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완성하려고 만든 공간이 아니라, 도망치면서 겨우 남길 기록들입니다.
"완성하려고 만든 공간이 아니다.
이건 도망치면서 겨우 남긴 기록들이다."
이 문장을 처음 떠올렸을 때,
나는 내가 ‘도망치던 사람’이라는 사실이
창피하면서도 이상하게 솔직하다고 느꼈다.
도망쳤던 순간들을 인정하고 나서야
비로소 왜 도망쳤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완벽'과 '완성'에서 점점 멀어진다.
혼란의 한가운데에서 쓰는 문장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정리되지 않아도, 조금 우스꽝스러워도,
그 안에야말로 진짜 '나'가 있기 때문이다.
‘도망’이라는 단어는 포기나 패배가 아니라
나를 살리기 위한 회피이자 또 다른 선택일지도 모른다.
이 노트에는
감정의 이름을 붙여보고,
실패를 찬찬히 복기하고,
내가 잘못 알았던 나와
그 주변을 다시 둘러보는 글들이 담길 것이다.
도망과 유랑, 그 한 끗의 경계에서
나는 어쩌면
가장 나다운 방향으로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건,
도망자의 노트이자
나에게로 조금씩 다가가는 노트다.
완성하지 않아도 괜찮은 기록이 있다는 걸
이 노트가 계속 증명해 줄 수 있기를.