, ‘AI 프리 커뮤니티’, ‘인간 인증 전용’.
이 작은 간판들 안에는 누가 주인이고, 누가 손님이며, 누가 거절당하는지가 조용히 설정돼 있다.


나는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콘텐츠를 아무 의심 없이 소비한다.
하지만 가끔 생각한다.
내가 편하자고 만든 이 필터들, 정말 나를 위한 걸까?
다른 의견, 다른 감정, 낯선 존재들을 걷어내면서
나는 더 나은 세상에 도달한 걸까,

아니면 더 좁은 세상에 갇힌 걸까?


우리가 AI에게 가르친 건
함께 사는 법이 아니라,
더 조용히, 더 정확히 배제하는 기술이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노휴머노이드존’이 붙은 카페가 유행일까?

아니면 ‘휴머노이드 프렌들리’라는 간판이 새로운 트렌드가 될까?


그 어떤 이름이든 오래가진 못할 것이다.

AI는 인간처럼 감정적이지 않다.
우리처럼 눈치 보지도, 망설이지도 않는다.
우리가 입력한 ‘안전’과 ‘불쾌함’의 수치를 기준 삼아
누군가를 걸러내고, 말없이 밀어낸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는 깨닫는다.
이 선은 AI가 아니라, 우리가 그은 거였다고.

우리의 두려움, 편견, 그리고 무심코 누른 차단 버튼 하나하나가
디지털 질서를 설계했다는 걸.


이제 돌아봐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정말 모두를 위한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만든 안전지대 안에서만 편안한 세상인가?


AI는 거울이다.
우리가 가르친 배제를,
더 정교하게 되돌려줄 뿐이다.
그걸 멈추고 싶다면,
먼저 우리 안의 선부터 지워야 한다.
오늘 내가 누른 필터, 그 설정값 하나하나부터 다시 돌아봐야 한다.
진짜 함께 살고 싶다면,
우리부터 ‘배제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Image by. Man in prison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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